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장미정원
"지원아..... 나 좀 도와줘......"
못 이기는 척 텐트 밖을 내다보았다. 구부정한 자세로 물이 질질 흐르는 이불을 들지도, 내려놓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이거..... 왜 이렇게 무겁지?"
"물을 먹었으니깐 당연히 무겁지요!"
"이것 좀 어떻게 해줘......"
나는 털레털레 다가가 이불 빨래를 도와주었다. 둘이 들기에도 너무 무거웠다. 건져내고 헹구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아니 도대체 세제를 얼마나 넣은 거예요! 거품이 사라질 생각을 안 하네! 해지면 밤이슬 내릴 텐데 이걸 어디에 널려고...... "
"이렇게 무거울지 몰랐지."
"세탁기도 없는데, 아 진짜!."
언니는 풀 죽은 채로 말없이 조물조물 헹구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피곤한데, 자꾸 피곤한 일들을 만들어 대는지 알 수 없었다. 몇 번의 헹굼을 반복하고 나서야 빨래는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처마 양쪽 끝에 빨랫줄을 묶어 고정시켰다. 물 먹은 이불은 너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질질 흐르는 물에 우리 몸이 다 젖고 나서야 간신히 빨랫줄에 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불을 버티기엔 줄이 너무 약했는지 한쪽이 툭 끊기는 바람에 이불은 여과 없이 마당 위로 떨어졌다.
"안 해! 안 해! 아 짜증 나 미치겠네! 으아아아아!"
결국 언니는 이불을 마구잡이로 대야에 처박았다. 그러고는 짜증이 가득 담긴 괴성을 지르며 온몸에 물을 부어댔다.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몸부림이었다.
"너 웃음이 나와?"
"크큭. 그게 아니고......"
뿔이 잔뜩 난 모습으로 씩씩거리는데 웃음이 참아지지 않았다. 심술 못 된 아이가 자기 성질에 못 이겨 징징대는, 딱 그런 모습이었다.
"너 때문이잖아! 나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잘 알거든! 그렇게 눈치 안 줘도 알아. 안 그래도 쪽팔려 죽겠는데 그렇게 자꾸 눈치를 주니깐 내가 이런 짓까지 하고 있었던 것 아니야!"
"갑자기 왜 내 핑계를 대요? 그리고 내가 언제 눈치를 줬어요?"
"줬어 줬어! 네가 줬다고!"
"눈치를 준 적도 없지만, 설령 눈치를 줬다치더라고 지삼 이 상황하고 무슨 연관성이 있다는 거예요?"
언니는 나에게 물을 끼얹으며 화풀이를 해댔다. 나 역시 언니에게 물로 되받아쳤다. 주거니 받거니, 물을 붓고 맞고 하면서 오늘 하루의 부끄러움을 잊어내고 있었다.
*******
며칠 후,
오전 식사만 간단히 한 후 동굴로 왔다. 일전에 있던 일에 대해서 바로 사과하러 왔어야 했지만 지지부진한 언니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내키지 않는 것 같았다. 동굴 입구까지 와서도 뭉그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저기요! 안에 계세요?"
동굴 입구에서 놈을 불렀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지원아! 없나 보다. 다음에 다시 올까?"
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야! 들어가지 마!"
언니는 입구에서 나를 따라 들어오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렸다. 동굴 안은 다소 좁은 듯했고 어두운 조명 하나만 켜져 있을 뿐이었다. 한쪽에는 야전 침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제멋대로 생긴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 있었고, 가장 안 쪽에는 동굴 벽을 뚫고 들어 온 기이한 모양의 암반이 있었다.
암반 옆으로 좁다란 물 길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물 길 주변으로 이끼들이 넓게 퍼져 있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끼 이외에도 손톱만 한 버섯, 돌나물 등 자잘한 식물들이 어우러져 자생하고 있었다. 물길을 따라 바위가 닳은 흔적으로 보아 이 동굴의 나이는 내 나의 수백 곱절은 된 듯하였다.
"지원아! 가자. 아무도 없잖아. 야!"
"알겠어요."
침실 옆에 두었던 테라리움 하곤 비교가 되지 않았다. 특히 초코송이 같이 생긴 버섯은 너무 앙증맞았다. 몇 송이 따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너무 작아서 손을 대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아쉬움을 남겨두고 나가려고 할 때 놈이 들어왔다.
"누구세요!"
놈의 목소리에 놀란 언니는 철퍼덕 주저앉았다. 놈은 들고 있던 장작들을 내팽개치듯 내려놓고 도와주려 하였다.
"괜찮아, 괜찮아. 지원아......"
언니는 나에게 손을 뻗으며 도움의 몸짓을 하였다. 도움을 주려던 놈의 손은 멋쩍어 다시 장작을 정리하였다. 나는 언니를 부축하여 한쪽 의자에 앉혔다.
