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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웅 Feb 17. 2023

삶의 밀도#9

비전(4): 유연함

유연함

비전은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 철학, 가치, 이념, 세계관, 삶의 목적 등일 것입니다. 때로는 비전을 뚜렷한 직업이나 업무, 역할, 기능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또 반대로는 뚜렷하기보다는 보다 포괄적이면서 지향해야 할 앞으로 나아가는 길 또는 목적지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비전을 명사로 보지 않습니다. 비전은 동사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전이 명사로 규정되는 순간 특정 직업과 업무로 특징지어진다면, 비전은 경직되고, 어쩌면 우리 삶의 여정이 끝마쳐질 때까지 도달하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의미에서 비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유연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확하게는 비전은 경직된 명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비전을 유연하게 규정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삶을 대해야 하는 태도는 유연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상황에 봉착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 또한 스스로 통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국적, 부모, 성별, 유전자, 지능 지수, 기질, 출생 환경, 사회적 상황 등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앞서 나열한 조건들은 사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죠. 살아가면서, 성장하면서, 또 죽을 때까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나 자신과의 관계이고, 나를 규정할 수 있는 조건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 앞에서 겸허해야 하고, 유연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것들 중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시간, 가치관, 삶의 목표, 배우자, 자녀 양육 여부, 직업 선택 등에 불과합니다.

저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환경을 탓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묵묵하게 내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 내에서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연하게 대처했습니다. 비전은 현재 내 삶에서 출발해 내 삶에서 마감하는 과정이고 여정이며, 목적지입니다. 그러므로 삶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은 곧 비전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내가 지향할 수 있는 비전만큼은 최대한 열어두고, 온갖 상황과 환경, 사건으로부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수가 되고 싶다거나 교사 또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것은 비전이 아니라 비전을 구현하는 매개체에 불과합니다. 교수는 가르치고 싶어 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그리고 후학을 양성함과 동시에 연구를 통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업입니다.

이는 아카데미에 소속되어야만 하는 직업입니다.


 대학이라는 상당한 고등교육기관의 임용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이루기 불가능한 직업입니다. 비전이 될 수 있을까요? 대학 교수가 되는 길은

그 어떤 길보다 명확하지 않고, 투명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으므로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서 100% 비전을 달성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교수라는 명사를 빼고, 교수의 역할을 하는

정보 전달자, 연구, 후학 양성은 오늘날 다양한 매체나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서 구현할 수 있습니다. 교수는 명사입니다. 경직적입니다. 하지만 정보 전달 행위, 연구 행위, 내 지식을 전달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등의 행위는 동사입니다. 즉,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실현 가능한 여백이 있습니다.


 저의 비전은 사회정의 실현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내가 아프거나 실직했거나, 출산, 장애, 고령, 단절, 소외, 우울 등으로 삶에 위기가 왔을 때 국가는 최소한 굶어 죽게 하지 않도록 지원하고,

인간으로서 품격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구성원 개개인을 돌보아야 한다는 이념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의 비전은 유연합니다. 교수가 되지 않아도, 정치인이 되지 않아도, 사업가가 되지 않아도 비전을 이룰 수 있는 경로와 방법은 다채롭고 또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비전은 유연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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