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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교육 Sep 01. 2022

평범한 부모도 영재 발굴단이 될 수 있을까



© ShiftGraphiX, 출처 Pixabay


이 제목의 전제는 평범한 아이는 없다는 말이다.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사실 평범한 부모라는 말도 굉장히 합리적 정의가 어려운 단어이지만, 부모들은 대부분 자신을 평범한 부모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적어보았다.


자녀 교육에 앞서서 누가 이 교육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일 먼저 다가올 것이다. 나는 시간이 없는데, 나는 능력이 없는데, 나는 경제적 여력이 없는데...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자녀 교육을 '제대로' 시키는 것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지식이 풍부하고 능력이 탁월한 교사라고 해도
의도와는 달리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책 전반에 걸쳐 증명할 생각이다.

칼비테 교육법, 19-20p


칼비테는 Chapter 1에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자기 학생/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교사와 교육자를 위해서만 쓰고 있다고 말한다. 즉, 칼비테가 이 책 전반에 걸쳐 증명하는 바는, 아이를 비범한 아이로 키우는 최고의 방법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사랑'이 모든 부모와 교사를 '영재 발굴단'으로 만들 수 있다.


어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지 않겠느냐,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원하는 사람에게 계속 들러붙는다면 둘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반대로 부모의 무한 스킨십이 필요한 자녀에게 엄격한 거리를 유지한다면 아이는 다른 어떤 것을 채워준다고 하더라고 애정 결핍으로 자랄 것이다.


칼비테는 아들을 계속 관찰하고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교육을 시키고 무엇보다 삶을 통해 배운 내용을 경험하고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갓 5살이 된 아이를 책상에만 앉히고 10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아 영재가 된 아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건강을 잃었고, 무엇보다 행복한 경험의 자산을 잃었다.


© carolinehdz, 출처 Unsplash


끝내 이루어내고 행복해지기를!

칼비테 교육법, 27p


칼비테는 결혼 전부터 결혼 후 생길 자녀 교육을 위해 연구했던 것 같다. 칼비테가 본 기존 교육법들의 문제는 아이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방법을 다루지 않고 지나치게 학문적으로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교육법은 상황이 바뀌면 쓸모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과정이 수시로 바뀌는 우리나라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칼비테가 처음부터 끝까지 원했던 것은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었다.


영재가 되고 천재가 되고 세상의 큰 명예를 추구하는 교육이 아니었다. 성과 중심적 교육은 절대로 아이들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아이가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마주 보는 것, 그 경험을 쌓는 것이 성장과정임을 인지할 때 아이는 자기 시간에 맞게 자라고 성공 경험을 통해 거침없이 자랄 수 있다.


아이가 결국 이룬 것이 공무원이든, 행복한 가정이든, 월급쟁이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책임감 있게 경험하고,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느냐가 교육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


© drewcoffman, 출처 Unsplash


칼비테는 이 교육법 책을 결혼 전에 연구한 직후, 아들을 낳은 직후, 아들이 특출함을 보인 직후, 아들이 대학에 합격한 직후에 쓰지 않았다. 모든 성공법을 담은 저자들이 듣는 질문이겠지만 칼비테 또한 왜 진즉 이 책을 쓰지 않았냐는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칼비테는 아들이 열여덟살 철학 박사, 법학 박사가 되고 여러 학회 회원으로 국비 지원을 받아 학술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아들의 교육이 완성되었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칼비테는 자기가 어떻게 교육했는지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교육법은 실험이 불가하거나 실험 기간이 오래 걸린다. 아니면 아주 단기간의 몇 명의 성공자를 가지고 교육의 실효성을 증명을 시도하기도 한다. 칼비테는 18년과 임신 기간의 10개월까지 합해서 긴 기간 동안 직접 아들에게 실험한 교육법을 성공한 후에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표본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칼비테 아들은 어렸을 때 저능아 판정을 받았던 만큼 특별한 표본으로써 상위의 많은 표본들,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좋거나 평범한 아이들의 표본들을 다 아우를 수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칼비테가 한 교육법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첫 번째는 사랑) 두 번째는 고전 인문학 교육인데, 이 방법은 인류 역사에 걸쳐 증면된 바가 있는 교육법이다. (인문학 교육에 대해서도 추후 다뤄보겠다) 이 교육에 더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더해진다면 누구나 자녀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영재 발굴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칼비테의 주장이다.


건강한 보통 아이가 교육을 제대로 받으면 
특출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칼비테 교육법, 31p


"대여섯 살 때는 타고난 재능보다는 교육에 더 좌우됩니다. 물론 소질도 서로 다르게 태어나지요.

하지만 우리가 흔히 믿는 것보다 교육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칼비테는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프랑스 계몽기 철학자, 엘베시우스의 말을 인용했다.

하지만 당시 칼비테와 함께 모임을 했던 참된 교육에 열중하는 교사와 목사들은 이 말에 반박했다. 칼비테는 자신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이 나에게 아이를 주신다면, 자네들 견해대로 아이를 탁월한 사람으로 한번 교육해 보겠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실천했고 아들 교육에 성공했다. 그때 모임에 있던 사람들은 수년이 흐른 후 칼 비테 아들의 성장을 보고 칼비테의 주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omarlopez1, 출처 Unsplash


그럼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의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것이 가장 궁금한 질문일 것이다. 각 사람에게 필요한 사랑의 언어가 다른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랑의 언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내'.


재능 없는 아이라도 인내하고 기대하라

칼비테 교육법, 36p


칼비테 본인은 부모에게서 이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스스로 '잘못된 교육을 받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게디케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데 칼비테의 소심한 행동은 꾸짖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행동에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 칼비테는 열네 살에 동급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제각각인 아이들에게 한 명씩 맞춤형으로 수업을 진행했고 아이들은 칼비테에게 배우고 싶어 했다.


