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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교육 Sep 05. 2022

에디슨 명언 1%의 진실, R=VD와 칼비테 교육법

[1%의 영감]

© qimono, 출처 Pixabay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디슨의 명언이 있다.


Genius is one percent inspiration and ninety-nine percent perspiration.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토마스 에디슨


그러나 이 명언은 에디슨의 의도와는 다르게 알려져왔다.

에디슨의 의도는 99%의 노력이 1%의 영감이 없다면 쓸모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에디슨의 인터뷰 기사와 자서전에 실려있다.


어떤 사람들은 목표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달려간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을 번다. 그러다 문뜩 끝이 없는 자신의 트랙을 발견하고는 허무에 빠지거나 좌절하거나 현실을 합리화한다.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뭐."


그러다 일자리를 잃거나 건강이 나빠지거나 은퇴가 다가오거나 하는 큰일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인생의 방향에 대해 고민한다. 이처럼 에디슨이 말하는 1%는 99%보다 훨씬 중요하다.


사람들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반응을 보면 우리가 흔히 받는 보편적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나라가 급격한 성장을 이루는 시기에 정부는 교육은 말 잘 듣는 일꾼을 기르는 보편적 교육을 제공했다.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였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든 시대를 통틀어 다른 교육을 받는 계급은 항상 있었다.


남들이 1%의 영감 없이 99%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채워줄 때, [꿈꾸는 계급]은 1%의 영감으로 삶의 99% 노력조차 다른 사람들이 대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버렸다.




[1%의 꿈꾸는 계급]

© KELLEPICS, 출처 Pixabay

우리도 [꿈꾸는 계급]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교육을 받는 계급을 나는 다른 말로 [꿈꾸는 계급]이라고 부르고 싶다. 좀 더 정확히 명칭 하자면 [스스로 꿈꾸는 계급]이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인문 고전을 배우고 스스로 생각하고 깨우치고 실천하는 교육을 받는다. 이 꿈꾸는 계급은 대부분 가문을 이어 지배계층이 되거나 부유층이 된다.

이 계급의 사람들은 스스로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꿈을 꾸고 꿈을 현실화 시키고 일종의 시스템을 만들어 꿈을 꾸지 않는 추종자들을 불러 모아 일하게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또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99%의 노력을 허비하지 않는다. 1%의 꿈을 향해 달릴 줄 안다. 자신들의 꿈을 그리는 데 99%의 노력을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한계 짓지 않고 더 큰 꿈을 그릴 줄 안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99%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다.

 

© petefogden, 출처 Unsplash


일론 머스크의 1%의 꿈은 화성에서 인류가 사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전기차 회사(Tesla)를 만들고 전기차의 전기 공급을 위해 태양광 사업(Solar city)을 하고 있으며 인류를 화성에 옮기기 위한 우주선 사업(Space x)에도 뛰어들었다. 일론 머스크의 [화성 정착의 꿈]을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이룬 일들을 비웃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누구보다 R=VD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화성에 자기만 사는 것도 아니고 인류 정착이라니 말이다.


남들이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것을 상상하고, 생생하게 꿈꾸고, 현실이 될 수 있다 믿고, 실제로 이루어 낸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는 엄청난 독서광이다. 그들이 어디에서 다른 사람이 현실을 바라보면서 꾸지 못하는 꿈을 그릴 수 있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1%의 능력을 키우는 방법]

우리가 또는 우리의 자녀가 위에 언급한 세 사람, 그리고 에디슨과 같은 업적을 남기지는 못할지라도 남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서 하나의 부품처럼 살아가지 않으려면 그들처럼 1%의 꿈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보편적인 부품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이 아닌 다른 교육을 받아야 한다.


보이는 것,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 다른 사람이 주입하는 것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사색하고 '의견'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의 확은 한 번에 되지 않는다. 지금 20대 이상의 나이라면 이미 20년 이상을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답을 도출하는 것에 최적화된 두뇌를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틀을 깨는데 독서와 사색, 그리고 토론만 한 것이 없다.


