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시작은 없다.

by 지혜씨

'시작'이 가진 많은 뉘앙스 중에서, 무에서 유가 발생함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우주에서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초월적인 존재뿐이다. 이유는 이러하다. 인간은 발생 자체부터 계기 즉, 이야기가 있다. 여타의 동물들과는 다르게 감정, 표현, 생각하는 능력, 소통능력이 폭넓고도 섬세하기 때문에 각 사람이 살아가며 전개하는 이야기의 변수도 동물들보다 훨씬 많다. 그런 이야기를 가진 생명체 둘이 결합하여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고 그 인간은 또 다른 이야기들과 충돌하며 하나뿐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아무런 선후관계, 인과관계 없는 '무'의 상태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생애를 살아가는 내내 그리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유에서 유의 이야기를 쓰는, 각각 다른 소설을 써내려가는 펜이다.


각기의 펜들이 문장을 써내려 가다가 가끔씩 점을 찍는다. 그리고 새로운 문장을 시작한다. 이렇게 일상적인 시작은 여느 단어 사이 띄어쓰기 만큼 크게 받아들일 것도 없는, 아주 다분한 시작이다. 이런 시작들은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큰 감흥도 없다. 반면, 새로운 문단을 써내려갈 때는 낯선 줄에 정착해야 한다. 그리고 펜들은 그 낯섬을 조금이라도 빨리 회피하고 싶어한다. 다르게 말하면, 전에 써내려왔던 다른 문단들처럼 빨리 익숙해지기 염원한다. 이 때문에 첫 문단의 첫 단어를 써내려가는 그 '시작'을 하기 전,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을 상상해보곤 한다. 가능성을 상상해보는 것은 때로는 위험에서 미리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새로운 시작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게 되어 좋은 타이밍을 놓치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기왕 시작해야한다면 시작이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나아가는 힘은 일상적인 시작들의 속력이고, 좋은 타이밍을 아는 노련함은 큰 시작들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로부터 옴을 점차 깨닫는다.

무에서 유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인간의 자만심 때문인지 '시작'이 마치 그러한 것이라고 자연스레 여기는 듯하다. 시작이 마치 '무'에서부터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시작에 대한 내재된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두려움은 자신의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는 신과 같은 능력이 없어서 오히려 유에서 시작할 수 있다. 내가 무수히 찍었던 점들과 새로운 문장들. 그리고 어렵사리 익숙해졌던 문단들이 새로운 시작을 도와줄 것이다. 이것들을 굳이 상상하지 않고도 심지어 나 이전에 있었던 두 인간의 존재만으로도 나는 해나갈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간들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다.

이러한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운명에게 주어진 엔딩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소설 끝은 그렇게 마무리되어야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극심한 두려움에 점을 찍고 새로운 선에 착지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의 엔딩은 믿음과 용기의 사람들과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점과 단어 사이의 경쾌한 긴장을 즐기고 새로운 문단의 시작에서 정체하지 않는 인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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