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 요란한 안정제
정말 심하게 코를 고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내가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아버지의 코골이는 엄마의 어느 노력보다 강력한 태교음악이었다.
아버지의 태교는 나름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태에서부터 박자감을 익혀서인지 나의 박자감각은 서울대 음대 출신의 선생님도 칭찬하실 정도였다. 재미로 혼자 몇 번 친 드럼 소리를 듣고 교회 반주자리를 제안받기도 했다. 잘은 몰랐지만 코골이가 꽤나 큰 영향을 끼친 모양이다.
어렸을 때는 아빠의 코고는 소리가 마냥 재밌었다. 그 리듬의 불안정성에 귀 기울여 혼자 낄낄거리며 심지어는 녹음까지하며 참아도 새어나오는 소리를 손으로 막고 뒤집어지게 웃었던 적도 있었다. 아빠가 스스로 크게 코를 곤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물론 아예 코 곤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웃겼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어릴 때 아빠의 코골이는 아빠의 모습 중 가장 웃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유년기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뒤 부모님보다 늦게 자는 때가 많아졌다. 코골이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가끔씩 코고는 소리가 갑자기 멈추고 정적의 시간이 몇초 흐른 뒤 아빠가 가쁜 숨을 내쉬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방안에 들어가 아빠의 표정을 보면 몇 초 전까지 숨이 넘어가 죽을 표정을 하고 벌떡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을 부여잡고 밀린 숨을 내쉬는 아빠를 볼때마다 이러다 죽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생긴다. 자주는 아니지만 몇번씩 아빠가 코를 골다가 갑자기 코를 골지 않는 때가 있는데 언젠가는 아빠가 죽은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어 코 밑에 검지 손가락을 대어본 적이 있었다. 아빠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을 마셨다. 코를 골 때는 주로 입을 벌리고 있기 때문에 목이 많이 건조한 것이다. 목이 약한 아빠를 볼때마다 이걸 치료를 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러나 이어폰으로 노래를 많이 듣게 된 이후로부터는 아버지의 코골이가 귓속으로 들어갈 틈이 더욱 좁아졌고 코골이로 인한 건강 걱정은 자연스럽게 줄었다.
그 소리가 잊혀질 때 즈음,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배 한 쪽이 결리는 듯이, 가끔은 찔리는 것 같이 아팠다. 하루 정도 지속이 되다 밤 9시 즈음에 고통이 커져서 큰 병원에 갔다. 의사는 맹장이 많이 부풀어올라 오늘 안에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전에 수술을 한 적이 몇 번 있어 전보다는 두려움이 덜했지만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느닷없이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이 두시간 남짓 남았기 때문이다. 전처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없었다. 응급 병상 가운데 가만히 누워 있으니 엄마의 작은 분주함도 불안하고 심란한 마음으로 보였다. 그 상태로 몇 검사를 진행하니 수술이 실감이 되면서 벽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것이 약간씩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시계를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사람들의 발소리, 병상 움직이는 소리, 한숨소리, 데스크에 펜 굴러가는 소리 등이 들렸다. 눈 뜨고 있을 때는 조용하다고 생각했지만 눈을 감으며 들리는 약간의 소란스러움 때문에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떨리는 마음들이 느껴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 소리들을 비집고 둔탁하고 빠른 소리가 점점 커졌다. 웬 남자의 코고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응급 병동에서 요란하게 코고는 남자라니. 커튼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 남자를 보진 못했지만 상상 속에서 그는 맥이 빠진 표정을 한 사람들 사이 흰 침대 위에서 두팔 두발 뻗고 자고 있었다. 입도 크게 벌리면서.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 사람이 어떤 사유로 이 늦은 밤에 이곳까지 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이 병동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평온을 갖춘 사람은 그 사람일 것만 같았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잠에 들었고 누가 나를 깨웠을 때 그 소리는 사라져 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대로 누운 채로 수술실로 향했고 다시 잠에 들었다.
맹장수술을 할 당시 코를 골던 저편의 남자. 본인은 어쩌면 코를 골았다는 사실을 모를지도 모른다. 그 소리 때문에 누군가가 편안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더더욱 모르겠지. 누구보다 큰 소리로 코를 골면서 정작 본인은 모르는 우리 아빠처럼. 내 삶에서 그 남자 같은 존재는 바로 아빠다. 왜인지 그 남자를 상상했을 때 짙은 회색 정장을 입은 40-50대의 남자를 떠올린 것은 그냥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내가 엄마의 뱃가죽에 둘러싸여 알 수 없는 요란한 소리의 진원지에 감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찾아오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불안 속에서 그들의 존재는 가장 위트있고 독특한 안정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