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의 돌

11 장미정원

by 늘품이

핸드폰 벨 소리 [리베르탱고]가 잠결에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일어나 소리를 따라가면, 마루 한 쪽, 충전기에 꽂혀 있는 나의 핸드폰이 보였다.

"너 SNS 계정 만들라고 한지가 언젠데!"

언니는 수돗가에 엎드린 채로 머리를 감고 있었다. 머리카락에 거품이 범벅이 되어 눈을 찡그리면서도 나에게 할 말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계정 파고 팔로우도 한 십만 명 만들고 했어야 할거 아니야!"

"내 핸드폰 어디서 났어요?"

"네가 차에 있다고 했잖아. 문도 안 잠갔던데."

"머리 마저 감고 얘기해요."

정말 오랜만에 쥐어보는 핸드폰이다. 모르는 번호라 그냥 수신거부 한다. 인간관계를 그렇게 정리했음에도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수십 개의 메시지들. 대부분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부재와 전산이 보내오는 스팸 알림 들이다.

이내 무시해 버리고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아침을 맞이한다. 잠이 온전히 깨지 않아 눈이 따끔했다.

"지원아! 우리 시간이 별로 없어. 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라니깐!"

"잠 좀 깨고요!"

무언가 하지 않으면 할 때까지 잔소리를 해 댈 심산으로 보였다. 표장과 말투에서 이미 텐션 업 상태임을 알 수 있었고 이럴 경우에는 결국 뭔가 해야 끝이 났다. 이제는 그 정도 파악은 가능했다.


좀처럼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던 사람이 아닌지라 앱을 깔고 가입하는 것까진 손쉽게 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사진을 등록했음에도 확인이 되지 않고, 방금 보았던 화면을 다시 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언니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로 내가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더니 한숨을 내 쉬었다.

"아후! 넌 젊은애가 어쩜 이런 거 하나 딱딱 못하니?"

"제가 이런 거에 좀 약해요. 그냥 언니가 직접 하는 건 어때요?"

"너도 참! 내가 할 줄 알면 왜 너한테 시켰겠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정 언니는 사부작사부작 자신의 핸드폰으로 순조롭게 진행하는 듯 보였다.

"너 로즈가든이 촌스럽다고 그랬지? 내가 여기 사용자 이름을 영문으로 로즈가든이라고 했거든. 근데 이미 있대! 그래서 내가 숫자를 1부터 9까지 넣었는데도 있대! "

"아...... 그렇구나...... 로즈가든이 많나 보구나."

"됐다! 가입 완료!"

"그래서 로즈 가든 몇이에요?"

"RoseGarden_18181818. 18이 4번."

무방비 상태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둘이서 마주 앉아 한 참을 깔깔 거리며 웃었다. 별스럽지 않은 사용자명이, 별스럽지 않은 그 숫자가!
요즘에는 그 별스럽지 않은 언니의 많은 것들이 나를 웃게 해 준다.

"뭐, 별거 아니네. 내가 밤을 새더라도 오늘까지 마스터하겠어! 아후 머리 썼더니 냉면 땡긴다. 올여름에 냉면을 한 번도 못 먹었네. 가자! 냉면 먹으러!"

*********


​식당에 도착했을 때, 이모님은 재래식 맷돌을 이용하여 콩을 갈고 계셨다.

"어머 이모! 이거 뭐야? 콩국 만드는 거야?"

"어서 와."​


"우와, 내가 콩국수 먹고 싶었던 거 어떻게 알고!"

언니의 임기응변은 과히 국가대표급이었다.

" 잠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봐."

"이모! 근데 이렇게 해서 얼마에 팔려고? 이거 인건비도 안 나오겠는데!"

"이건 그냥 먹을라고 하는 거야. "

"이렇게 많이?"

"올 줄 알고. 하는 김에......"

"그렇지! 우린 이제 단순히 주인과 손님의 사이가 아닌 거예요. 고마워요! 이모."

"고맙습니다. 이모님!"

나도 옆에서 고마운 마음을 덧붙였다.


"이모 나를 지인으로 둔다는 건 이모에게도 행운일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 혀."


