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해보시죠!
저는 학자입니다. 사회과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느린 학습자이었습니다. 공부를 못해서 나머지 공부를 했습니다. 공부가 싫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려웠습니다. 학교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노는 것은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갔습니다. 방학이면 새로운 노트를 구입했습니다. 새 학기에 어느 과목이든 집중해서 잘해보려고 마음은 먹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첫 수업부터 도통 선생님께서 무슨 설명을 하시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 모든 것을 적었습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녹음을 하지 않았을까요? 칠판 내용 모두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위치까지도 말입니다. 저는 느린 학습자이었습니다.
느린 학습자의 사전적 정의는 '배움의 속도나 이해가 더딘 학습자'입니다. 학술적 정의로는 '느린 학습자'는 취약성인 지적 능력의 결함이 교육적으로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아 결과 적으로 인지적, 학업적, 사회․정서적 영역에 걸쳐 다양한 어려움의 증상을 보이는 학습자입니다(김동일 외, 2022). 이들은 주의력, 추론, 정보조직, 개념 이해, 일반화 및 적용, 구두 표현 및 듣기, 호기심, 창의력, 자신감, 리더십 등에 있어서 결핍을 경험하며 학습 장면에서 낮은 학업성취 및 학습동기로 인해 읽기, 쓰기, 수학 등의 학업 영역에서 기초학습 부진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2016년 「초․중등교육법」 제28조의 학습부진아 등에 대한 교육이 개정되었습니다. 개정법에서는 느린 학습자를 학습부진아에 포함하여 “성격장애나 지적 기능의 저하 등으로 인하여 학 습에 제약을 받는 학생 중 특수교육법 제15조에 따른 학습장애를 지닌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지 아니한 학생”으로 정의하였습니다. 이처럼 느린 학습자는 장애인이 아닙니다. 비장애인이지만, 학습 능력과 사회 정서 인지적 영역에서 다소 더딘 면이 있는 학생을 의미합니다.
집안은 가난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일찍 이혼하셨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돌봄을 받았다고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결과적으로, 청소년기에 약간의 일탈도 경험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학업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종국에는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34세에 취득했습니다.
그 사이 사회복지사로 일도 했고, 국회의원실 비서관으로 일하면서 ▲국정감사 ▲정부의 예산, 결산 심의 및 승인 ▲10건 이상의 법 개정과 ▲청문회 그리고 국무총리와 장관을 대상으로 하는 ▲대정부질문도 보좌했습니다. 무엇보다 결혼을 했고 애도 낳아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자로서 2019년도부터 현재까지 매년 꾸준하게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하게 대학원에 진학해서 학위만을 취득한 삶이 아닙니다. 입법부에서 근무했고, 지방의회에서도 근무했습니다.
사회생활만 10년이 넘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며 대학원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낮에는 일반대학원 석사 과정을 저녁이나 공강인 날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원서를 읽고, 과제도 하고, 소논문도 작성했습니다. 자기 계발의 연속이었습니다. 느린 학습자에서 나의 꿈인 학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정말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아동, 청소년 그리고 느린 학습자와 보호자분들께서 용기를 냈으면 합니다. 세상에 진짜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물론, 사회복지학이라고 해서 우습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통계 프로그램도 다룰 줄 알아야 하고, 박사학위 논문을 쓰려면 글발도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엉덩이가 무척 무거워야 하고, 100장을 훌쩍 넘기는 분량의 논문 작성 그리고 100개 이상의 참고문헌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학부부터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최소 10년 이상 공부해야 합니다.
정말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합니다. 느린학습자가 어떻게 박사가 되고, 그리고 입법부에서 보좌진으로 일할 수 있으며, 매년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면서 블로그도 꾸준히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가능합니다.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해왔습니다. 한때 박경철과 안철수씨가 청년 콘서트를 한답시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청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행보를 이어갔었죠.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한 명은 서울대 의과대 출신의 엘리트 그리고 한 명은 현직 의사.. 물론, 그들의 노력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년들 모두가 공부를 잘하기란 불가능하고, 또 저들은 이미 사회적 지위가 상위 0.1%에 해당하는 사람들 아닌가? 나같이 느린 학습자이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박사학위도 취득했고, 보통의 삶을 별 탈 없이 영위하는 사람이 용기를 주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비전을 갖자. 포기하지 말자. 그냥 해보자. 될 때까지 해보자. 성공은 장담할 수 없으나, 일단 해보고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판단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데 돈이 없거나 영어가 안되거나 글 쓰는 게 두려운 사람이 있다면 일단 원서를 펼치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가서 돈을 벌어보십시오. 무엇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진짜 되었습니다.
첫 대학원 학기 때 과제를 해갔습니다. 담당 교수님께서 그랬습니다. "아직 사회과학 글쓰기, 방법론에 익숙하지 않은 김진웅 원생,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창피했습니다. 그래도 했습니다. 나는 원래 느린 학습자이었으니까. 그래도 서울에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은가? 그래서 밤을 새워도 봤고, 주말도 없이 공부했고, 낮에는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일하면서 학비를 충당했습니다. 열심히 했더니 2학기 동안 장학금도 받아서 학비가 면제됐고, 국회에서 출퇴근하려고 중고차도 샀습니다.
느린학습자이어서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모든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배우고 익히고 익숙해지는 속도가 다를 뿐, 종착지에 가기까지 모두 어려워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일단 해보시죠! 그것이 당장은 유일한 길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