"안녕하세요.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저희 기억하시죠? "
"기억하고 말고요. 누추하지만 잠시 앉으십시오. 아니다, 밖으로 나가실래요? 여기가 이젠 좀 춥습니다."
"아니에요. 저희는 괜찮아요. 그보다 일전에 있었던 일들 때문에 정중하게 사과를 드리려고 왔어요."
"무슨 말씀을요. 그럼 잠시만 앉아계십시오. 믹스 커피밖에 없는데 괜찮으세요?"
"아니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놈은 주워 온 장작에 불을 붙이더니 삼발이를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주전자를 올려 물을 끓였다. 믹스는 여기저기서 모았는지 여러 브랜드의 커피들이 섞여 있었다.
언니는 입술만 앙 다문채 나에게 빨리 나가자는 눈짓을 보냈고, 나 역시 언니에게 어깻짓으로 빨리 사과의 말이라도 하라고 눈짓을 보냈다. 놈이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눈짓 대화만 할 뿐이었다.
놈은 우리가 했던 짓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손님으로 대해 주었다. 두 손을 모아 정성스럽게 커피 담긴 종이컵을 내미는데, 받아 들기 미안할 정도였다. 언니는 커피를 받고 고맙단 표현만 할 뿐 별다른 말없이 계속 뻗대고 있었다.
"잘 마실게요. 고마워요. 참, 저희 언니가 꼭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어요."
일부러 언니를 콕 집어냈다. 놈은 들어줄 준비가 되었다는 듯, 맑고 순수한 눈으로 언니를 쳐다보았다. 언제나처럼 눈빛은 너무 착하다.
나는 일부러 주저 없이 자리를 잠시 비켜 주었다. 아까 감상하던 동굴 벽 쪽의 생태 식물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번엔 정말..... 죄송했어요"
"아닙니다. 같은 상황이면 누구라도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맞은 곳은 괜찮아요? "
"걱정 마세요. 다 나았습니다."
"이건 별거 아니지만, 컵라면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가져왔어요."
"뭘 이런 걸!"
"다음에 저기 소지 포구에 지우네 생선구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거기 가셔서 저희 이름 대고 식사하세요."
"전 이 컵라면이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제가 저지른 만행에 비하면 정말 별 것 아니에요."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시다면...... 이름이 어떻게 되실까요?"
"굳이 통성명까지...... 요?"
"이름 대고 가서 먹으라고 하셔서."
"아, 그러고 보니 이모님한테 우리 이름을 가르쳐 드린 적이 없구나...... 그냥 매일 오는 여자 두 명이라고 하면 아실 거예요!"
"아. 알겠습니다. 감사히 기억에 두겠습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개운했다.
"그럼 저흰 가볼게요. 지원아, 가자."
"아직 커피가 많이 남았는데, 마저 드시고 가셔도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지원아! 지원아!"
"왜? 뭐 약속 있어요? 커피마저 마시고 가요."
언니의 난처한 표정을 보았지만 무시했다. 나는 동굴을 좀 더 자세히 둘러보고 싶었다. 암반을 실제로 본 것도 처음이었고, 물의 타격만으로 바위에 굴곡이 생긴 것도 너무 신기하였다. 특히 오밀조밀 모여 있는 이 작은 생물체들.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떤 느낌일까?
"여기에선 언제부터 지내신 거예요?"
"말하자면 좀 길어요. 그나저나 몸은 좀 괜찮으세요?"
"몸이요?"
"그때 불치병에 걸렸다고....."
"제가요?"
나는 잠시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불치병이라니! 뜬금없이 무슨 소리일까,라고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날 밤 놈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때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셨었는데......"
"맞아요. 그걸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치료제가 없다는 건 절망 그 자체니깐요. 그걸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이가 있다면 더
욱! "
"혹시...... 누가 아프신가요?"
놈은 잠시 머뭇머뭇거렸다.
"제 딸아이요."
맙소사! 그날 달빛에 비친 눈물은 아픔이었던 것이다. 진심을 담은 마음의 나눔이었다.
"미안해요. 전 병은 아니고 그냥 사정이 좀 있었어요."
"미안이라니 당치 않아요. 그저 다행입니다. "
"그래도...... 아이가 아프다니 정말 유감이네요. 얼마나 마음이, 감히 위로의 말도 어렵네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가능성은 없는 게 아니라 희망을 갖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창 꽃 같은 나이에 다른 친구들처럼 연애도 하고 여행도 하고....... 그럴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한창 꽃 같은 나이? 내가 잘 못 들었을까?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딸아이가 몇 살이에요?
"스물두 살이요. 너무 예쁜 나이죠."
"스물두 살?"
잘 못 들었나 싶은 생각에 언니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있던 언니의 표정도 어리둥절한 걸 보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은 것 같았다.
