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는 산보다는 바다이던 사람이었다 물 공포증이 있으면서 말이다.
뛰는 게 싫었다 아니 걷는 것도 싫어했다 발바닥이 땅의 닿는 진동이 오래가는 게 싫었고 아팠다. 그만큼 육지가 싫었나 보다 물도 육지도 아니고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어디서 태어나야 할지 고민이다.
이런 내가 새벽에 산을 올라가야 하다니,그것도 6.5km 군대 뜀걸음도 3km인데…
‘상명하복’
“그래 짬찌인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그냥 가자”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공존하는 파견지의 산봉우리 가다 보면 하늘 끝까지 줄지어 있는 계단들이 보인다 우리 부대에서는 일명 ‘천국의 계단’이라 부른다.
계단을 오를 때면 위를 보고 걸으면 안 된다 땅에 머리를 숙인 채 뇌를 빼고 걸어야 한다 그래야 찢어질 거 같은 허벅지를 조금이나마 속일 수 있다, 끝을 생각하지 않고 걸을 때 순식간에 끝에 다다를 수 있다.
“조금만 힘내자 이제 거의 도착이야”
1번 울타리부터 800번 울타리 까지가 길이 가장 험한 곳이다 그래서 800번만 지나면 길이 완만 해져 쉬어진다 그리고 800번 울타리가 있는 곳이 첫 번째 초소가 있는 곳이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언덕 끝에 보이는 초소, 옆에서 같이 가던 후임의 표정이 밝아진다. 쉬지 않고 걸었던 탓에 다리의 힘이 쫙 풀려 초소 앞에 주저앉아 버렸다.
공격군장에 몰래 챙겨 왔던 물과 초코과자를 꺼내 나눠 먹으며 어두운 밤하늘 가운데 산 아래 민가가 보였다. 당장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시골이라 그런지 아파트보다는 옛날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크지는 않지만 미세하게 빛을 밝히며 자신을 나타내고 있었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새벽감성을 자극해 왔다.
“개운하다!”
이런 맛에 산을 오르나 싶었다 힘들고 지친 시간들은 어디 가고 땀도 다 마르는 이 느낌이 너무 좋았다. 지금 이 순간, 냄새, 호흡이 전역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