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네 생선구이 가게

15 장미정원

by 늘품이

"미미 헤어살롱?"

언니는 아침부터 바지런을 떨더니 나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산을 내려와 개천 다리 하나를 건너니 바로 읍내가 보였다. 좁은 길 사이로 키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작은 가게 사이에 위치한 미용실을 찾아온 것이었다.


"아직 문 안 열었나 봐요."


"영업은 하는 건가? 50년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이거 뭐 고데기 화롯불에 지져서 하고 막 그런 곳 아닌지 모르겠네......"

"내키지 않으면 다른데 가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어."

우리는 미용실 입구에 있는 턱에 잠시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머리 뭐 하려고요? 급해요? 오늘 꼭 해야 해요?"

"미용실에 앉아 있는 거 싫어. 꽂혔을 때 해야 하는데! 에잇! 시내 나갈 때 해야겠다. 그냥 가자."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어떤 젊은 여자가 우리를 보고 손짓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내 반가운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 머리 하시게요? 들어와요, 들어와! 여행 오셨어요? 이곳분들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 친척집에 오셨나? 들어와요! 제가 여기 원장이에요."

젊은 여자는 빠른 움직임으로 문을 열고 우리를 안내했다. 질문은 했지만 답을 할 틈은 주지 않았다. 어려 보이는 나이임에도 굉장히 싹싹하고 상냥했다. 이렇다 할 새 없이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죄송해요. 아이가 올해 입학해서 스쿨버스 태워 보내고 오느라 원래 문 여는 시간보다 조금 늦었어요. 커피랑 녹차 있는데, 셀프니깐 잠깐 마시고 계셔요! "

젊은 여자는 건조대에 널어놓은 수건을 치우고 바닥을 대충 정리하는 듯 보였다. 우리는 잠시 대기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분주하게 정리하는 여사장을 보며 언니에게 슬쩍 말했다. 우리끼리만 들리는 정도로 작게.


"머리 할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 들어왔으니 해야지."

"지금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나가면 되잖아요."

"어떻게 그래......"

"왜요? 머리에 물도 안 뿌렸는데! 아직은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에이. 그래도 좀 그렇잖아."


"의외네요. 매너를 지키고."


"뭐야, 매너는 당연 기본인데."

언니는 염색을 하는 내내 정말로 말 한마디 없었다. 그럼에도 젊은 여자는 여백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쏟아냈다.

- 그런데, 공무원이라는 게 너무 안 좋은 것 같아요. 어디로 가라! 하면 갈 수밖에 없거든요. 아, 저희 남편이 경찰이거든요. 누군들 이런 촌구석에 있고 싶겠어요, 남편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좋은 것도 있어요. 저희 남편이 좀 인물이...... 어딜 가나 여자들이 가만 두질 않는 거죠. 물론 남편이 다른 여자들한테 눈길을 주는 건 아닌데 그래도 뭐 안심이 되어야 말이죠! 아침마다 저렇게 출근하는 뒷모습 보면 가슴이 콩당콩당 한다니깐요.


-저희 아이 또래가 동네에 거의 없어요. 그러니 당연히 초등학교도 있을 리가 없죠. 아침마다 시간 맞추기 너무 힘들어요. 너무 열악해요. 이러니 사람들이 당연히 도시로 나가려고만 하는 거죠. 기본 생활환경이 개선이 되어야 하는 게 우선 아니에요?

언니의 염색이 끝날 무렵엔 머리가 지끈거렸다. 여자의 호구 조사 양이 방대하여 귀가 너무 피로하였다. 성정 언니의 혀 차는 표정이 나에겐 보였으나, 그 여자는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최근에 본 중 최고의 수다쟁이였다. 서둘러 계산하고 미용실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여자는 자신의 가게 명함을 내밀며 또 말을 이었다.

"아래 sns 있으니깐 팔로우해 주세요. 다음에 오시면 영양 서비스로 해드릴게요."

"네, 고마워요."