아직 뇌가 유연한 어린 나이라면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이 높은 동시에 실패 가능성도 높다. 이 다른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는 1%도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답을 내는 것은 더 이상 성공의 길이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도 모두 자녀를 똑같은 교육과정에서 똑같은 답을 내는 훈련을 받는데 시간과 노력과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내가 받았던 20년의 보편적 교육은 대학 졸업 후 나의 인생 설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난 경험은 나에게 엄청난 방황을 가져왔고, 스스로 인생 설계를 할 줄 몰랐던 나는 인도자 없이 계속해서 남들이 그려놓은 궤도에 오르려고 노력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 하는지, 어떤 능력으로 세상에 유익한 사람이 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러나 이런 똑같은 교육을 2-30년 어린아이들이 똑같이 받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참담하다.


© 3tnik, 출처 Unsplash




[1%를 위한 칼비테 교육법]

칼비테는 [칼비테 교육법]에서 100년이 지나면 자신이 아들에게 했던 교육이 보편화되어서 사람들의 보편적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때보다 더 나아진 것은 없다. 교육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 아직도 1%의 사람만이 꿈을 꾸고 99%의 사람들은 그들의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부품처럼 살아간다. 이제는 1%의 사람들이 AI를 통해 더욱 쉽게 시스템을 만들고 99%의 사람들은 더욱 쉽게 생각 없이 그들의 시스템 속에 편입된다.


© yasya, 출처 Unsplash


              유튜브가 띄워주는 알고리즘 영상으로 몇 시간씩 허비한 적이 있지는 않은가.            

              릴스를 생각 없이 보다가 하루에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적이 있지는 않은가.            

              출퇴근 길 대중교통에 몸을 맡기고 습관적으로 접속한 포털 사이트에서 띄워주는 기사도 본문은 읽지 않고 댓글만 보고 끝내지는 않는가.            

              남들이 말하는 근거 없는 카더라 소문을 직접 찾아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한적이 있지는 않은가.            

              나에게 주어진 일을 '왜'라는 질문 없이 사무적으로 처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갑자기 퇴사한 후에 자신의 삶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            


위에 해당사항이 된다면 (위 기사에 의거해 말하자면) 프레카리아트 계급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 santesson89, 출처 Unsplash


21세기 4차 산업 시대에 19세기 [칼비테 교육법]이 우리를 프레카리아트 계급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 있다. 칼비테가 살았던 당시도 공장에서 증기기관이 300~400명의 일을 해치우던 산업 혁명이 일어나던 때였다. 그 시대의 변혁 가운데 칼비테는 [칼비테 교육법]으로 아들을 성공적으로 교육했다. 이후에 유럽의 지배계급은 칼비테 교육법을 표방하여 교육하였고 어느 순간 사라졌다 하버드 도서관 구석에서 재발견 되었다. 이 책을 발견한 교수는 [칼비테 교육법]으로 자신의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교육했다. 이는 [칼비테 교육법]이 방법론을 말하는 교육법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교육의 본질을 말하는 교육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칼비테는 자신의 교육법을 A-Z까지 모두 따라 해야만 교육에 성공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칼비테가 교육의 정수라고 여기고 놓치지 않았던 것을 파악해야 우리는 현재 시대에 맞게 아이들을 성장시킬 수 있다. 교육 이론을 알려주는 교육법은 많지만, 실제 성공한 사람들의 교육 방법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가정환경이나 부모의 교육 수준이 어떠했든지 각자의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방대한 독서량]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칼비테 때부터가 아니라 그 훨씬 이전 고대시대부터 그랬다. 칼비테는 독서 교육은 물론이고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하여 올바른 인격 형성에 큰 관심을 쏟았다.


독서 중의 독서는 생각의 문을 활짝 열고 생각의 영역을 우주만큼 넓게 해주는 [고전 인문학 독서]이다. 칼비테는 아이가 알아들을 수 없을 때부터 고전을 읽어줬다. 역사적인 업적을 남겼던 인물들뿐 아니라 스티브 잡스도 빌 게이츠도 일론 머스크도 세계적인 회사를 설립하고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역사적인 위인들 또한 고전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가 잘 아는 이순신 장군도 당시 글을 읽지 않았던 무과 장수들과 달리 여러가지 병법책은 물론 고전의 지혜를 연구하고 습득했기 때문에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 timmossholder, 출처 Unsplash


또한 사람답게 성장하고 사람답게 사는 것에 '경제'영역이 빠질 수는 없다. 우리도, 우리의 자녀도 '꿈꾸는 계급'이 주는 만큼 받고 그 안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 원치는 않을 것이다. 독서를 통해 생각을 넓히고 R=VD를 통해 생생하게 1%를 꿈꾸고 99%의 노력을 한다면 우리는 '꿈꾸는 월급'만큼 받을 수 있다.


