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이라니!

12 장미정원

by 늘품이

"안녕하세요, 이모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아, 죄송한데 파전 포장될까요? 언니가 컨디션이 좀 별로라서......"

"왜? 어디 아퍼?"


"아녀. 그냥 날이 궂어 그런가, 몸이 뻐근하고 움직이기 귀찮고 그냥 뭐 그런 것 같아요."


"벌써 그러면 어째. 아직 팔팔한데. 잠깐 앉아 있어."


이모님의 눈에는 우리가 팔팔한 나이라니! 이모님은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잠시 가게에 혼자 앉아 기다렸다.


창밖 포구는 을씨년스럽고, 쓸쓸하고 화가 난 듯 보였다. 파도가 높게 치고 올라와 겁이 났다. 그럼에도 또한 포구는 잠잠했다.


잡아먹을 듯 파도가 덮치려고 해도 방파제 때문에 맥없이 흐트러지며 소멸되었다. 파랑의 겁박질은 딱 거기까지만 가능한 것이다. 실로 방파제의 힘이 느껴졌다.


그때 가게에 전화가 왔다. 대신 받아 드려야 하나, 싶던 찰나에 이모님이 나와 전화를 받으셨다.


"여보세요."


이모님이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엄마?"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량을 엄청 크게 해 놓았는지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럼에도 이모는 제대로 못 들었는지 재차 물었다.

"여보세요?"

여전히 핸드폰 너머로 소리가 미세하게 새어 나왔다.

-엄마........ 나야. 흑흑흑


이모님은 잠시 그 상태로 있었다.


-엄마.......

"그래, 엄마여."

-엄마......


수화기 건너 여자는 한참 동안 엉엉엉 울었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그 소리만으로도 코끝이 찡했다. 이모님은 한 참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이고, 어째 그리 서럽다냐? 아가, 왜 그렇게 울어대싸?"

-엄마...... 나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단 말이야. 지영이가 계속 울어. 열도 없고 밥도 먹었고 기저귀도 갈았는데....... 엉엉. 자꾸 울어.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 엉엉엉.

"아이고 어쩐데."

-엄마..... 엄마.....

"응. 그래."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 엉엉엉. 엄마 너무 보고 싶어. 엄마아......

여자의 울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전화기 너머의 여자는 울면서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남의 통화 내용을 엿들은 기분이 들어 잠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고, 우리 딸 힘들어서 어쩔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기묘한 감정이었다.

우리 딸......!

들어 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라 생소한 감정이 들었다. 그 생소한 감정이 왜 그렇게 가슴을 쿵 내려앉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아마도 이모님의 딸인가 보다. 지우라는 이름의 주인공인가?

"너무 귀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중이라 그래. 그래서 힘든 거야. 하지만 또 금방 괜찮아져. 쉬이 쉬이 금방 괜찮아져. 너무 힘들 땐 고개 들고 크게 숨 세 번 참고 쉬고. 세 번 참고 쉬고. 그라믄 암시롱 않고 괜찮아져. 아가, 그라고도 죽고 싶음 언제라도 와. 엄마 항시 여그 있을거이께. 엄마가 맛있고 따순밥 해줄게."

잠시 통화가 이어졌고, 전화를 끊고 난 후에도 여운이 남았는지 전화기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왜 안 그렇겠는가.

검에 베인 기억이 없는데 베인 상흔이 화끈거리는 듯한 이 얼토당토않은 통증은 뭐람 말인지! 나를 지탱하기 힘들 만큼 버티기 힘든 극한의 고통에 빠졌을 때도 난 엄마를 찾아본 적이 없었다.


엄마......!​


아는 사람이나 방파제의 역할을 아는 게 당연지사인데 날씨와 분위기에 빠져 의미 없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느라 신경을 써버렸다.


젠장할!


*******

파전과 막걸리 1병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나설 때와 돌아올 때, 각기 다른 우울감이 한 스푼씩 더해졌다.

"왔어?"

내가 나서기 전의 그 자세로 여전히 누워 있었다. 나를 돌아보며 인기척 하는데 눈두덩이가 주먹만 했다.

"다 울었어요?"

나를 등진 채 누워서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마루에 상을 펴고 파전과 막걸리를 준비했다. 그럼에도 언니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얼른 먹어요. 내가 빗길에 힘들게 다녀온 건데, 성의를 봐서라도 좀 먹어야지......"

언니의 부동에 나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했다. 비는 그쳤지만 이미 우울감에 젖을 때로 젖은 상태였다. 나 역시 내려앉은 감정은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쉼 없이 담배를 태웠다. 목이 따끔거릴 때까지 담배를 태웠다.


유독 많은 비가 내리던 여름이었다. 잦아든 빗줄기가 초라해 보였다. 아직 여름인데 가을로 착각한 귀뚜라미가 멍청해 보였고, 땅 속 깊은 곳에서 나를 잡아당기는데 들어갈 틈 없이 단단한 땅은 답답했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일까!

