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장미정원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언니, 그만 가요. 이건 정말 아니라니깐요!"
"넌 안 궁금해?"
"네!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나는 이런 행동을 하는 언니가 더 궁금해요."
"아니 이상하잖아. 사지 멀쩡한 젊은 남자가, 직업도 없이 저런 곳에서 저러고 산다는 게!"
"언니가 훨씬 더 이상해요! 직업이 있든 말든 우리가 왜 감시하냐고요!"
어이가 없어서 신경질이 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언니는 처음부터 자기가 느끼는 대로 상대방을 평가하고 단정 짓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놈과의 첫 만남이 불미스럽기는 했지만 그것이 놈에 대한 모든 걸 판단할 수 있는 전제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언니는 직접 겪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저 놈에게 집착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진지한 마음으로 시작했을지 모르겠으나 한편으론 재미 삼아 그놈을 그런 놈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생겼다. 호기심과 흥미로움을 담은 언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명백함도 없이 한 사람을 의심하는 것도 싫었지만 재미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라면 더더욱 싫었다.
"전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요. 먼저 그냥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염탐을 하든 미행을 하든 언니 혼자서 하세요."
언니는 나의 팔을 붙잡으며 눈썹을 여덟 팔(八) 자를 만들며 바라보았다.
"너 가면 나 혼자 어쩌라고......!"
"그럼 지금이라도 그만하고 돌아가요. 이건 진짜 아니에요.!"
그때 언니는 몸을 더 바짝 엎드렸다.
"나왔다!"
뭐? 나도 모르게 언니를 따라 바짝 엎드렸다.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언니는 그놈의 움직임을 따라가자며 나를 잡아끌었고, 나는 고개를 흔들어댔지만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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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은 하필, 비도 안 오는 데 카키색 우비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걸어갔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범죄자의 모습을 하고 말이다. 인적 드문 곳에서 굳이 저럴 필요가 있는가 싶을 만한 딱 그런 모습이었다.
언니는 전적에 탐정이 있었는지 놈을 미행함에 있어 자연스럽고 과감했다. 저 놈 역시 어지간히 둔한 것인지, 인기척도 없는 곳에서 두 명이나 자신을 쫓고 있는데 저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흥신소 직원처럼 제법 미행을 따라갔을 때쯤, 그놈은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야 눈치챘나?'
놈은 조심스럽게 어느 집 근처에 멈춰 섰다. 담벼락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집 안의 동태를 살피는 듯했다. 고개를 빼고 훔쳐보기도 했다.
"어머머! 맞지? 저 봐. 내 예상이 맞았잖아!"
성정 언니는 입을 막고 작은 소리로 본인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단언했다. 물론, 아직까지 이렇다 할 직접적인 행동이 없었으므로 동의하고 싶지 않았지만 수상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그 집은 우리 집처럼 산 진입로에 위치한 외딴집이었다. 잠시 후 집에서 젊은 여자가 나가는 모습이 보였고 놈은 여자가 꽤 멀리 벗어난 것을 확인한 후 주변을 경계하며 대문 방향으로 사라졌다. 우리도 은밀하게 대문 쪽으로 다가갔다. 대문이 없는 집으로 마당 안이 내다 보이는 구조였다.
놈의 위치를 찾기 위해 마당 안을 살포시 들여다보는데, 그 순간 놈이 어린아이를 붙잡고 어깨의 맨살이 보이도록 옷을 벗기려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너무 놀라 온몸이 굳어버렸다.
"뭐 하는 짓이야! 멈추지 못해!"
성정 언니는 재빠르게 마당에 있는 빗자루를 들고 위협하는 자세로 놈을 저지했다. 그놈도 놀랐는지 항복의 자세로 두 손을 양쪽으로 들어 보였다. 아이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는 옷을 입은 채 오줌을 싸고 말았다.
"지원아! 아이한테 가봐, 얼른!"
언니는 그놈과 대치중이었고, 나는 일단 아이를 안아주며 진정시켰다.
"괜찮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많이 놀랐지? 어? 너는......"
일전에 방파제에서 만난 남자아이였다. 그제야 언니도 아이를 알아봤다.
"준영...... 이?"
성정 언니는 준영이를 보더니 갑자기 눈빛이 돌변했다. 들고 있던 빗자루로 놈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야! 이 개자식아! 세상에 할 짓이 없어서!"
온갖 욕을 해대며 쉴 틈 없이 그놈에게 빗자루를 휘둘렀다. 놈은 방어 자세만 취할 뿐 별다른 저항 없이 때리는 대로 맞고 있었다.
"오해세요. 제발 진정하세요. 설명드릴게요."
맞으면서도 언니에게 애원하듯 중얼거렸다. 도망갈 법도 한데 놈은 계속 맞기만 했다. 그때 로프줄에 묶여 있을 때의 표정과 너무 비슷했다.
"언니! 그만해요. 언니!"
