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장미정원
여자의 살 냄새를 처음 알게 한 정미는 진우에게 있어 절대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진우는 정미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진우는 사랑의 힘이라 믿었으며 그 위대함에 순종하기로 한 것이었죠.
찬란한 미래만 존재할 것 같았지만 시작부터 큰 난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오빠 생각을 해봐. 우리끼리만 살면 소지포구가 정말 최고 좋은 곳이지. 어머니도 옆에서 보살펴 드리고. 하지만 오빠 아이 안 낳을 거야? 난 여기서 아이 낳고 싶지 않아. 결혼하면 도시에서 시작해야 해."
"아...... 하지만 상황이, 물론 일이야 내가 출퇴근해도 되지만 신혼집을 얻으려면 돈이 만만찮게 들 텐데."
"오빤 죽어 있는 소지포구를 살린 사람이야. 뜻만 있다면 분명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난 오빠의 능력을 믿어. 중요한 건 오빠의 확신이야! 나와 오빠. 그리고 우리 아이를 위해서."
사실 임신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정미의 말에 진우는 이미 아이가 생긴 사람 같았어요. 정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여긴 소아과도 없고, 학교도 읍내까지 나가야 했으며, 무엇보다 또래의 아이가 없을 테니, 자신의 아이가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걱정이 앞섰어요.
정미는 본인이 살던 도시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작은 신혼집이라도 구해볼라 치면 목돈이 필요했습니다. 정미와 진우는 고민 끝에 식당을 정리한 후 엄마를 모시고 함께 도시에서 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이곳에서 식당 일만 하던 엄마는 도시로 떠나는 것이 탐탁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걸 알지만, 엄마는 그동안 진우가 결혼할 때 쓸 요량으로 한 푼 두 푼 모아둔 돈을 내밀며 둘이서 행복하게 살길 기원합니다. 그러나 그 돈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지요. 정미는 묘수를 생각해 냅니다.
"오빠! 일단은 예약금 통장에 있는 돈을 빌려 집을 구하고 바로 일을 해서 조금씩 갚아가는 건 어떨까?"
"친구들이 허락해 주지 않을 거야."
"물론 창섭이 오빠랑 정진이 오빠한텐 말하지 말고!"
"말도 안 돼!"
"일단 그 돈으로 가게 딸린 방을 구해서 바로 장사를 시작하자고. 도시는 여기랑 달라. 금방 돈을 모을 수 있다고! 수입의 크기가 달라. 나는 돈을 버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야. 날 한 번 믿어보면 안 되겠어?"
"하지만......"
"내년이면 오빠 나이 오십이야. 나도 오빠 나이만 아니면 뭐 하러 이렇게 서두르겠어? 생각해 봐, 지금 당장 아이를 낳아도 우리 아이 대학 갈 때 되면? 오빠 칠순 잔치 해야 해."
"내 나이 다 알면서 시작한 거잖아!"
"그랬지. 정말로 다시 돌아가면 난 절대 오빠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어쩌다가 내가 오빠를 사랑해서 이렇게 조급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거냐고! 나만 그런 거야? 나만 그렇게 사무치게 사랑하고 나만 하루라도 빨리 우리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하고 나만 이렇게 애타는 거야? 그런 거야?"
"아니야, 알잖아. 나는 너가 죽으라고 하면 죽어. 정말 그럴 수도 있어. 내 인생 전부 보다 더 널 사랑해. 하지만, 그 돈은......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서 단지 그래서 그런 거야."
"오빠! 우리만 생각하면 안 될까? 난 오빠 닮은 아이 낳고 행복한 가정 꾸려서 사는 그날만 손꼽아 기다려. 오빠의 전부인 나만 생각해. 그러면 오빤 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강한 사람이 되는 거야. 할 수 있어, 뭐든지!"
물론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견물생심이라고 본인의 통장에 가져보지 못한 돈이 입금되어 있으니 가당치 않은 계획도 세워지고 없던 용기도 솟아났습니다. 진우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정미와 함께 돈을 가지고 소지 포구를 떠나 도시로 갔습니다.
"미안해. 반드시 금방 되돌려 놓을게. 정말 오래 걸리지 않을게."
물론, 그 후에는 모두가 예상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 빈틈없이 예약을 받았기 때문에 진우의 빈자리는 컸습니다. 깨진 독 막듯이 조합의 다른 팀원의 지원을 받긴 했지만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환불 고객이 빈번하게 발생했으나 돈이 없으니 환불을 해줄 수 없었지요. 그렇게 진우는 고발되었고, 진우의 엄마는 가만히 가게를 지키다가 덩달아 죄인이 되었습니다.
돈을 날리게 된 피해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진우네 식당을 찾아와 쑥대밭을 만들고 갔습니다. sns를 통해 소문은 금세 퍼졌고 유령마을이 되는 것은 일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속이지 포구, 속지마포구, 속지 포구 등 다양한 이름을 붙여가며 조롱했고 가게 곳곳을 훼손시킨 모습을 명예훈장처럼 SNS에 올리곤 했습니다.
진우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으며, 매일 같이 피해자들에게 죄를 비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모진 괄시와 돌팔매질을 당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냈습니다. 그럼에도 천륜이라고, 어머니는 매일 같이 아들을 걱정했습니다.
손님이 없는 가게를 지키며 등받이도 없는 불편한 의자에 앉아 매일을 한 결 같이 아들의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편하게 앉아 있는 것조차 죄스럽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아파도 당신 손가락이라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아들이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