"그냥 심심할 때 아무 때나 놀러 오세요. 머리 안 해도 되니깐! 너무 오랜만에 젊은 사람 만나니깐 너무 행복한 거 있지요! 꼭 다음에 들러주세요"


"젊....... 어요?"


"아휴, 여기선 아주 언니들 정도는 이팔청춘이에요. 여긴 주로......"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우리는 서둘러 개천 다리를 건넜다.


******


"이모! 저희 왔어요!"

"때맞춰 잘 왔어!"

이모님은 대형 양푼에 잡채를 버무리고 계셨다. 얼핏 보아도 열 명은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언니는 냉큼 이모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이모님은 손으로 잡채를 둘둘 말아 언니 입에 넣어 주셨다. 그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고 부럽던지, 엄마와 딸의 모습 같았다.

"무슨 일이야! 너무 맛있어, 어쩜 이렇게 음식을 잘하고 또 많이 할까! 지원아 이리 와 봐."

나도 언니를 따라 수줍게 입을 벌렸다. 이모님은 내 입안으로 딱 알맞은 양의 잡채를 돌돌 말아 넣어주셨다. 정말 맛있는 잡채였다. 눈물 나게 행복한 맛이었다.

"정말 너무너무 맛있어요."

"이모, 진짜 갑자기 웬 잡채야? 오늘 정말 뭔 날이야?"

"뭔 날은 뭐. 그냥 재료 보여서 대충 한 거지."


"역시 능력자! 우리 위에 힐링상담소카페 차렸다고 했잖아. 마수걸이 한 기념으로 생각할게요. 역시 이모랑 우린 텔레파시가 통하나 봐. "

"그래, 꿈보다 해몽이지! 축하혀. 요거 먹으면서 조금만 기다려. 금방 상 차려 줄게."


이모님은 잡채를 담아주시고는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언니, 무슨 소리예요? 우리 손님 왔었어요?"

"응."


"도대체 언제요? 근데 왜 말 안 했어요? 난 왜 몰랐지?"

"너 잠잘 때 왔었어."


"이상하네, 근데 진짜 여태 나한테 말을 안 했다고요?"


"아니, 뭐 별다른 거 없었어. 별로 말한 것도 없고. 혼자 조용히 차 마시고 갔어."


"흠...... 뭔가 수상한데. 언니 성격에 자는 나를 깨워서라도 어쨌다 저쨌다 말했을 텐데."

"너 은근히 나에 대해 엄청 많이 아는 것처럼 군다! 나 그렇게 쉽게 파악되는 여자 아니야!"

언니는 내키지 않은 듯 핸드폰만 보며 설렁설렁 이야기했다.

"애들 어느 정도 키우고 힘들게 다시 사회생활 시작했대, 첫 휴가로 혼자서 여행 중이라며, 벽화 구경하고 있다가 나랑 딱 마주친 거지. 첨엔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자기가 첫 손님 해주겠다고 한 거야."

"상담 이런 걸 원한 손님은 아니었나 보네요?"


"뭐 별로 그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언니가 대화 방향을 잘 못 잡은 건 아니고요?"

"야!"


"근데, 핸드폰으로 자꾸 뭘 보는 거예요?"


첫 손님에 대해선 심드렁해 보였다. 건성건성 얘기하면서 눈은 계속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아까 미용실 사장 SNS 아이디 받은 거 팔로우하려고 하는데 이건 또 어디서 하는 거야, 뭐 쉬운 게 없네....... 아! 된 건가?"


그때, 가게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우리 외에 손님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언니와 나는 반사적으로 입구 쪽을 쳐다보았다. 조정범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마침 계셨군요. 성의를 무시할 수 없고 해서, 지나가다가 들렀는데 마침 계셨군요."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조정범은 머쓱한 듯 다가와 성정 언니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언니도 안녕하셨어요? 언니 성의 때문에 무릎 쓰고 왔습니다! 앉아도 될까요?"

언니는 반기는 기색 없이 눈짓으로 앉으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합석 좀 하겠습니다."

