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장미정원
우리는 그 사건 이후, 다신 이모님을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 가게를 열고 음식을 했던 건 장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들을 위한 식사 준비였던 것이었다. 지금은 아들이 이곳에 없으니 더 이상 가게 문을 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이모님은 다시 가게를 열었으며 언제나처럼 음식을 했다.
"매일 먹으러 와줘서 고마웠어. 계속 먹으러 올 거지?"
오히려 우리에게 고마워하셨다. 언니는 이전처럼 먹고 싶은 게 있을 때마다 이모님께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는 실례가 아닐까 싶었지만 우리에게 음식을 해주고 우리가 그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가장 밝은 표정을 짓고 계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이모, 이거 먹는 거라는데 알아?"
"어디서 이걸 캤대? 이름이 머였더라......"
"바디나물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약초라고 했어요."
"자연에서 나는 게 다 약초지. 모 따로 있나..... 이리 줘봐. 옛날에는 많이 먹었는데 맛이 나는지 함 봐보자."
"이모 시간될 때 울 집에 올라와요. 풀이 다양하게 많은데 또 먹을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 우린 봐도 몰라서 다 베어 버리거든!"
이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 좀 쉬셔야 할 텐데, 자꾸 불편하게 이것저것 부탁하고 그래요?"
"모르는 소리! 하긴 내 깊은 속을 네가 어찌 헤아리겠느냐!"
특유의 잘난 척할 때 짓는 표정으로 거드름 피우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싫었다.
"그래서 답사는 잘 다녀왔어요?"
"갑자기?"
"축제 답사 때문에 새벽부터 나갔다가 온 거라면서요! "
"아, 그거. 축제는 다음 주부터라는데 벌써부터 시끌시끌하더라고. 정보 될 만한 거 이것저것 올리고, 음식도 막 주길래 먹고 하니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긴긴 시간을 거기서 보내셨다고요?"
"뭔가 자꾸 나에게 불신을 갖는 느낌이 드는데? 왜 그럴까?"
"아니, 혼자서 갑자기 손님을 맞는데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그리고 언니는 너무 안 오고! "
"내가 놀다 온 것도 아니고, 네가 sns를 안 해봐서 모르나 본데, 관련 게시물을 올리고 태그 걸어줘야 그 축제 검색하면서 같이...... 여하튼 그래. 일하다가 온 거야."
언니는 내 입을 막기 위해 어떤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준영이 아니에요? 만났어요?"
"만났지. 아니 봤지. 이건 그 미용실 여사장 SNS야. 사진 어때 보여?"
"어때 보이긴 뭐가요? 억새풀이 원래 이렇게 키가 커요? 축제할만하네요. 사진 엄청 잘 찍었네요. 이쁘네. 이래서 여사장은 팔로우가 이렇게 많구나."
"아니 배경 말고. 준영이 말이야."
"준영이가 왜요? 그냥 엄청 기분 좋아 보이는데요. 놀러 가서 좋았나 본데?"
"그렇지? 사진만 보면 그렇지? 그런데! 내가 이 사진 찍는 모습을 본거지. 완전 소오름 반전!"
"뭐가요?"
언니가 본 준영이와 미용실 여사장의 모습은 그러했다. 준영이는 기분이 안 좋은지 침울해 보였단다. 그런데 여사장은 계속 사진을 찍었고, 그런 준영이에게 자꾸 포즈와 미소를 강요했더란다. 준영이가 잘 따르지 못하면 이내 신경적으로 준영이에게 윽박지르며 신경질을 냈다고 했다.
"그렇게 애가 어깨가 축 늘어졌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대더라고. 애는 죽상을 하고 있는데 실시간으로 업로드하는데만 정신 팔려 있는 거야."
"왜 그런 거예요?"
"진짜 작작 하라고 말하고 싶은 거 꾹 참고 몰래 잠깐 지켜봤는데, 그렇게 찍은 사진에 뭐라더라 우리 아가 마음도 억새풀처럼 살랑살랑 이랬나..... 그 엄마, 정신 병자 같아! "
"네? 설마요."
"왜 sns에 미쳐서 윈도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 많잖아. 그럴 거면 지나 그렇게 사진 찍어서 올리지, 애를 왜 그렇게 고생시키나 몰라. 그깟게 뭐라고."
"단면적으로만 보고 판단하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아니야! 냄새가 나! 지금 생각해 보면 준영이 눈빛이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슬펐던 것 같아. 얘 혹시 학대당하고 있는 거 아니야?"
"또! 또! 또!"
나도 모르게 수저를 테이블 탁! 내리쳤다.
"너 아무리 그래도...... 내가 언닌데!"
"그러니깐 무턱대로 자꾸 사람 의심하지 마여! 나 트라우마 생기겠어."
"내가 그래서 뭘 했니! 아후 무서워서 말도 못 하겠네. 오늘은 조범이 안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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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 가을의 본색은 두드러지게 진해졌다. 바람은 건조했고 기온은 낮아졌다. 언제나 혼자였던 체온이 쓸쓸함으로 도배되는 계절임이 확실했다.
낮에 여자 손님이 주고 간 꽃차를 우렸다.
"차의 계절이 돌아오는구나."
"차 좋아해요?"
"아니. 분위기 내기에는 좋잖아. 향만 좋지, 맛은 더럽게 없네. 근처에 꽃차 공방이 있는지 몰랐네. 언제 함 가보자."
"이봐 다 들었네......"
"에이, 중간에 들어오기 그래서 그냥 저기 있었어! 그냥 혹시 상담 같은 거 하자고 할까 봐 겁났었어. 됐지!"
"상담을 빼면 되지. 머 굳이......"
머쓱했다. 그렇게까지 다그치는 느낌을 갖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잠시 대화 없이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별이 보이고 정적 속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이 대자연이었다. 대자연은 나를 생각하게 하고 나의 생각을 비워내기도 하고 나를 별수롭지 않은 존재임을 알게 해 준다. 나와 저 작은 돌멩이 한 부스러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 것이다.
"아까 낮에 왔던 분들이요."
"응."
"이혼여행이래요. 보기엔 너무 편안하고 좋아 보였는데 이혼을 할 거래요."
"응"
"지난 시절의 가여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이혼을 한대요."
"응"
"지금은 괜찮은데 지난 시간 때문에 지금 이혼을 한다는 게 말도 공감이 가요?"
"음....... 너는 어때?"
"전 이해가 안 갔어요. 남편도 모르게 이혼을 준비하는 것도. 난 내가 말을 이해 못 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 사람들 말고 너 말이야. 너는 지금 괜찮니?"
가슴이 덜컹했다.
"사람이 왜 그럴 때 있잖아, 괜찮아 보이는데 진짜 괜찮은 거 맞나? 온전히 안녕하다고 나의 나에게 얘기할 수 있는 걸까? 괜찮은데, 괜찮지 못한 걸 알아차리는 것도 용기이지 않을까. 지금이 온전하지 못한 건 그때 채우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시간 때문일 텐데..... 그 사람은 그걸 채우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찬 바람이 눈가를 스쳤을까? 눈물이 맺혔다.
'지원아! 괜찮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