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까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사랑은 필요 이상으로 관대하다.
책을 고를 당시는 시험기간이었고 7,8주차 즈음이었다. 갑갑한 마음에 뭔가 일탈을 하고 싶었다. 최소한 속박 없는, 탈피하는 중인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에 생각나는 책은 <그리스인 조르바> 혹은 <데미안>이었다. 그런데 두 책을 찾는 와중에 느와르 장르,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이 책이 눈에 띄어 꺼내보았다.
- 미국 황야 위에 깔린 포장도로 위 헤드라이트를 부라리며 달리는 차를 탄 느낌, 세피아 필터를 달고 두 남녀의 자극적인 사랑을 속도감 있게 그려낸 영화의 느낌이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선술집에 ‘프랭크’라는 인물이 고용된다. 프랭크는 주인의 부인 ‘코라’에게서 욕망을 품게되고 곧 그들은 연애를 하게 된다. 이들은 결국 남편 ‘닉’을 모의하여 살인한다. 그 후에 일어나는 감정들, 사건들이 메인 플롯이다.
-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욕정에 이끌려 가볍게 시작된다. 퇴폐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심하게 자유롭고 가벼워서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했다. 살인까지 저지를 정도로 그들이 사랑했구나 하며 그들의 사랑이 가장 극단의 사랑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다 읽고 나서는 그들이 사랑의 극단 근처도 다다르지 못했으며 사랑의 자극 정도에나 그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들이 사랑을 시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이해하는 것의 편의를 위해서 사랑이라 착각할 만한 것을 이 글에서는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모의된 살인은 그저 서로를 위해 희생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연인이 택한 제 삼자 희생시키기였다.애초에 둘의 사랑은 살인으로부터 틀어진 게 아니라 이미 틀어져 있었다. 욕망의 특성은 채워지면 공허하며 시간이 흐를 수록 무뎌진다는 것이다. (사랑은 오히려 정 반대이지 않은가) 그들의 공통적인 욕망 즉 성적인 욕구는 진작에 채워졌고 무뎌졌다. 그러니 남은 것은 개인의 욕구였다. 코라에게 살인은 무뎌진 친밀감을 등지고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인을 제공해주는 수단이었다. 동시에 개인의 오랜 욕구였던 가부장적인 남편으로부터의 도피, 복수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희망이었다.
반면에 프랭크의 입장에서는 살인이 그다지 필연적이지 않아보인다. 그러나 방랑한 생활은 하는 그는 얼마나 무모하고 멍청해보였는가 생각해본다. 살인을 저지른 직후의 상황에서도 섹스를 원하던 그의 모습은 살인이 코라를 계속해서 만날 수 있게 돕는 매개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지. 한 사람이 너무 억압되면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란 개념에 투영됨을 코라를 통해서 느낀다. 프랭크를 보며 욕망이 사랑이란 이름을 얻기 쉬움을 느낀다.
결론적으로 해결되는 듯한 시점에서조차 첫번째 살인과 관련있는 죽은 검은 고양이는 더 큰 몸집으로 살아 있는 채로 새롭게 나타났다. 살인을 모의한 때부터 그들 사랑에는 이미 한계가 도래했던 것으로 보인다.
프랭크는 부정하지만, 그의 무의식이 그녀를 결국 죽인것이라 짐작해본다. 더 정확히는 두 사람이 사랑을 착각하는 순간 어느 주체가 시작한 거라고 단정할 수 없이 재앙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픽션이 많이 생각났다. 의미부여하지 말고 그냥 느껴야 하는 책이라고도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말그대로 펄프 픽션이구나.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의미부여가 재밌는 걸.. 작가 케인이 이 둘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는데 이 작가 역시 나와 비슷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 때문에 그런 얘기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굳혔어. 도덕적으로는 충분히 끔찍하지만 살인이 사랑 애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남녀가 있고, 그런데 일단 저지른 다음 정신 차리고 보면 어떤 두 사람도 그렇게 끔찍한 비밀을 공유하고 는 같은 지구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게된 얘기야” 최근에 한국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걸 알고 있다. 남편을 죽이고 보험금을 타려고 했던 것, 그리고 수많은 지형 가운데 물이라는 물질이 죽음과 관련된다는 사실이 이 책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런 멍청한 생각을 하는 남녀는 실제로 존재하구나. 이 책 소개문에는 ‘어두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 이라고 쓰여있다. 나는 처음 이 내용들이 현실적이라고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으나 이해할 수 없는게 가장 현실적이라는 걸 다시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