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츠

이름대로 우리집이 더 높은 곳에 있었다면 그 도둑은 다른 집을 털었을까

by 지혜씨

밤이 되면 뒷산의 개가 늑대처럼 울던 서울의 빌라촌. 그곳 울음소리와 가장 가깝던 빨간 벽돌 빌라 2층이 우리집이었다. 엄마가 천호동 시댁에서 뛰쳐나와 신입 교사인 남편과 자리잡은 곳이었다.






우리집은 작았다. 열쇠로 무거운 현관철문을 열자마자 마주하는 네 가족의 신발, 그뒤로 식탁이, 그 뒤로는 부엌이 있었다. 어릴적 내게 복도라는 것은 상가처럼 큰 건물에나 존재하는 공간이었지 거주하는 공간에 있을 수 없는 곳이었다. 현관에서 왼쪽으로 돌면 바로 화장실이었다. 높은 턱을 넘고 문을 열면 보이는 퍼렇고 길쭉한 타일로 된 공간. 바닥은 배수를 위해 기울어진 꺼끌한 시멘트였다. 화장실 끝엔 빨간 다라이와 청색 세탁기가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는 것을 안좋아했는데 아마 몸집보다 큰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우리집에 있던 창문들은 하나같이 철 맛이 날 것처럼 생겼었다. 색도 그랬을 뿐더러 창문을 움직일 때마다 철끼리의 마찰음처럼 끼익거리는 소리가 뻑뻑하게 났다. 그들 중 가장 컸던 것은 두평 남짓의 거실 창문이었다. 엄마의 유일했던 다이아몬드와 가정의 중요한 행사 때 생긴 금붙이들은 누군가의 손에 들려 그 창문으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우리 빌라의 이름은 하이츠. 오래도록 나는 이 이름이 왠지 독일 태생일 거라 생각했지만 하이츠는 그냥 height. 높이를 뜻하는 영어단어를 발음 그대로 한글로 적은 이름이었다. 영미권에서 ’저택‘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하이츠 이름대로 우리 집이 조금 더 높은 곳에, 저택에 있었다면 그 도둑은 다른 집을 털었을까? 하이츠가 높이를 뜻하는 영어라는 것을 알았다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을까?


얼마 전에 부채질이 여간 도움이 되지 않는 날들로부터 나는 새로운 지역의 2층 작은 빌라에 살게 되었다. 혼자 있는 어둑한 밤, 엄마는 전화기 너머 걱정을 뱉어내셨다. 더워도 창문은 꼭 닫고 자라. 전에 하이츠 빌라에 살때 도둑 들었던거 기억하느냐. 몸 날쎄고 가벼운 놈들은 파이프라인 타고 쉽게 창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 나는 이에 맞서 '이곳은 살 사이에 땀이 밀리는 날씨'라고 설명했다. '창문을 닫고 자지 않겠다'는 의사는 이 동네는 나름 안전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아주 잠시의 정적이 흐르더니 엄마는 더 빠른 속도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에 못이겨 말로만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도둑이 우리가족을 건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몇 분 뒤인가 애매한 타이밍에 엄마는 다시 전화를 거셨다. 엄마는 훨씬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지혜야, 전기세 아끼려고 하지말고 그냥 에어컨 밤새 켜.

그리고 제발 창문은 좀 걸어잠구고 자.

현관도 잘 닫혔는지 잘 확인하고, 알았지?"


"엄마 내 집 훔쳐갈 것도 없어"


"..."


"아 알았어 닫고 잘게 진짜. 진짜 닫을게. 지금 닫는다.

소리 들었지?

끊어 이제. 빨리 자 이제. 엄마 내일 출근해야 하잖아"


"그래 딸. 끊을게. 잘자"





엄마에게 그 사건은 당시만 청천벽력 같았던 지난 과거가 아니었다. 사건은 다이아몬드, 금붙이들처럼 도둑 손에 붙들렸을 수도 있던 피붙이 딸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것이 상상이 되어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다. 나는 그날 처음 엄마의 가슴으로 도둑을 상상했다. 상상 속에서, 나는 하이츠 빌라 100층에 살고 있었다. 회색 창틀 위로 두 손이 올라왔다. 도둑은 겨드랑이에 창틀을 감기 시작했고 그의 팔 안쪽 한면은 이제 벽지와 닿았다. 지금은 막 다리를 올리려고 한다. 나는 그의 힘준 왼손 손가락의 끝을 풀고 파렴치한 오른 팔꿈치를 들어 바깥쪽으로 있는 힘껏 밀었다. 그는 사라졌다. 그렇게 엄마의 기억이 사라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그래도 수많은 그녀의 걱정거리 중 하나라도 그렇게 지울 수 있다면. 언제라도 그녀의 상상속으로 날아가 남자를 끊임없이 밀어낼텐데.


아래 편의점에서 남자들이 술주정을 부리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담배 연기가 벽을 타고 올라와 창틀에 비비적거린다.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가두는 것 밖에 없구나.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듯이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쓰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