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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n 28. 2024

죽기야 하겠어?

존경하는 아버지 이야기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제가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회사 일에 진심이셨던 분이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였을까요? 주중에는 대부분 늦은 귀가를 하셨고 토요일에도 오후 늦게나 퇴근하곤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6일 근무제였으니까요.



저희 가족은 할머니를 포함해 총 5 식구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없던 부분도 있었을 거라는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가장으로서의 무게감과 중압감이 엄청났겠을 거예요. 그만큼 당신의 업무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굉장히 강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지금 저보고 그렇게 하라면 그 정도까지는 솔직히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에도 이면은 있었습니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로 늘 피곤하셨던 아버지는 귀가 후에는 줄 곧바로 잠자리에 드시는 편이었고, 주말에도 단잠으로 피로를 달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회사 일에 집중하셨던 딱 그만큼 저와 동생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홀해졌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적어서 일상을 나눌 시간이 없었기도 하고 무섭고 엄하셨으니까요.      



이제와 생각해 보면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봤을 때 당연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없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지금 당장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거의 손에 꼽을 정도니까요.



이따금 휴가철 아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일상으로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바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왔습니다. 아빠들은 원래 다 저런 건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중에 커서 결혼이란 걸 하게 되면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 정말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아 자연스레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가 취업과 결혼을 하고 어느새 아이까지 돌보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아버지처럼 일만 하고 살진 않겠다’라고 다짐하며 살아온 저도 아버지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주중에는 대부분 늦은 귀가를 일삼았고요, 주말에도 종종 출근하면서 가정에 쏟는 시간이 적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아버지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것 같았습니다. 남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업무에 열성이었던 저 또한 가정에는 점점 소홀해지고 있었던 겁니다.

  


거의 매주 늦저녁 귀가를 하고 아이가 곤히 잠을 자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아내는 혼자서 ‘독박육아’를 하면서 스트레스도 지속적으로 쌓여갔겠죠. 가족을 위해서 돈 번답시고 회사에서 나가는데 어느 순간 이건 조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라는 말 뉴스에서 정말 많이 나오죠. 정말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현실에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과 같은 거라 보는데 쉽진 않잖아요. 둘 중 하나는 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그 순간에는 누군가 제게 정답을 알려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서 그런 명대사가 있죠.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저는 제 고민을 이렇게 표현해보고 싶네요. “육아휴직이나, 커리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말입니다.     



제가 좀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다는 건데요, 하지 말라고 하면 발이라도 살짝 담가서 꼭 한번 해보고 반대로 하라고 하면 또 그렇게 안 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거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사회에서는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조직 부적응자’ ‘승진 포기자’ 등으로 여기는 관점이 있다고 봅니다. 주어진 권리인데 눈치 보여 쓰기 힘든 암묵적인 유리벽이 존재합니다.

 


몇 달을 그렇게 고민했지만 결정은 단 1초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모두가 하지 말라고 하네. 그럼 나는 그냥 해야지. 까짓 거 죽기야 하겠어?’ 하면서요. 천재들은 모두가 “아니요” 할 때 “예스”를 외쳤다고 하죠? 백도 없고 밑을 구석이라곤 하나 없는 저도 그렇게 아내와 공동으로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입니다. 회사를 위한 조연이 될 필요 없고 가족이라는 인생극장에서 주인공으로 나서는 게 더 멋진 인생으로 기록되리라 확신합니다. 당시로 돌아갈 수도 있는 기회가 주어져도 저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회적인 인정보다 훨씬 더 깊은 가정 내 인정을  맛보게 됐거든요. 그렇게 깊은 고민의 끝이 초라할 정도로 쉽게 결단을 내리고 향후 구체적인 육아휴직 가상 시나리오를 혼자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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