******

잠을 자는 내내 우울감을 덮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침을 맞이하는 새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밤새 내린 비에 초록이들의 상쾌함은 소리와 향취로 마구잡이 분출되었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난 후 엊저녁에 차려놓은 상을 치우러 밖으로 나갔다.


언제 일어났는지, 언니는 태연하게 앉아서 파전과 막걸리를 먹고 있었다.

"언니! 그거...... 차가울 텐데."

"괜찮아, 먹을 만 해."

언니의 눈은 벌침에 쏘인 것처럼 부어서 뭐가 보일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본래대로 돌아온 듯했다.

"언니, 그렇다고 아침부터 막걸리는 좀 아니지 않아요?"

"막걸리 아니고 콩 국물! 어제 이모가 싸준 거. 어젯밤을 새웠더니 배가 고파서 미칠 것 같아. 일단 좀 먹을게."

"네. 꼭꼭 씹어서 천천히 드세요. 컵라면이라도 드릴까요? 따뜻한 것 좀 필요할 거 같은데."

언니는 파전을 입에 가득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에 나란히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언제 그랬는 듯 쾌청한 하루였다. 빗물에 씻긴 풀잎들과 나무의 색은 더욱 선명해져 빛이 날 정도였다.

송진 때문인지 솔잎엔 빗방울이 스며들지 못하고 알알이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작은 유리 장식처럼 보였다. 잠과 함께 화는 누그러지고 다시 일상적인 안정감에 마음이 편안했다. 우습게도 편안함을 느꼈다.

"볼래?"

언니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SNS에 게시물을 올렸다. 그것도 음악과 여러 장의 사진이 편집된 것이었다.

"우와! 어떻게 했어요? 쉽지 않던데!

"밤새 그거 하나 했어!"

"대단한걸요! 난 못하겠던데, 요즘 애들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이런 걸 어떻게 그렇게 시시 때때 올리는 거지?"

"그냥 너랑 내가 못하는 걸 거야, 핸드폰 갖고 와봐."

"꺼져 있을 거예요. 이따가 봐주세요."

"으이그! 알았어."
​​
*******

오늘은 언니를 따라 시내에 나왔다. 많은 사람과 많은 사물들, 그리고 많은 움직임들과 소리들 때문에 멀미가 날 정도였다. 예전에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가 왜 하룻밤도 못 주시고 다시 내려가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스워요. 평생을 이런 곳에서 살았는데, 며칠 자연 속에 있었다고 도시가 현기증이 나네요."


"그래서 인간이 간사한 거지. 숨 쉬는 건 괜찮아? 큭큭. 공기가 너무 나쁘지?"


언니가 조롱하듯 장난을 쳤지만 사실이었다. 확실히 숨도 달랐다.


재래시장 입구는 먹거리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릴 때 보던 다슬기, 번데기, 꽈배기, 도너츠, 모둠전에 생과일주스까지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푸짐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요기가 되는 듯했다.


"어머 너무 좋다 이런 분위기, 돈만 있으면 다 먹고 싶어. 이런이런! 떡볶이는 포기 못하지!"


우리는 떡볶이와 어묵, 순대 등을 파는 포장마차 앞에 멈춰 섰다. 넓적한 판에 붉은 윤기가 흐르는 떡볶이가 제법 식욕을 자극했다.

납작 접시에 떡볶이를 담고, 순대를 썰고 어묵을 담아 후추를 탁탁 털어 준비하는 그 몇 분의 시간 동안 ㅐ 온 신경이 주인아주머니의 손만 따라다녔다


"너무 행복하다! 그치?"

언니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미소를 절로 짓게 하는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아울러 길 건너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삼삼오오 몰려나온 아이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길 건너에 초등학교가 있네요. 하교 시간인가 봐요."

1, 2 학년쯤 되었을까? 자기 몸 만한 책가방을 맨 아이들이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교문 밖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의 모습도 보였고,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는 아이들도 보였다. 언니는 놀란 눈으로 입에 어묵 꼬치를 문 채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야! 야!"

"왜요?"

"쟤, 저기 신호등 앞에 쟤, 그 도둑놈 아니야?"

"뭐어?"

하고 보면 그놈이 맞았다. 여전히 같은 행색이었다. 헤어스타일이 눈에 띄는 그놈은, 초등학교 교문 쪽을 힐끗거렸다. 보행신호로 바뀌어도 건너지 않고 계속 자리를 지켰다.

"누굴 기다리는 걸까요?"

"아니지, 기다리는 거면 교문 앞에 서서 당당하게 서 있겠지. 저 봐, 당당하지 못하잖아. 저 저 저거 혹시!"

"혹시 뭐요?"

"애들 노리는 거 아니야?"

"무슨 말 같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 교문을 떠나고 나서야 그놈은 신호등을 건너 우리 방향으로 왔다. 우리는 놀라서 몸을 돌려 숨겼다. 곁눈질로 놈의 동태를 살폈지만 다행히 나를 알아보지 못한 듯 자기 갈 길로 갔다.