잠시 어색한 기운이 감돌며 정적이 흘렀다. 다행히 이모님의 음식들이 나와 테이블 위를 가득 매워 주었다. 찬양에 가까운 조정범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세상에! 어마어마하네요. 얼마 만에 이런 밥상을......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물론 우리도 식당에서 밥상을 처음 받아봤을 때 같은 경험을 했던 지라, 조정범의 반응에 공감이 되었다. 더욱이 오늘은 소고기 미역국에 불고기, 잡채까지, 정말 집에서 받는 생일상 같았다.

"이모! 진짜 누구 생일인 거야? 이모 생일인 거 아니야? 맞으면서 아니라고 하면 우리 서운해, 정말."


"얼렁 먹어. 있는 걸로 그냥 다 한 거야."


"이모님, 식사 안 하셨음 같이 하세요!"


"신경 쓰지 말고 어여들 먹어."

이모님은 손을 저으며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네! 잘 먹겠습니다."


젓가락을 어디로 움직여야 할 정도로, 곱게 차려진 상을 그냥 먹기에는 아까울 정도였다. 이 정도의 밥상은 누구라도 생일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는 그저 긍정의 끄덕임만 반복하면서 식사를 했다.


"동네가 좁아서 자주 마주칠 텐데...... 여기 나이로 서른두 살 이랬나?"


언니가 먼저 조정범에게 말을 걸었다.


"스물일곱 살입니다.!"

"헙! 스물...... 여하튼 또래로 보이겠지만, 아니 별로 차이가 별로 안 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우리가 둘 다 누나니깐. 담부터 말 편하게 할게요. 괜찮죠?"


"이미 편하게 하고 계시는데, 더 편하게라고 하는 건......? 하하하하! 농담입니다.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조정범은 말을 하면서도 음식을 집어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입에 음식이 가득 찬 채로 말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복스럽다고 해야 할지, 게걸스럽다고 해야 할지, 생전 처음 먹는 것처럼 요란스러웠다.

"체하겠어요. 천천히 드세요."

"너무 맛있습니다. 이렇게 먹는 즐거움이 행복한 것이구나 새삼스럽게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조범이 가 살던 미래에선 이런 것 하곤 비교도 안 되는 신기하고 맛있는 것들이 넘쳐나지 않아?"

사람을 앞에 두고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것 같아서 언니를 흘겨보았다.

"아니요.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음식을 더 이상 다채롭게 먹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 먹는 것에서 질병 유발이 많이 되어 최소한으로 먹게 되거나, 약으로 대체합니다."

"와우!"

언니는 외마디 감탄사와 함께 표정 싹 바뀐 뒤, 그저 핸드폰만 보았다. 여전히 언니는 조정범에게 무례하게 군다고 생각되었다. 평소에 공상과학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언니의 무례함을 희석하기 위해 성의 있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자 했다.

"그럼 미래에는 이런 식당들이 없겠네요?"

"있지만, 비슷한 종류의 비슷한 맛이죠. 그냥 살기 위해 끼니를 때운다는 개념 정도예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정말 타임머신 타고 온 거예요?"

"네."

"타고 온 타임머신 어디에 있어요?"

"동굴 안쪽에 동굴 뚫고 들어와 있는 거 못 보셨어요?"

"암반 같은 기둥 말곤 없던데.......""

"암반 아니에요! 타임머신이에요."


"큭큭큭. 바이올린 타고 온 건 아니고?"


"네?"


나는 언니의 어깨를 툭 치며 주의를 주었다. 조정범이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신경 쓰였다.

"아, 그렇군여. 타고 있을 때 기분은 어때요? 속도감 같은, 그런 느낌은?"

"속도감은 느낄 수 없어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다만 느낌은 기억이 나는데, 마치 온몸에 머드를 잔뜩 바르고 뜨거운 햇볕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 점점 강도 높게 살이 갈라지는 통증을 느끼게 되죠. 아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조정범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언니에게 불편함을 이야기했다.


