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정원 21-2
"곶감 만들어서 그때 그 애기 엄마한테도 보내줄 거야?"
"이름이 선미랴. 김선미."
"참 희한한 인연일세..... 이모 우리 이름은 알아?"
"알려줘야 알지."
"굉장히 뭔가 잘못 됐는 걸! 잘 들어, 얘는 지원이! 성이 뭐였지?"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염이요. 염지원!"
"맞다, 염지원. 나는 황성정. 황. 성. 정."
"염지원이! 황성정이! 알았어. 인자부터 똑똑히 기억해 둘게."
"내가 누구라고?"
"성정이."
"낼도 확인할 거야."
"오야. 인자 점심 묵을 준비 해야 쓰겠네. 마저 들 하고 있어."
이모는 가게로 들어가고 언니와 나는 계속 감을 깎았다. 저 감을 모두 해결하기 전까지는 이 자리를 뜰 수 없을 것이다. 언니는 저 서투른 솜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 마무리 지어야 성이 풀릴 것이다. 물론 이모의 손을 쉬게 해 주려는 마음이겠지만!
"지원아, 업종 변경을 해야 할 것 같아"
"뭐 아직 제대로 한 것도 없는 거 같은데..... 뭘 변경한다는 말이에요?"
"힐링플레이스에서 찻집? 로즈가든이니깐 꽃차가 콘셉트에 맞을 것 같아."
"꽃차는 그때 손님한테 받은 것 밖에 없는데?"
"만들거나, 공방 찾아서 사 오거나."
"그렇게 하세요. 그다지 한 것도 없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뭘."
"그치? 그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다?"
"뭔데요?"
"메뉴개발! 이런! 내일부터 또 바빠지겠는데, 그 꽃차 공방은 어딘지 알아?"
"말만 거창하네요. 그나저나 어딘지 모르는데."
"sns에는 없는 게 없지."
언니는 마치 새로운 먹거리를 찾은 승냥이처럼 눈빛이 반짝거렸다. 일을 만들어서 하는 것은 이모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핸드폰을 뒤적거리는 자태와 눈빛 만으로도 앞으로 펼쳐질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영 보기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성정아! 밥 먹자."
우리는 멈칫했다. 이모가 창가에서 우릴 불렀다.
"지원아! 밥 먹자."
찰나였지만 뭉클한 기분에 코를 찡긋했다. 언니와 마주했을 때의 표정 또한 나와 비슷했으리라. 마음이 홍시보다 더 말랑말랑 해졌다. 이모에게는 기필코 특별한 능력이 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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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네서 저녁까지 먹고 막 집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가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요?"
"글쎄. 그나저나 무슨 사이렌을 저렇게 요란스럽게 울리면서 가는 거야! 길 막는 사람도 차도 없는데."
언니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운전대 방향을 돌려 경찰차를 쫓았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가 달리는 방향과 반대편으로 뛰어가는 정범이 보였다. 언니도 보았는지 갑자기 차를 세웠다.
"뭐야! 봤어? 방금 도망간 애 조범이 맞지?"
"그게 순식간이라 긴가민가 하긴 한데......"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허둥지둥 거리며 도망치는 듯한 모양새였다.
"이거 기분 탓이야? 경찰차 사이렌에 맞불려 뛰는 모습이 왜 도망자처럼 보이냐?"
"그러....... 게요."
우리는 일단 경찰차를 마저 뒤쫓았고, 머지않아 준영이네 집 근처에서 경찰차는 멈추었다. 우리도 근처에 차를 세우고 잠시 준영이네 상황을 훔쳐보고 있었다.
"지원아!"
"네?"
"처음부터 이상하게 찜찜했어. 하지만 니 말대로 내가 너무 선입견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구나. 그래, 나잇값 못하고 동생에게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을 보였구나, 하면서 반성도 했어."
"갑자기 무슨."
"지금 이 상황 어떻게 설명할 거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경찰차가 신고를 받았으니 왔겠지? 준영이네로. 근데 마침 딱 조범이가 도망을 치고 있어."
"아...... 도망이 아니라 그냥 달리기 한 거잖아요."
"일전에도 그렇고, 조범이랑 준영이의 관계 석연찮은 게 있었잖아. 근데 명확하게 설명도 못하고!"
"흠......"
"에휴! 너랑 무슨 말을 더 하겠니!"
준영이와 준영이의 엄마가 나란히 경찰차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오르기 전 준영이 엄마는 준영이 아빠에게 뭐라고 호소하는 듯 보였고 굳은 표정의 준영이 아빠는 별다른 대꾸 없이 둘을 차에 태우는 모습이었다. 준영이는 주눅이 든 것인지, 겁을 먹은 것인지 고개를 좀처럼 들지 않았다.
정말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듯 보였다. 준영이의 침울한 표정과 늘어진 어깨가 마음에 걸렸다. 정말로 정범은 그들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일사적이지 못한 곳에서만 교집합이 생기는 것인지 의아했다. 아니다, 언니 때문에 나 역시 어느 순간 교집합으로 엮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너는 자꾸 날 탓했지만 봐봐. 상황이 모든 걸 얘기해주고 있잖아. 나이 허투루 먹는 거 아니야!"
이 상황이 저렇게 의기양양할 문제인가 싶었지만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별다른 대꾸를 하진 않았다. 이러고 있다가는 언니의 생각대로 나 역시 휩싸일 것 같았다.
"그나저나 경찰서로 가야 할까? 아니면 조범이! 이놈한테 가야 할까?"
"언니! 집으로 가요.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서 감 깎았더니 너무 피곤해요."
"이 상황에서 피곤함이 몰려오다니...... 알았어! 가, 집에! 그나저나 준영이한테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난 정말 아무런 사심 없이 낼 경찰서에 가서 팩트 체크만 하고 올 거야. 뭐라고 하지 마."
"내가 뭐라고 이래라저래라 해요...... 그냥 오늘은 정말로 몸이 피곤한 거예요. 나도 궁금하네요. 낼 다녀와서 알려주세요."
"같이 가도 괜찮은데, 나 혼자가?"
"네. 전 걍 집에서 손님 오는지나 볼게요. 아니면 꽃차 공방을 다녀오던가......"
물론 준영이가 걱정스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몹시 피곤 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비단 감을 깎은 노동 때문은 아닐 것이다.
매번 무슨 일 없나, 하고 촉을 세우는 듯한 언니 옆에 있는 것이 여간 기가 빨리는 일이 이닐 수 없었다.
내리는 어둠이 유난히 무거웠다. 해가 짧아져 예상보다 일찍 어둠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