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글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질풍노도를 쌍수 벌려 맞고 있던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마다 장래희망을 바꾸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내 장래희망란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시인'이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문학이라고는 전혀 관심에 없던 내가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딱히 없었다. 그냥 짧은 몇 구절에 가치를 담아내는 간지가 그냥 좋았다. 그래서 나는 내 얘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고모에게 다가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나는 눈앞이 아른거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당연히 고모입장에서는 엊그제까지 의사를 하겠다던 놈이 뚱딴지 같이 갑자기 작가가 되겠다고 하니 말이 곱게 나오지 않을 리가 만무했을 것이다. 또 게다가 당시만 하더라도 글을 쓰면서 돈을 번다는 일은 그냥 배고픈 예술가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고모의 염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그 장면이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별 것 아닌 그 한 마디를 마음속에 담아냈다.
그런데 세상이라는 것이 정말 공교롭다. 십 수년이 지난 지금, 나는 글을 쓰면서 돈을 벌고 있고, 내 곁에는 고모가 계신다. 물론 오로지 글을 통한 단편적인 수입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직접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이유가 뭘까?
내가 추측하는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글을 쓰는 일이 전문적인 분야로 인정받게 되었다.
라디오와 TV의 보급 이후 글은 가지고 있던 영향력을 잃어오고 있다. 이는 '상상'이라는 행위가 생략된 영상이나 음성이 가진 파괴적 특성에 결부된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활자가 주는 정보를 경시하고, 책을 멀리하고 있는데, 그 결과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실질 문맹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히려 글은 실질 문맹률이 75%나 되는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꽤 요긴한 비즈니스 수단이 되고 있는데, 글을 많이 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글을 쓰는 일은 하나의 능력이나 기술로 인정받고 존중받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단어의 탁월한 조합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카피라이터나 마케팅에 필요한 글을 수주받아 대신 작성해 주는 블로그 마케터 등이 있을 수 있겠다. 이들은 경제적 수입을 얻기 위해 더 나은 글을 고민하고 적어간다. 이런 점에서 글을 쓰는 일은 이제는 또 하나의 전문화된 업무라고 볼 수 있다.
2. 글의 쓰임새가 많아졌다.
과거에는 문학과 각본, 신문과 같이 글을 쓰면서 경제적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분야가 다소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분야의 칼럼이나, 마케팅 원고, 유튜브 대본 스크립트와 같이 비교적 다양한 영역에서 글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이 앞서 말한 글 쓰는 일의 전문화와 맞물려 글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분야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글이라는 것이 영상이나 음성에 비해 아날로그 한 정보 전달 매개체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에 가치가 매겨지는 것은 글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기능이 있기 때문인데, 영상과 음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앞선 정보가 휘발되는 반면, 글은 시간적 흐름에 따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평면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기는 손과 시선의 움직임만으로도 마음대로 원하는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따라서 글은 그것이 가진 고유한 기능을 이유로 앞으로도 계속 가치 있는 정보 전달 매개체로 남을 것이고, 우리가 인공지능과 사람을 동일시해 인공지능이 쓴 글이 사람의 글을 모두 대체하는 그날까지 경제적 수입을 불러 들일 수 있는 수단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