이모님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와....... 엄청 밝게 웃으시네요. 언니 농담이 먹혔나 봐요."


"농담이라니! 넌 경험해 봤잖아!"


"아! 네. 그렇습니다."


이모님은 그릇에 국수와 채 썬 오이, 얼음을 담아와 맷돌의 콩국을 바로 부어주셨다. 양이 엄청 났다


"근데 우리가 밥을 그렇게 많이 먹었나? 아무리 그래도 여자 셋이 먹을 양치곤 어마어마한데!"

"그게...... 음식은 남게 해도 되지만, 모지라게 해선 안돼. 그러니깐 나이 들면 자꾸 손만 커져. 좀 싸줄 테니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심심할 때 한 잔씩 따라 마셔."

"뭐야, 이모. 진짜 나 마음이, 마음이! 절대 나 다른 식당 안 갈게. 고마워요!"

"하루 종일 돌려도 힘이 하나도 안 들겠네. 맛있게 먹어주면 만드는 사람은 힘이 한나도 안 들지, 잠시만 기다려. 금방 만들어줄게."

이모님은 모처럼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다른 식당을 갈 이유는 없었지만, 어차피 갈 수 있는 식당도 없었다. 문을 여는 식당은 여기뿐이었으니! 언니는 아첨 떨 듯 이모님의 기분을 맞추어 주었지만 분명히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의 마음도 같았다.


********


여느 때처럼 식사를 하고 포구를 산책하듯 거닐었다. 비가 오려고 하는지 습한 바람이 제법 불었고, 그 바람 때문인지 파도가 곧잘 출렁거렸다. 잠시 방파제에 앉아 파도가 부딪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너 그거 알아?"

"뭘요?"

"바다가 왜 이토록 파란색인지 말이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왜...... 파란 건데요?"

"항상 바다와 바위가 같이 있으니깐 바람이 샘이 난 거지. 그래서 막 바람을 일으켜 서로 부딪히게 한 거야. 그래서 바다가 멍이 든 거야."

웁! 뭐지? 정말 난감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파랗구나."

"파도는 바다의 상처인 거야."

"아, 그렇구나."

"지원아! 리액션이 너무 기계적이야. 영혼 한 스푼 이란 말 못 들어봤어? 연습을 많이 해야겠어. 앞으로 고객들 찾아오면 때에 따라 이런저런 얘기를 나워야 할 텐데. 그럴게 영혼 없는 반응을 하면 고객들 입장에서 여기가 좋은 기억으로 남겠니? 공감보다 중요한 건 무엇? 공감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스킬!"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그렇게 삭막한 사람은 아니에요."

"방금도, 네가 했던 이야기인데 마치 내가 너한테 처음 얘기하는 것처럼 해서 놀랐지?"

"어머! 알고서 그런 거예요?"

"놀라도, 어이없어도,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해도. 하물며 지금처럼 어처구니없어서 딴생각을 하게 할 때도! 티 내지 말고, 진심으로 나는 너의 마음과 같다는 감정으로 고객을 속여야 하는 거야!"

"아후, 전 그냥 마케팅만 할게요. 그렇게까지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

"으이그! 그래도 파도를 바다의 상처라고 말한 건 내가 즉흥적으로 만든 거야. 그건 내 거야!"

"엄밀히 말하면, 바다의 상처는 멍이고 파도는 가해지인 거죠."

"그래, 넌 그냥 마케팅이나 열심히 해야겠다."

"그나저나 진짜 뭘 하긴 하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려는 거예요?"

"걱정 마! 그냥 넌 내가 시키는 거만 해. 문제 생기면 무조건 모른다고만 하면 돼. 가만, 저기 사람 아니야?"

날이 점점 흐려지면서 파도의 키도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그때 저쪽으로 꼬마 남자아이가 보였다. 몸을 반쯤 숙이고 방파제 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차, 하면 삐질 것처럼 위험해 보였다. 언니와 나는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아이 쪽으로 달려갔다.


"꼬마야! 안돼, 그렇게 있으면 위험해. 뭐 하고 있는 거야?"

"핸드폰을 빠뜨렸어요."