이때 칼비테는 "아이의 특성에 맞게 가르치면 다소 느린 아이라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에도 칼비테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기에 맞춤형 교육을 실험해 볼 기회가 많았던 것 같다.


한 번은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부모 밑에서 엉망으로 자란 일곱 살 아이를 맡았다. 칼비테는 3일간 그 아이를 관찰만 했고, 부모와 조부모에게 3개월간 자신의 교육 방법을 무조건 따르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칼비테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가 된 것처럼 행동했다. 아이가 바뀌었으면 하는 모습으로 직접 보여주고 격려했다. 제대로 씻는 법도 모르던 아이 옆에서 꼼꼼하게 씻는 법을 보여주고 씻고 나서의 상쾌함을 알려주었다. 밥을 먹을 때도 적당량만 먹도록 했다. 식후에는 함께 산책을 하며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면 아이는 빨리 잠에 들었고, 건강해졌다. 그러고 나서 칼비테는 아이를 교육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아이에 맡게 가르치자 아이는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엉망이던 아이는 빨리, 쉽게 배워 가족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라 명예롭게 장교로 임관되었다. 아이의 교육이 다소 늦었음에도 칼비테의 교육법은 성공했다.


© ha11ok, 출처 Pixabay


칼비테 당시의 상황이 좋아서 자녀 교육에 성공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칼비테가 살던 당시 유럽 각국이 요동치고 칼비테의 조국 프로이센도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아이에게 관심을 쏟는 환경은 아이였다. 그 당시 주요 주제는 끔찍한 사건, 불안, 희망, 도움에 대한 갈구였다.


시대적으로도 조기교육에 반대하는 편견이 뚜렷했다. 전쟁의 참화로 교육의 지원을 받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칼비테는 교육의 성과를 아들을 통해 입증했고 조국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귀족들의 지원까지 받았다. 이는 칼비테의 교육이 성공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칼비테의 아들은 어린 나이로 대학에 가고 박사학위를 땄지만 칼비테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해방을 외치며 혼자 내버려 둔 것이 아니다. 아들은 뛰어났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강의도 함께 들었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는지 옆에서 끝까지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점차 아들과 처음에는 짧게 떨어져 지내는 연습을 하면서 아들이 적응을 잘 하는지 살폈다. 칼비테는 아들이 어딜 가서든 배울 수 있도록, 자연환경과 예술 작품을 보고, 도서관을 이용하고 학자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도록 조언했다.


나는 아직 어린 아들을 불쑥 세상에 밀어 넣지 않으려고 했다.

칼비테 교육법, 49p



© benwhitephotography, 출처 Unsplash
평범한 아이도 영재가 될 수 있다

칼비테 교육법, 51p


"교육은 평범한 아이도 비범하게 바꾼다." 칼비테가 줄곧 주장하는 명제다. 같은 맥락으로 "비범한 아이라도 부주의하고 부적당한 교육을 받으면 재능을 향상시킬 수 없다."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개개인에게 맞춰진 특별한 교육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 특별한 교육을 맡은 사람은 성과를 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온 힘을 쏟기 때문이다. 평범한 교육 환경에 놓인 비범한 아이보다 특별한 교육 환경에 놓은 평범한 아이가 더 뛰어난 사람으로 교육받는 것이다. 칼비테의 아들이 바로 그런 경우다.


최근의 교육 흐름은 이와 정반대로 흐르는 것 같다. 직접 교육 현장에 가 보아도 부모는 없고 아이만 있다. 학교에서 교사는 행정 업무와 다수의 아이를 돌보느라 한 아이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아이들의 돋보이는 행동은 교사에게는 추가 업무일 뿐이다. 학원의 교사에게 아이들의 행복이 우선순위일 리 없다.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가 학원을 돌고 돌아 저녁에 집에 도착하면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잠을 잔다. 청소년기가 되면 집에서 잠만 잔다. 부모와의 관계는 진전될리 없다. 청소년 사고 증가는 당연한 수순이다. 다른 어떤 정책이나 법률이 개정된다고 해도 가정이 회복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필요하다. 관심과 사랑을 주는 부모, 인내해 주는 부모 말이다. '자식 농사'라는 말은 여러 가지의 의미를 담겠지만 농사를 한 번이라도 지어본 사람은 얼마나 많은 케어가 필요한지 짐작할 것이다. 농사도 천편일률적으로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날씨와 지형에 따라 다르고 주변 환경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하물며 농사도 그런데 자식 농사는 얼마나 더 많은 관심과 수고가 필요할까. 이런 말을 들으면 '너무 수고로워서' 아이가 없이 살겠다는 부모가 생길 수도 있겠다. 아니 이미 많이 생겼다. 그러나 '농사'를 짓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 '자식 농사'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바꾸는 문제이다.


최근에 만난 한 분은 비혼 주의자였는데 늦은 나이로 결혼을 하셨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는데 자식이 주는 기쁨을 모르는 인생을 살았을 뻔한 자신의 철없는 신념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하셨다. 자녀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이곳에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자식을 낳았다면, 낳기로 했다면, 낳을 계획이 있다면 자녀 교육에 대해 더 심도 있게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 [칼비테 교육법]을 근거로 포스팅을 해본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우리는 친환경 사업도 하고 환경 보호도 한다고 한다. 맹꽁이 한 마리 때문에 수백억의 공사가 멈추기도 한다. 행복한 아이는 초록색 세상에서 나지도 않고 맹꽁이가 사는 동네에서 나지도 않는다.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은 가정에서 행복한 아이는 자란다.


© carolinehdz,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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