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장미정원
"엄마...... 배가 너무 고파......"
반가움도 잠시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져 내립니다. 노숙자처럼 거적때기를 뒤집어쓰고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끼니도 제때 못했는지 얼굴에 살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손가락질은 당신이 모두 받을 테니 어디에서 그저 배곯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기만 하라고 빌고 빌었던 어머니였습니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고 내가 내 자식은 그 벌 피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니, 이 어미가 이렇게 덕이 없는 사람이라 결국 네가 이렇게 됐구나......"
아들에게 할 법한 손찌검을 자신의 가슴을 내리치는 걸로 대신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이유를 묻지 않고 어머니는 일단 아들의 뱃속에 밥을 먼저 채워 넣기 급급했습니다. 먹이고 먹여도 채워지지 않는 공복의 연장선에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진우는 횡령한 그 돈으로 짧은 기간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으로 여자를 만나 사랑을 했으니 세상 어느 것도 두렵지 않았으며 어떠한 고난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살을 부비적 거리며 살아간다는 것은 진우에게 있어 그 어떤 마약보다 강력한 중독이었습니다. 정상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가기에 충분했습니다. 환각 같은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 구멍 난 항아리에서 물 세듯 돈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이렇다 할 보금자리를 정하지도 못한 채 가지고 온 돈의 반 이상을 쓰고 없애는 데에는 반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미의 설득으로 남은 돈 전부를 전망 좋은 사업에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미의 호언장담과는 다르게 지속적으로 손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진우는 초조해졌다 갔습니다. 돈을 모두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정미에게 화를 내며 싸우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그렇게 거의 모든 원금이 손실되자, 정미가 행방불명되고 맙니다.
진우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습니다. 정미가 본인의 실수로 모든 돈을 잃은 것에 대해 비관하여 나쁜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을 하고 자길 버린 것은 아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정미를 찾아 곳곳을 뒤지고 다닙니다.
본인 몸이 망가지고 있는 것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정미를 걱정하며 찾아 헤매는데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여기저기 길에서 잠을 자고 먹다 버린 음식으로 연명하는, 말 그대로 정말 거지 같은 생활을 하며 정미를 찾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정미의 흔적을 좇다 보니 행방불명이 아니라 투자자와 함께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쯧쯧쯧, 진짜로 걸려드는 새, 아니 사람이 있구나. 사정은 안 됐지만 포기해요 그 자식 이미 사기 전과 8범에 지금도 수배 중이에요. 정미 그년이 그 새끼랑 밀항하려고 돈 만든다는 얘긴 진즉에 소문처럼 돌았어요. 돈 만들었으니 이미 한국 떴을 거예요."
진우의 모든 세계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몸도 마음도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고,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보내며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죽어지지 않고 배만 고팠습니다. 배가 고프다 못해 온몸의 장기가 뒤틀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때 떠오른 것은 정미도 아니고 돈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 상이었습니다. 아욱 된장국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 한 공기만 먹었음 하는 바람, 그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앞 뒤 생각 없이 진우는 엄마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오로지 뜨거운 밥 한 그릇과 따뜻한 된장국만을 떠올리며.
늙은 어미는 이렇게 늙어버린 아들이 가여워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바라만 봐도 가여운 아들을 감옥으로 보내려고 하니 차마 문을 열어 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받았던 비난과 괄시, 손가락질을 이 가여운 아들이 고대로 받을 생각을 하니 죽을 것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
늙은 어미는 결국 필연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자수하겠다는 아들을 방에 숨기기로 한 것입니다.
" 한 3천 정도 남았어. 그래도 창섭이랑 정진이랑도 좀 도와줘서 다 갚고, 저거 남은 거 마저 갚고 죗값 치르러 가. 그래야....... 그래야 조금 봐주지 않겄냐. 그냥 이 엄마 봐서라도...... "
잘못된 선택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일단은 그렇게, 그렇게라도 아들을 숨기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은 괴로웠습니다. 매일 독방 같은 곳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외출이 허락되는 시간은 늦은 밤 암흑이 뒤덮는 늦은 밤, 그 외에는 가게 안에서 창 밖을 내다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늙은 어미가 곁을 지켜주었지만 진우 씨는 너무 외로웠고 쓸쓸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늙은 어미는 아들의 입맛을 찾아주기 위해 음식에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하루에 한 끼 먹기도 버거울 만큼 고통받고 있었지만 차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잊을만하면 창섭이가 찾아와 가게를 부수고 늙은 어미에게 악다구니를 쓰며 대들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피해자가 돈을 갚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며 겁박질을 해댈 때도 아들은 쪽방에서 가만히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이곳에 있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늙은 어미는 잠이 들 때마다 끙끙 앓는 소리가 날만큼 고단했습니다. 아들은 매일 밤 그 소리에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노모는 아들 생일에 먹이겠다며 새벽부터 불고기, 미역국, 잡채 등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맛있는 냄새들이 진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냄새에 구토를 하고 말았습니다. 주제에 어머니의 생일상을 받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역겨웠던 것이었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늘도 창섭이가 찾아와 화를 쏟아냅니다.
입을 닦아내고, 창 밖을 내다보면 오늘따라 유난히 화창하고 고요한 포구가 보입니다.
"여보세요. 경찰서죠? 자수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