"이런! 그래도, 너무 위험해.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아마도, 방파제의 시멘트 블록 틈새로 핸드폰이 떨어진 듯하였다. 언니는 가만히 다가와 키를 낮춰 아이의 어깨를 살포시 잡았다.

"안녕! 우린 저기 위에 살고 있는 아줌마 1번 아줌마 2번이라고 해. 넌 누구니?"

"전 소천 초등학교 서준영입니다. "

"어머! 이 센스 뭐야! 준영이 머리 한번 쓰다듬어도 돼?"

"왜요?"

"너무너무 착하고 잘생겨서 한 번만 쓰다듬으면 아줌마가 엄청 행복할 것 같아."

"선생님이 모르는 사람이 내 몸 만지려고 하면 소리 지르라고 했는데......."

언니는 아이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아이고 똑똑해! 몇 학년?"

"1학년 1반이에요."

"소천초등학교 1학년 1반 우리 준영이, 이런 일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음...... "

"아는 어른에게 먼저 이야기해야지. 준영이는 아직 자라는 중이어서, 준영이 생각대로 몸이 안 움직일 수도 있어. 우린 이제 아는 사이가 되었으니깐 아줌마가 확인해 줄게. 괜찮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성정 언니는 마치 유치원 교사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무엇보다 꼬마를 너무 잘 다루었다.

언니는 몸을 바싹 엎드린 후 시멘트 블록 사이의 공간 쪽으로 시선을 몰아넣었다. 몸이 앞으로 쏠리는 듯 보여, 언니를 잡아끌어 올렸다.

"위험해요! 여긴 빠지면 끝이에요!

"손이 닿을 것도 같은데......"


"꺼내주세요. 저에겐 너무 소중한 거예요."


언니는 시멘트 블록 두어 개를 건너가 자리를 잡는 듯했다.

"위험하다니깐! 저 블록이 바다 위로 저만큼 보이려면 바다 아래로 얼마나 많은 양이 깔려 있겠어요!"


준영이란 아이는 말리는 나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준영아! 저기는 행여라도 빠지면 틈새로 빨려 들어가 끝이야. 좁은 공간으로 되어 있어 119 구조대원이 와도 구조하기도 어렵다고."


언니는 여전히 말을 듣지 않고 틈새 사이로 팔을 넣으려고 했다.


"언니! 저 시멘트 사이로 떨어지면서 따개비에 쓸리고 상처 난 채로 소금물 닿는다고 생각해 봐요! 그 고통이 상상이나 돼요?"

그제야 언니는 포기하는 듯 일어났다. 꼬마의 표정을 살피고 나에게 다가와 조곤조곤 말했다.

"작! 작! 해!"

언니는 얼굴 표정을 싹 바꾸고는 꼬마에게 갔다. 나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아 보였다.

"준영아! 아줌마가 한 번 들여다봤는데, 눈에 보이기는 하는데 좀 위험한 위치에 있어!"

"어딘데요?"

"바다에 마녀 사는 거 알아?"

"그런 게 어딨 어요."

"있어! 그게 15번의 생일이 지나야 볼 수 있어. 준영이 생일 몇 번 지났지"


"7번인가......."


"그럼 아마도 준영이 눈에는 아직 안 보일 거야. 마녀는 바닷속에 있다가 밤에 혼자 나온 사람을 속삭이듯 블러 유인해서 바다로 데려가기도 하고. 이렇게 바다에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확 잡아당기는데,..... 그 마녀가 딱 잡아당길 그 위치에 핸드폰이 떨어졌어. 바다 마녀한테 잡혀가더라도 핸드폰을 건져야 할까?"

꼬마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앙 다물었다. 툭 치면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휴....... 아니요."


체념을 한 것인지 시무룩하게 고개를 반쯤 떨구었다. 그때, 저쪽에서 꼬마를 부르며 경찰관이 다가왔다. 경찰관은 아이를 보곤 우리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시죠?"

"아, 아이가 핸드폰을 떨어뜨렸다고 해서요."

우리는 경찰관에게 핸드폰의 위치와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경찰관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를 잠시 바라보았고,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 눈을 끔벅거렸다. 입술을 앙 다문 채 눈물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애써 당당하게 두려움을 숨기는 느낌이었다.