놈이 일방적으로 너무 많이 맞은 것도 걱정이 되었고, 이성의 끈을 놓은 듯한 언니도 걱정이 되었다. 나는 언니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고 저지시켰다.
"언니! 그만해요. 제발 진정해!"
"어떻게 진정해! 이런 건......"
"준영이가 너무 무서워하고 있다고!"
그제야 언니의 흥분과 매질이 멈췄다. 본인도 힘이 들었는지 숨을 헐떡거리면서 준영이를 안심시키고자 했다.
"준영아, 우리 기억해? 아줌마 1,2!"
"네......"
"많이 놀랐지? 이제 괜찮아. 아무 걱정 하지 마. 지원아 경찰에, "
놈은 바짓가랑이라도 붙드는 심정으로 언니의 발목을 잡고 사정했다.
"경찰은 안 돼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다 설명할게요!"
예전과 너무 비슷한 패턴이었다.
"뭐가 어째고 어째? 경찰 무서운 거 아는 놈이 그런 짓을 해? 맞다! 쟤 아빠가 경찰인 거 아냐? 준영아 얼른 아빠한테 전화해!"
"아줌마...... 아저씨 보내주세요."
"뭐라고......?"
"아저씨 얼굴에 피나잖아요."
"아저씨? 혹시 아는 사람이야?"
준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는 멋쩍어 빗자루를 떨구었다.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상황인 건지 바로 파악되지 않았다. 도대체 언니와 나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부디 내가 상상하는 그런 최악의 상황은 아니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아저씨 얼른 가세요. 엄마가 금방 올 거예요."
놈은 주섬주섬 몸을 챙기며 일어섰다. 설명할 수 없는 이 당혹스러움. 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사과를 먼저 해야 할지, 지금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사고라는 것이 굳어버렸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내 심정은 남 몰라하고 정작 이 사단을 만든 장본인은 고개만 쳐들고 애먼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놈의 이마 부위가 찢어졌는지 콧 등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대수롭지 않은 듯 소매로 쓰윽 닦아 내더니 준영이와 눈을 맞추며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놈을 향한 준영이의 슬픈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정말 이건 아니야!'
오히려 놈은 우리에게도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절뚝거리며 사라졌다. 상상하던 최악의 상황 그 이상이었다. 극심한 피로감에 어깨가 결렸다.
"준영아. 미안해. 많이 놀랐지? 그러니깐 우리가......"
변명이라도 해야 할진대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준영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줌마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널 괴롭히는 걸로 오해를 해서 말이야....."
"아저씨가 오해라고 얘기했잖아요."
"아...... 그러니깐 말이야.....!"
준영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성정 언니는 계속 망부석처럼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뭐해요? 입이 있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그 기세 당당한 명탐정은 어디 갔어요? "
"너 공부 잘했지? 빨리 이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 좀 해봐. 쪽 발려서 얼굴을 보일 수가 없어."
준영이는 금세 바지를 갈아입고 나와 오줌 싼 바지를 대야에 담갔다. 야무지게 빨래판을 꺼내 바지를 빨고 있었다.
"준영아, 아줌마가 빨아줄까?"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엄마가 오기 전에 가시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아.. 그래, 알았어.... 그럼 우리 이만 갈게. 언니 그만 가요."
"나 좀 그냥 끌고 가주라......"
어른들이 가지가지한다는 표현을 아마 이럴 때 사용하라고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나는 언니를 끌고 그 집을 나섰다.
******
언니와 나는 말이 없이 털레털레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수풀로 우거져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만중에 둘러 쌓여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었다.
놈은 왜 언니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았을까? 준영이는 놈과 무슨 관계였길래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표정들을 곱씹어 생각해 보면 언니와 내가 불청객이나 방해꾼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놈은 준영이의 옷을 왜 벗기려고 했을까!
부끄러움과 의문점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애초 계획대로 그냥 간판 만들 나뭇가지들이나 주워 갔으면 얼마나 좋아요, 왜 쓸데없이 오지랖을 떨어서 이런 망신을 당하게 하는 거예요!"
참지 못하고 결국 쓴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언니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빠른 걸음으로 혼자 앞질러 가버렸다. 온몸으로 '씩씩' 거리면서 말이다.
"어후, 성질머리 하고는.....!"
어이없이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감정을 다스릴 겸 바닥에 떨어진 곧고 깨끗한 나뭇가지를 주으며 천천히 돌아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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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들어서자 큰 대야에 담긴 이불이 보였다. 저번 시내에 갔을 때 샀던 간절기 이불이었다. 성정언니는 나를 아는 체하지 않고 부루퉁한 표정으로 이불을 밟아 빨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저러나 싶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간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챙겨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자기가 왜 부루퉁해 있는 거야?"
캠핑 박스 상판 위에 나뭇가지로 글자를 만들어 붙여보기로 했다. 다행히 이응(ㅇ)이 없어서 순조롭게 [로즈가든] 간판이 완성되었다. 기대 이상으로 그럴싸했다.
"지원아...... "
못 들은 척했다.
"지원아.....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