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정원 20-3
지영이의 울음소리는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보고 있자니, 실소가 터졌다.
-날 가지고 노는 거지?
-나를 그냥 괴롭힐 목적인거구나.
-늘 나만 괴롭혔어.
-세상이 그렇지 뭘.
-이제야 동생들 떨구고 살만하다 싶었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맥박이 빨라지고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눈알이 빠질 것 처럼 아팠다. 지영이의 거즈를 둘둘 말아 공처럼 만들어본다.
-이 정도 크기라면 입을 틀어막을 수 있어.
-장롱에 갇아 버리는 것도.
-이렇게 작은 거 하나쯤은 어떻게 할 수 있지, 내가.
-내가 맘만 돌리면 넌 살지도 못해. 그런 주제에 나를 농락해?
망각에 빠진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구이며, 이건 또 뭐람 말인지.
유체이탈을 경험하며 반복적으로 불쾌한 쇳소리가 들려온다. 마지막 의식만이 남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엄마...... 솔직히 편했지? 편했을 거야. 난 근데 엄마 대신에 정수랑 정민이랑 진희 키우느라 진짜 진짜 정말 장난 아니었거든. 나 정말 힘들었어. 어쩜 이렇게 힘든 게 끝이 없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원래 그런 거야? 어떻게...... 사람이 사는 게 이렇게 힘이 들어...... 말 좀 해보라고! 엄마!"
나는 지영이 입에 거즈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분노는 생각에 생각을 낳으며 점점 더 거대해져 갔고 나의 행동은 악의적이며 대범 했다.
"죽어야 끝이 나는 거야. 그렇지, 엄마? 그런 거지? 내가 너무 늦게 알았어."
한 장 한 장 욱여넣을수록 역시 지영이의 울음소리는 잦아들었다.
나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완벽하게 무너졌으며 이미 결과는 정해졌다. 분노가 리듬을 탔으며 나는 그 리듬에 모든 걸 맡겨버렸다.
결국 이렇게 끝난다는 사실이 서러웠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들을 키우면서 힘들 때마다 말할 곳도 없이 사무칠 때 전화를 걸었다. 짧게 신호가 가다가 결번이라는 안내음이 나왔었다. 그럼에도 그 짧은 신호음이 잠시나마 나의 위안이 된 것은, 혹시나 하는 희망적인 착각.
그나마 언제부턴가 그 짧은 신호음마저 사라지고 결번이라는 안내음만 나와 오랫동안 전화를 걸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신호음이 들려왔다. 어리석게 또 희망적인 착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보세요?
컥! 숨이 막혔다. 받았다, 전화를.
"어..... 엄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었다. 엄마였다.
-여보세요?
"엄마...... 엄마, 나야..... 흑흑흑!"
눈물이 쏟아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아......
"엄마...... 보고 싶었는데."
-그래, 엄마여.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전화기가 엄마의 손목이라도 되는 냥 부여잡고 한 참을 꺼억거리며 울었다. 턱관절이 제 자리를 이탈한 듯 달그락거렸으며 들썩거리는 어깨의 움직임 때문에 호흡도 불규칙했다. 넘어갈 듯 말듯한 숨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아이고, 어째 그리 서럽다냐? 아가, 왜 그렇게 울어대 싸?
"엄마...... 나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단 말이야. 지영이가 계속 울어. 쟨 나를 벌하려고 내려온 악마 같아. 정말 죽을 것 같아."
-아이고, 우리 딸 힘들어서 어쩔까......
우리 딸이라는 말에 나의 모든 고통의 껍질은 녹아 흘러내린 기분이었다. 살갗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너무 귀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중이라 그래. 그래서 힘든 거야. 하지만 또 금방 괜찮아져. 쉬이 쉬이 금방 괜찮아져. 너무 힘들 땐 고개 들고 크게 숨 세 번 참고 쉬고. 세 번 참고 쉬고. 그러면 암시롱 않고 괜찮아져. 아가, 그라고도 죽고 싶음 언제라도 와. 엄마 항시 여그 있을거이께. 엄마가 맛있고 따순밥 해줄게.
나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등골이 오싹했다. 재빨리 지영이를 살폈다. 입에 거즈를 문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억장이 내려앉았다.
"미친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해일이 크게 치고 지나간 마을 같았다. 마을은 부서지고 쓸려가고 성한 것이 하나도 없지만 평온했다.
거울 앞에 서면 그 마을 같은 아이가 서 있다. 부서졌으니 다시 지을 수 있다. 이곳에서 복숭아씨는 다시 나무로 자라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
*******
무사히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 어르신께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까 전화 했던."
-응.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요?
"네. 부끄럽지만 어르신 아니었으면 정말 저..... 큰 일을 저지를 뻔했어요."
-엄마 생각나믄 언제라도 전화해요. 난 암시롱 안 하니까.
"정말로 깜짝 놀랐어요. 물론 돌아가신 지 오래되어서 목소리가 기억이 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인연이란 게 참 숭하게 징허요. 어째 또 내가 그 번호를 어뜨께 썼을까나.
"그러게 말이에요. 오랫동안 결번이었거든요. 많이 당황스러우셨을 텐데, 정말 다시 한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런 말 말어여. 진짜 인사치레 아니고 주소 보낼텐게. 아무 때나 와요. 따신 밥 해줄게. 아무때나 와. 난 괜얀으니깐.
"고마워요, 엄마."
*******
유난히 높은 밤하늘. 유난히 깊게 박힌 듯한 별.
왜 그렇게 많고, 넓게 퍼져 있는가!
"지원아! 넌 언제까지가 끝이야?"
"뭐가요?"
"엄마 기억."
바람이 유난스럽게 스산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