"언니는 왜 숨어요?"

"그러게. 반사 신경이지, 머. 그나저나 어쩌지? 신고해야 하나?"

"뭘 신고하게요?"

"수상하잖아. 초등학교 앞에서 하교하는 애들을 몰래 염탐하잖아."

"무슨 근거로 염탐이라는 거예요? 제발 그러지 말아요. 옆에 있는 사람도 좀 생각해 주시죠? 그런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피로감을, "

"저거 염탐 맞아! 본디 수상하고 전력이 있었잖아. 집부터가 수상해. 설마 그 동굴 안에......"

"에이! 진짜. 그러다가 진짜 언니가 경찰서나 어디 병원에 끌려가는 수가 있어요!."

언니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찜찜한데...... 조만간 잠복 한 번 들어가야겠어. 그놈의 동굴!"

"언니 제발요!"

조만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로즈가든은 영업 준비를 마쳤다.
어차피 추워지면 텐트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루에서 잘 수는 없을 듯하여, 언니의 방으로 텐트를 옮겼다. 방 안으로 텐트 2개를 집어넣으니 잉여공간이 조금도 없었다. 건너편 방에 옷가지며 물건들을 정리했다. 부엌은 깔끔하게 청소한 후 손님에게 대접할 음료와 티백등을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대청마루에는 테이블과 방석을 두었다. 손님 접대실로는 손색이 없었다.

나름대로 만만의 준비를 해 놓았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함께 준비하기는 했지만, 마음 같아서는 영원히 손님이 찾아오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중이다. 돈 때문에 꼭 영업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당장이라도 종원 씨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을 정도였다.

"지원아! 지원아! 이것 봐"

언니는 호들갑스럽게 다가와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좋아요가 3이야. 한 명은 너고 두 명은 모르는 사람! 대박이지."

"그러게요. 신기하네. 어떻게 알고 봤지?"

"희망이 있어! 희망이. 매일 한 개씩은 올려야겠어!"

"기왕이면 간판도 만들까요?"

"간판? 그건 얼마나 하려나...... "

"산에 가보면 버려진 나무 많이 있잖아요. 그걸 이용해서 만들면 멋있을 것 같은데."

"오케이. 그럼 밥 먹고 산 한 바퀴 돌아보자."


신이 난 언니에게 동요되어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

산책하듯 걷기에 너무 좋은 날씨였다. 무더위도 한 풀 꺾였는지 햇볕을 피하면 제법 선선했다. 성급한 잎사귀들은 벌써 붉은 옷을 입었다.

"언니, 단풍나무 잎사귀가 원래 무슨 색인 줄 알아요?"

언니는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게슴츠레 쳐다보았다.

"난센스야? 녹색이라고 말하면 틀리는 거지?"

"단풍나무의 잎은 원래 붉은색이래요. 가을에만 본색을 드러내고 그 외 계절에는 초록으로 물드는 거래요."

"그것도 아빠가 말해준 거야?"

"네."

"왜 그런 거래?"

"뭐가요?"

"스토리 없어? 파도랑 바위처럼."

"아...... 없는데, 언니가 하나 만들어볼래요?"

"넌, 내가 작가도 아닌데 무슨 그런...... 옛날에, 외톨이가 살았어.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생김새가 달라서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였던 거야. 외톨이였지. 말 그대로 외톨이. 결국 외로움에 지쳐 죽게 되었어."

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우습기도 하고 과연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까 하는 궁금증에 집중하여 듣고 있었다.

"그래서요?"

"그래서? 죽어서 땅에 묻었더니 그 자리에서 나무가 한 그루 자란 거야."

"풋! 그래서 사람들은 그 나무를 단풍나무!라고 불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뭐 그런 거예요?."

"넌 웃음이 나오니? 이렇게 슬픈 얘기를 듣고? 너도 보통은 아니구나."

"뭐가 슬퍼요?"

"외로워서 죽었다잖아, 아이가!"

언니는 딱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를 앞질러 갔다. 억울했지만 더 이상 대꾸 하지 않고 천천히 뒤를 따랐다.

"어? 여기 그놈 동굴 근처 아니야?

"산 길은 거기가 다 거기 같아서 잘 모르겠는데......"

"여기 약수터 지나서 산길로 빠지면 바로야! 잘 됐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오늘 잠복 좀 하자!"

언니의 말대로 멀리 가지 않아 놈의 동굴이 보였다. 하지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행동을 설명할 만한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언니를 따라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옆으로 비켜 보면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천막을 반쯤 걷어 고정시켜 놓은 것을 보니 아마도 안에 있는 듯했다.

"언니! 이건 범죄예요!"

"쉿! 작게 얘기해. 범죄는 저놈이 먼저 했으니깐. 걸리면 쌤쌤 치자고 하면 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쉿! 몸 낮추고."

한숨만 절로 나왔다. 잠복이라니!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