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을 떠나는 손흥민을 보며 든 한 박사과정의 생각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은 아름답다.

by ph di


손흥민이 토트넘을 떠난다는 뉴스를 보았다.

나는 엄청난 축구팬은 아니다.

대신, 아버지가 손흥민의 엄청난 팬이시기에 가끔 아버지 옆에서 손흥민의 축구경기를 보거나, 아님 운동을 하며 손흥민 경기 영상을 볼 때가 있었다.


나는 운동에 문외한이다.

내가 하는 운동이라고는 살기 위해 지금까지 하고 있는 필라테스와 헬스(유산소) 말고는 없다. 이런 사람도 손흥민의 업적을 알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 발자취를 남겼는지 안다는 것을 보면 괜히 손흥민에 대한 국뽕을 한국 사람들이 갖는 것이 아니다.

(나도 갖고 있음. 손흥민은 지금 내 두유노 클럽 1인자다. 싸이, 김연아, 박지성을 제치고)


개인적으로 손흥민 축구 경기 영상을, 특히 그의 모음집을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자기의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을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모음집을 볼 때면 마치 공이 자석처럼 손흥민에게 가고, 손흥민은 그런 공을 너무도 시원하게 찼다. 그리고 그걸 볼 때 마다 엄청난 쾌감을 느꼈는데, 동시에 저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을 그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공이 아무한테나 자석처럼 붙을까? 아니다. 죽어라 연습하고 노력한 자한테 공은 자석처럼 붙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 저 사람은 진짜 죽어라 열심히 노력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연구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라 '오늘은 그 연구 작살나게 해보아야겠다'라는 다짐을 했다.

(한편으로, 연봉이 엄청난 손흥민도 저렇게 열심히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데, 내가 뭐라고... 정신 차리고 연구실 가자라는 다짐도 하고..^^)


그렇게 손흥민의 경기 영상은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주었고, 그래서 그의 경기 영상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손흥민은 축구 선수이기에 자신의 일을 한 것일텐데 왜 그렇게 내 마음에 열정과 힘을 주었던 걸까?를 돌이켜본다면 내가 그의 경기에서 느꼈던 것은 단순히 '오 축구 잘하네'라기 보다 그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일을 잘하는 건, 재능이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일을 사랑하는 건,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직장, 그 공동체를 사랑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손흥민을 볼 때 그가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자신의 팀을 애정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자연스럽게 내 마음을 울렸던 것 같다.


왜냐면 그건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매너리즘은 언제나 올 수 있다.

나도 내가 선택한 박사 과정의 길을 걷고 있음에도 매너리즘을 겪으니까.

근데 그때마다 '이대로 매너리즘에 빠져 적당히 대충하다 끝낼 것인가', '다시 일어나서 최선을 다할 것인가'라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그때 나는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끔은, 아니 아주 자주 세상은 우리를 배신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죽어라 노력한 거 같은데 결과는 그지같거나,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거나, 아니면 심지어 오해를 받을 때도 있다.


그래도 그 주어진 자리를 묵묵히 최선을 다해 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는 그 자리를 떠났을 때 남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손흥민의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상대편 팀과 그의 팀이 와서 그를 안아주고,

토트넘에서는 행가래를 해주며 그의 마지막을 함께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의 끝은 이렇게 아름답구나'


물론 그는 다른 팀에 가서 새로운 시작을 하겠지만, 10년간 머물렀던 팀을 떠나는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토트넘에서의 순간은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그가 최선을 다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손흥민이 아니다.

그냥 한국에 사는 한 명의 연구자일 뿐. 내가 언젠가 연구실을 떠난다고, 학계를 떠난다고 사람들이 행가래를 해주지는 않을터.


그래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내 연구를 사랑하고, 내가 속한 연구실을 사랑하고, 내 직업인 연구자로서의 삶을 사랑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최선을 다하는 순간순간 별의별 위기와 번아웃과 허망함 등을 경험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마지막 모습은 아름다움이기를 바란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10년간 한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직장을 사랑한, 자신의 직업을 사랑한 손흥민이 존경스럽다.

그의 앞으로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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