"그럼 그쪽은 몇 살인데요?"
"여든둘이에요. 여기 나이로는 스물일곱 살이고요."
"여기 나이? 그럼 여든둘은 어디...... 나이인데요?"
"사실...... 전 55년 후 미래에서 왔어요. 딸아이의 치료 방법 때문에 왔는데 문제가 좀 생겨서 지금 여기에서 이러고 있습니다."
뭐라고?! 너무 진지해서 혀를 찰 틈도 없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 하는 것일까? 갑자기 머릿속에 온통 물음표만 가득했다. 언니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데 이 이상한 이질감은 무엇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 헛소리라고 하기에는 눈빛도, 음성도 너무 진실되어 보였다. 그러고 보면 분명히 그때에도 82세라고 했다. 거짓말이 이렇게 일관성이 있을 수 있을까?
"혹시 성함이?"
"조정범이라고 합니다."
언니는 나의 팔을 잡아끌며 재촉했다.
"지원아! 그만 가자. 시간 다 됐어."
"알겠어요, 언니 잠깐만요! 미래에서 왔다고요? 정말로? 정말이에요?"
"어머! 얘가 오늘따라 왜 이래, 이따가 예약 손님 있잖아, 그만 가야 한다고! 조범 씨, 그럼 커피 잘 마시고 갑니다. 안녕히 계세요."
"조범이 아니고 정범이요. 미친놈이라고 생각되겠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좋은 분인 것 같아 거짓말하고 하고 싶지 않았어요. 억지로 믿으려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친놈 소리 들을 거 각오하고 말씀드린 거예요."
"네. 네. 야! 손님 기다린다고! 정신 차렷!"
나는 언니에게 끌려 나오다시피 동굴을 나왔다.
******
집으로 가는 길, 숲의 소리로 머릿속이 가득 채워졌다. 바스락거리는 잎사귀 소리며,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움직임 소리가 확장되어 들려왔다.
'웅웅우......'
마치 상자 안에 담긴 숲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상자 안에서 숲의 소리가 공명되어 사라지지 않고 입체적으로 나를 에워쌌다. 모든 소리가 이전과는 달랐으며 유체이탈 한 것처럼 내 몸과 영혼이 반쯤 어긋나 있는 기분이었다.
물론, 언니의 손바닥이 내 등을 가격하기 전까지 잠시동안!
"너 미친 거 아니야? 거기서 왜 그런 얘길 그렇게 진지하게 듣고 앉아 있는 거야?"
"신기하잖아요. 분위기도 기묘하고."
"괜히 갔어. 서면 같은 걸로 유감을 표해야 했는데!"
"풋! 서면이요?"
"아님 머...... 쪽지 같은 거라도! 뭔가 으스스하고 이상해."
"하긴, 뭔가 이상하긴 해."
"이상하다는 애가 뭘 그렇게 진지하게 관심을 갖느냐 말이지."
"뭐랄까.....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것 같은 공기의 흐름을 느꼈다고나 할까...... "
"잘 생각해 봐. 넌 놈의 미래보다 더 미래에서 온 그놈의 딸일지도 몰라. 시간의 궤도가 꼬여버린 부녀상봉!"
언니를 흘겨보았다.
"다음에 놈을 만나면, 아빠! 하고 불러봐. 지금까지 봉인되었던 기억력이 터질지 몰라!"
"뭐야, 왜 비아냥거려요?"
"그러니깐 왜 미친놈 하고 전혀 이질감 들지 않게 행동하고 그래?"
"하지만, 언니. 잘 생각해 봐요. 누가 봐도 미친놈처럼 보일 텐데 너무 순순히 그렇게 말했다는 건 어쩜 진짜 미친 게 아닐 수도 있는 것 않을까요? 미친 걸 감추기 위해 뭔가 수를 쓸 수 있었을 텐데."
"딱 봐도 전형적인 미친놈이던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처럼 이성적인 아이가 왜 이렇게 진지하게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니 커피에만 뭐 탔나 보네!"
"근데 저번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눈빛이 너무 진실되어 보이니깐 거짓말 같지 않았어요. 그때도 여든몇 살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너무 일관성 있잖아요."
"니 나이에 아직도 사람의 눈빛을 믿는 거야? 사이코패스도 시체가 나오기 전까지는 주변 사람 모두가 칭찬 일색인 거 몰라? 정신 차려! 레드썬!"
"그래...... 그게 사실일 리가 없지. 제가 요즘 노동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이 쇠해졌나 보네요. 얼른 가요, 손님 온다면서요!"
"손님은 개뿔! 나가자고 해도 푹 빠져서는 말을 안 들어 처먹으니깐 그렇게 말한 거지! 지원이, 너 설마 저 미친놈한테 반한 건 아니지?"
"네?"
"안 돼, 지원아! 나 너한테 실망할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제가 아주 큰 실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