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정원 20-2
'엄마기억이라......"
"음...... 글쎄요. 4살 때 이혼하고 나가셨으니깐 제대로 된 기억은 없어요.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 마저도 진짜 기억이 맞는 건지 그 시절 나의 어떤 바람이 만들어 낸 왜곡인지 알 수 없고요."
진짜로 그러했다. 기억의 언저리를 붙잡고 할머니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아이가 어찌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몰라도 그때는 많이 그리워했을 것이다. 아니 궁금했을 것 같다. 그러나 추억의 조각을 맞추고 맞추어도 번번이 달랐다. 엄마와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그 시절 나의 대부분의 기억은 흐트러짐 자체였다.
지금 나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그 시절의 기억은, 엄밀히 말하면 할머니와 고모에게 들은 이야기로 형성된 것이었다. 그저 확실한 것은 아빠와 엄마는 내가 4살이 되던 해를 못 넘기고 결국 이혼을 했다. 엄마는 그 뒤로 집을 나서서 지금껏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었다. 나 역시 엄마를 찾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
할머니는 늘,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하고 살라며 나를 달랬다. 보채지 않았어도 늘 나를 그렇게 달랬다.
"우리 엄마는 많이 아팠대. 내가 뱃속에 있을 때 의사는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더라고. 모든 가족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나를 낳았고, 나의 백일도 보지 못하고 죽었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사람이야...... 하지만 아빠는 나를 보는 게 얼마나 지옥이었겠어. 비단 아빠만 고통스러웠을까...... 내다 키우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고 하더라구. 그러다 아빠 눈에 갑자기 내가 달라 보였대."
"어떻게요?"
"엄마 얼굴이 보였대. 엄마 얼굴이 있는 이 작은 아이를 슬프게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대. 울 아빤 그때부터 당신의 삶을 그냥 나한테만 쓰셨어."
"아빠가 엄마를 많이 사랑하셨었나 보네요."
"너희 아빤 사랑 안 하셨대?"
"모르겠어요. 단 한 번도 엄마 얘기를 아빠 입을 통해서 들어본 적은 없었어요."
"하긴 이혼을 했다면, 가득했던 사랑도 이미 다 소진되었을 테니 그때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겠구나."
"갑자기 궁금하네. 그래도 결혼할 땐 많이 사랑해서 했던 게 아닐까요?."
"사랑이 빠진 자리에 사랑했던 시간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힘도 없는 거란다."
"우리 아빠도 가끔은 나한테서 엄마를 봤을까요?"
"니가 보기엔 어때? 엄마 닮았어?"
"모르겠어요. 엄마 사진을 본 적이 없어서."
"정말?"
"보여준 사람도 없었고, 굳이 엄마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거짓말 같겠지만 정말 궁금해한 적이 없었어요."
"엄마...... 가 있다는 건 어떤 걸까?"
"글쎄요."
"넌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어?"
"네."
"왜?"
"말했잖아요. 기억도 추억도 아무것도 없으니 무슨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대체적으로 예상하는 것들에 반하는 지금의 냉소적인 태도는 그렇지 못하는 마음의 반증 같아 보이는데?"
"무슨 말이에요?"
"애쓸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있는 거야. 기억이 없다고 그냥 그저 그런 아무도 아닌 존재는 아니잖아, 엄마라는 게."
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식의 반응을 보였다. 내게 "엄마"라는 감성과 "나의 엄마"는 다른 것이었다.
"애쓴 적 없는 것 같은데...... 어쨌든 있는 게 없어서 미련도 그리움도 아울러 따라오는 희망도 없어서 전 다행인 것 같아요."
"에이 그래도, 가끔은 궁금하기도 하고 어땠을까 생각도 해보고, 너 정말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맹세코 한 번도 없다고?"
"에햇! 없다고요!"
"니 감정은 그러면...... 원망이네! 아직도 엄말 미워하고 있는 거네."
"아니래도!"
"으이그! 알겠다, 알겠어. 장래희망이 냉혈한이야 뭐야...... "
언니는 또 특유의 표정을 지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듣지 아니하고 자신의 뜻대로 다른 해석을 할 때의, 그 표정이다.
"난 아까 그 지영이 엄마라는 사람 보니깐 문득 나한테도 엄마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때의 나에게도 엄마라는 존재가 있었다면 지금하고 달라졌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던데. 진짜 엄마도 아닌데 엄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지영이 엄마는 가족끼리 조촐하게 돌잔치를 하고 바로 이모네 가게를 찾아왔다고 했다. 이모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연신 눈물을 흘렸고, 밥에 눈물이라도 들어갈세라 이모는 눈물을 닦아주고 또 닦아주었다.
-정말로 엄마 말대로 쉬이쉬이 나아졌어요. 엄마 덕분에 우리 지영이 돌잔치 무사히 보낼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손잡아 줘서!
닭똥 같은 눈물을 닦아주는 거북이 등껍질이 그 순간만큼은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해 보였다.
유난히 높은 밤하늘. 유난히 깊게 박힌 듯한 별.
왜 그렇게 많고, 넓게 퍼져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