"언니! 조정범 씨한테 그렇게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뭘?"


"사람이 진지하게 말을 하는데, 무시하는 태도는 좀 보기 그래요."


"내가 볼 땐 니가 더 나빠! 정말 믿어서 그러는 거야?"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내가 볼 때는 니가 더 고단수적으로다가 조범이를 멕이는거야!"


"와! 사람을 뭘로 보고."


마침 조정범이 자리로 돌아와 나는 입술을 앙 다물고 언니를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가게 문을 세차게 열어젖히며 일전에 보았던 고깃배 선주가 들어왔다.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보이는 대로 발로 차고, 손에 집히는 대로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나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테이블 아래로 몸을 피했다. 조정범은 입에 음식물을 머금은 채로 선주를 저지하러 다가갔지만 주먹 휘두른 한 방에 종이 인형처럼 옆으로 고꾸라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불같이 소리를 지르며 언니가 선주에게 덤비려 하자 이모님이 서둘러 선주를 막아섰다.

"아이고! 이 사람아! 그만 좀 해."

"그만 좀 하라고? 누구 때문에 이라고 사는데! 왜 아직두 여서 장사를 하면서 내 속을 뒤집어 놓냐구!"

선주는 이모님은 밀쳤고, 그 힘으로 인해 이모님은 테이블에 부딪쳐 쓰러지고 말았다. 이를 본 언니는 갑자기 뛰어 날아 오르 듯, 선주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어잡았다.

언니는 있는 힘껏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몸은 최대한 뒤로 뺐다. 선주는 머리채가 잡혀 아등바등하며 언니를 잡으려고 했지만 손에 닿지 않는 모양새였다.

"이거 안 놔! 이 미친년아! 니가 뭔데 이러는 거야! 좋은 말 할 때 놔라, 뒈지기 싫으면 놓으라고!"


"미친 새끼가 누구 보고 미친년이래!"

심장이 벌렁거려 아무런 생각도,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동안 언니와 선주와 대치상황이 계속되었다. 금방이라도 선주가 언니를 어떻게 할 것 같아 불안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테이블 밑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을 때,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이 들어왔다. 다행히 누군가 이 모습을 보고 신고를 해준 것 같았다.


가게 안으로, 언니와 신경전을 벌였던 경찰관과 준영이 아빠가 함께 들어왔다. 경찰관들은 언니와 선주를 힘겹게 떼어 놓았다. 둘 다 흥분 상태가 높아서 쉽지 않아 보였다.


"자, 진정들 하세요. 이제부터 협조 안 하시면 현행범으로 다 잡아갈 겁니다. 참 본의 아니게 자주 보게 되네요, 그죠?"

언니는 경찰관을 힐끗 보며, 선주에게 다시 달려들려고 했다.

"에해! 나이들도 들만큼 든 양반들이 이 무슨 추태스러운 행위일까요. 큰일 납니다, 진짜! 여기는 내가 마무리할 테니깐 서순경이 찾아봐 바. 여기에 있다고 했으니깐!"

"네. 이 경위님."

지시에 따라 준영 아빠는 갑자기 주방 쪽을 살피며 다가갔다. 이모님은 크게 당황하며 준영 아빠의 팔을 잡아 세웠다.

"거기는 그냥 주방인디, 거기는 뭐 하려고 그런데요?"

준영 아빠가 이모님의 손을 치우며 주방 쪽으로 들어가려 하자 이모님은 준영 아빠의 앞 길을 막아섰다.

"여그는 암것도 없어요!"

"어르신! 잠시만 비켜주세요.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요."

"아니라니깐. 여그는 암것도 없다니깐 왜 그런다요."

준영아빠는 표정이 잠시 서늘하게 바뀌더니, 다시 이모님의 손을 토닥였다.

"어르신! 이래 봤자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준영아빠가 이모님의 손을 제치며 주방 쪽으로 향하던 그때, 안 쪽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