경찰관은 꼼꼼하게 핸드폰의 위치를 살펴보더니, 아이에게 다가가 가만히 안아주었다.

"준영아, 가서 새로 사줄 테니깐 저건 잊어버리자. 주울 수 없을 것 같아."

"아빠...... 죄송해요."

아빠라고? 다행이었다.


인계하고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언니는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굳이 경찰에게 아는 척 말을 걸었다.

"어디? 여기 소지 포구 지구대 소속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전에 한 번 갔었거든요. 아마도 그땐 비번이나 순찰 중이셨겠죠? 못 뵌 것 같아서....."

"네, 아마도요."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언니의 표정에서 호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짜증 부리기 전 일발 장전하는 말투였다. 그나마 아이를 의식했는지 복화술로 작게 경찰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르케 위흠한 그세 아이를 흔자 드면 으뜨케여!그기 지구대 긍찰드른 지 윽활 지대로 믓하는 게 특기 인가 브여!"

경찰은 어리둥절하게 언니를 쳐다보았고, 나는 서둘러 언니를 잡아끌었다.

"그럼 저흰 가볼게요. 꼬마야, 아니 준영아. 안녕!"

언니는 끝까지 경찰관을 노려보다가, 표정 싹 바꾸며 아이에게 인사했다.

"준영아, 다음에 또 보면 인사하자! 안녕!"

언니를 끌고 서둘러 집으로 올라갔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아 더 서둘렀다.

***********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싶어 마루에 자리를 잡고 잠시 한숨 돌렸다.

"지원아, 아까 준영이. 지네 아빠가 왔는데 울지 않았어."

"그게 왜요?"

"우리랑만 있을 땐 눈물 참고 있었거든. 보통 저만한 아이들은 부모가 없으면 몸이 긴장해서 감정 표현을 잘 못해. 특히 속상하거나 무서운 일이 있으면 참고 있다가 자기가 편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면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눈물이 쏟아지거든. 그건 일종의 안도감 같은 거야."

"그런데요?"

"아니 그냥, 왜 안 울었나 싶어서..... 오히려 아빠를 보고 온 힘을 다해 눈물을 참는 것 같아 보였어."

"난 잘 모르겠던데요."

"그렇지? 내가 과한 거지? 더 가면 이건 진짜 오바야. 남의 아이를."


"뭐, 그렇죠. 남의 아이를. 근데 경찰관 아빠 말투는 다정했지만 친숙해 보이지 않았어요. 제가 보기에도 아빠가 왔는데 오히려 더 애써 눈물을 참더라고요. 그나저나 누가 보면 지구대 안티인 줄 알겠어요. 왜 그렇게 경찰만 보면 저격하려고 하세요?"

"그건 그럴만하잖아. 특히 오늘은 아직 어린아이를 그렇게 위험한 곳에 혼자 두면 안되는데, 다 큰 것 같아도 절대 아니지! 아이들은 정말 한 순간이야!"


"뭐, 그건 그렇지만."


"아까 내 바다마녀 이야기 어땠어? 준영이가 그 얘기 듣고 맘 고쳐 먹은 것 같지?"


"설마요. 유딩도 산타가 없는 걸 아는데 그런 이야길 요즘 애들이 믿을 리가 없죠."


"그래? 요즘 애들은 그렇구나...... 내가 착각했네."

언니는 이야기를 듣고 시무룩해졌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싶었다. 마침 빗줄기는 점점 거세게 내렸다. 어찌나 많은 양이 거침없이 내리치던지, 땅이 패일 것 같았다. 비를 보다가 반사적으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아후, 우리 차라리 그냥 일합시다. 그냥 노동하는 게 낫겠어요."

언니는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아마 깊은 수렁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듯 보였다.

"또 울 거예요?"

언니는 힘없이 옆으로 누워 버렸다.


나 역시 언니 덩달아 우울한 것인지 아니면 언니의 우울함이 걱정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나에겐 아직 언니에게 파랑을 막아 줄 방파제의 돌이 없었다.

"....... 있어요, 나 내려가서 이모님한테 파전 하나 부탁해서 포장해 올게요."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