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라는 무기로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남기.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카페에 놀러 왔다. 수 년만에 만났지만 마치 어제 저녁까지 술을 마시고 방금 또 본 것처럼 우리의 대화는 막힘이 없었다. 하지만 곧 이내 서른 줄이 넘어간 아저씨들의 대화는 빠르게 현실적인 주제로 넘어갔다. "요새 카페 장사는 잘 되나? 이 동네 오랜만에 오니까 주변에 카페 엄청나게 많이 생겼던데." "어 맞다. 새로 생길 때마다 나눠먹는거지 뭐. 그리고 경기가 워낙 안 좋으니까. 그래가지고 다른 일 같이 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내 부밍아웃(부업+커밍아웃)에 내 친구는 마시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재빨리 내려놓았다. "어? 무슨 부업?" "내 글 쓴다." 돌아올 질문은 뻔했다. "무슨 수로 글을 가지고 돈을 버는데? 뭐 쿠팡 파트너슨가 그거?" "아니, 말하면 복잡하고 쉽게 생각해서 블로그나 유튜브 관련된 일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다음에 그놈이 무슨 질문을 할지 알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내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 "얼마나 버는데?" 무례 섞인 질문에 대답하기 귀찮아진 나는 대답 대신 마들렌으로 그의 입을 막아봤다. 그러나 여선생의 첫사랑 얘기를 기대하는 남고생처럼 총기 있게 쳐다보는 그의 눈빛을 간과 할 수 없던 나는 "너네 회사 과장 정도는 벌 걸?"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내가 글을 쓴다고 하면 글로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했던 사람들만 모아도 보병 사단의 한 소대 정도는 됐을 것이다. 사실 그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가만히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돈을 번다는 것은 시샘을 받기 쉬운 일일뿐더러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것은 문학 작가나 전문 서적 저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이런 반응은 우리 가족들도 예외는 아니다. 매형은 아직도 내가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어, 내가 맨날 누나에게 거짓말하는 줄 알고 있다. 우리 아버지 또한 내가 카페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으면 놀고 있는 줄 아시고는 청소 좀 하라는 잔소리로 돌림 노래를 부르신다. 이와 같이 이들이 내가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아마 자본주의 속에서 글이 가진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속에서 글은 어떻게 가치가 될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 먼저, 자본주의 본질에 대해 인지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란 모든 생산요소에 대한 개인적인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체제이다. 여기서 소유되는 재화나 서비스가 가지는 가치는 공급과 수요에 따라 결부되는데, 이전 파트에서 말했듯, 글이란 음성과 영상에 비해 아날로그한 정보 전달 매개체이다. 하지만 그 정보가 휘발되지 않는다는 글이 가진 특수 기능은 수요자에게 있어서 충분한 설득력을 가져다준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유명한 성수동 소바 업체를 홍보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 어떤 문구 없이 조리사가 음식을 하는 모습이 썸네일(영상 초면 이미지)에 찍혀있는 A 영상과 똑같이 조리사가 음식을 하는 모습에다 '하루 700명이 줄 서는 성수 소바 맛집', '일 매출 1200만 원'이라는 문구가 같이 적힌 썸네일이 찍힌 B영상이 업로드된다면 과연 어느 영상이 더 많은 조회 수를 얻을 수 있을까?
<성수동 소바 업체 홍보>
- 영상 A : 조리사 (추가 문구 X) 썸네일
- 영상 B : 조리사 + '하루 700명이 줄 서는 성수 소바 맛집', '일 매출 1200만 원' 이라는 문구가 적힌 썸네일
십중팔구 많은 사람들은 조금 더 신뢰감이 드는 B영상을 클릭할 것이다. 이처럼 글은 '평면적 정보 전달'이라는 본질적인 기능을 통해 영상과 음성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정보들을 설명한다. 이처럼 설명은 곧 설득으로 전환되며, 설득은 곧 마케팅으로 이어진다.
글이 가진 마케팅 기능은 수요자에게 재화나 서비스를 판매하려는 공급자에게 있어서 수단과 도구가 된다. 이윽고 글이란 공급자에게 판매되는 또 하나의 서비스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글이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글이 팔리기 위해서는 고객의 니즈에 맞는 방향으로 글을 써야 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우연인지 운명인지 나는 살아오면서 때때로 내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 글을 써왔고, 그 덕에 이 과정들을 월반(越班) 하게 됐으며, 빠른 속도로 글을 쓰면서 돈을 버는 일에 익숙해졌다. 만약 이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크게 얻지 못했을 것이며, 아틀라스처럼 빚더미를 등에 지고 악순환의 구심점까지 빨려 들어 이렇게 브런치북에다 내 경험을 연재할 각오를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글쓰기를 열망했던 내 현상적 자아를 되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현재 관용어처럼 쓰이는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라는 문장은 내 삶을 관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