빌 게이츠의 시급은 2018년 기준 약 5억 원이라고 한다. 일반 직장인의 평균 8시간 노동으로 계산했을 때 시급은 17,361원이다.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부유하고 남들도 도와주는 사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경제력'은 반드시 뒷받침 되어야만 한다.


칼비테도 아들을 데리고 시장을 다니며 경제 공부를 시켰고, 스스로 돈을 버는 것도 가르쳤다. 칼비테 교육법이 그저 아버지와 아들의 행복한 꿈나라 교육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처럼 칼비테는 아들의 모든 자연적인 소질이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1%를 발견하는 행복한 교육]

칼비테도 말했듯 칼비테 교육법이 100% 완벽한 교육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안에 아이를 향한 관심, 사랑, 인내, 격려 등의 중심 메시지가 아이의 1%를 발견하게 하고 1%의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는 칼비테 교육법의 비법이라면 비법이라고 생각한다.


칼비테의 교육은 아이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특별히 실천하는 교육을 가정한다. 뛰어난 교육을 위해서는 건강, 시간, 지식, 경험이 필수이며, 아이의 교육을 잘 시킬 수 있는 내적 자질과 철석같은 의지가 필요하다.


부모가 교육의 중요성은 알지만 스스로 교육할 수 없을 경우 뛰어난 교육자를 고를 수도 있다. 현명한 부모는 대리 교육자와 교육 방법을 공유하고 교육자에게 자유로운 의지를 허용한다. 그리고 교육자에게 당연히 지켜야 하는 존중과 우의는 잊지 않는다.


아이에게 가장 큰 리스크는 저렴한 교육자를 찾고 자신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부모다. 이성적이기보다 감각적인 사랑을 쏟거나, 인간적이기보다 동물적 본성을 따라 행동한다거나, 돈이나 명예나 쾌락이나 사교를 앞세우는 부모는 아이를 제대로 교육할 수 없다.


칼비테는 열등한 아이에게 정성을 쏟아부으면 뛰어난 아이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을 아이를 통해 증명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넘치는 돈, 넘치는 음식, 넘치는 옷, 넘치는 친구가 아니다. 부모만이 줄 수 있는 관심과 사랑이 아이의 1%를 발견하게 한다. 세상에서 말하는 것들을 다 따라갈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보편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고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이해하고 습득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의 성격도 모두 다르다. 이를 알아주고 한 아이에게 딱 맞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뿐이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하라고 가르쳤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아이 문제로 인해 학부모 면담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상황을 잘 몰랐던 부모는 담임 선생님이 아이가 학급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한다는 말에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는 수업 시간에 모르는 것이 생겨서 손을 들고 질문했는데, 선생님이 나중에 다시 질문하라고 했고, 조금 지나 다시 손을 들고 질문했더니 수업이 끝날 때 질문하라고 했고, 수업이 끝날 때 아이가 다시 질문했더니 선생님이 아이를 시끄럽게 한다고 혼냈다는 것이다. 아이의 부모님은 방학 동안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산 교육을 시켰다. 박물관, 미술관 등을 데리고 다녔고, 처음엔 흥미 없던 아이가 멋진 그림을 그린 사람을 궁금해했고 책이나 전문가를 통해 궁금증을 풀어주며 교육을 이어갔다. 방학이 끝날 때쯤 부모는 아이에게 '다시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고개를 떨구며 절레 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부모는 그때부터 아이를 홈스쿨링 하기 시작했다.


부모에게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백일만 지나면, 돌만 지나면, 아이가 걷기만 하면, 교육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아이를 맡기고 하루라도 빨리 아이로부터 독립하기 원하는 부모가 많다. 부모 자신의 꿈도 중요하고 1%가 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겠다.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한 부유층 자녀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지, 비행 청소년들이 어떤 어른으로 자라는지, 청소년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지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본다.


행복한 아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


부모가 꿈꾸는 1%에 아이들의 놀라운 성장도 포함되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1%를 위한 교육에 관심 갖는 부모가 늘어 행복한 아이들이 늘어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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