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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n 12. 2023

어른놀이를 잠시 멈추기로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되었습니다

오른손을 다쳤다. 당분간 손가락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내 오른손에는 깁스가 감겨있다. 주변에서는 얘기한다. 다 큰 30대 처녀가 어린아이들처럼 손에 깁스를 하고 돌아다니냐고.


그렇다. 나는 다 큰 처녀다. 그런데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언제나 어린아이이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었. 드디어 소망이 이루어진 것인가. 나는 요즘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오른손잡이였던 내가 오른손의 기능을 잃어버리자 혼자 할 수 있는 일상 활동의 범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약 봉투를 뜯을 때 왼손과 입을 함께 사용하게 되더라.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후배가 조용히 옆으로 다가오더니 이야기한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리고는 흠뻑 웃더라. 항상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유지했던 나, 빈틈을 보이지 않던 내가 어린아이들처럼 일상을 버벅거리는 모습들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단다. 완벽하지 않는 지금의  모습들이 마음에 든다고, 불편한 것들이 있으면 언제든 손만 들어 달란다. 기가 쏜살같이 달려오겠다고 말이다. 허허허. 이건 무슨 소리인가. 약을 올리는 것인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많은 머뭇거림과 어려움을 느끼던 나였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혼자 해나가려 발버둥을 치며 살았다. 주변에서는 항상 얘기했었다. 혼자서 버겁고 힘이 들 때는 도움 좀 요청하면서 일하라고. 근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아마 어리숙한 내 모습을, 연약한 모습들을 주변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른손을 다친 이후부터 직장동료, 선배, 후배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내 모습을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만 했다. 

 

솔직히 불편했다. 창피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하루 이틀이 지나다 보니 주변사람에게 받는 선의의 도움이 생각보다 나쁘지만은 않더라. 주변의 관심과 도움을 무조건 피하고 밀어내는 것만이 답은 아닐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의 진심을 느껴버리게 되어서였을까(생각의 전환, 왜 나는 항상 모든 것들을 직접 경험해봐야지만 깨닫게 될까).


직장 안에 내 손이 스무 개 정도는 있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한 손의 기능을 잠시 잃어버렸을 뿐인데, 스무 개의 새로운 손들이 생겨난 요즘, 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지금은 내 신체 상태에 따른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게 되었기도 하고 말이다.


당당하고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꾸던 삶을 살았었다. 그런데 어른이가 되고 난 뒤 그동안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살았던 내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어른으로서의 책임감?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조금은 느슨한 일상도 나쁘지만은 않더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그동안 무조건 힘주는 삶을 살아왔는가?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그 힘을 조금씩 풀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내 안에 어른이를 깨워보자.


#33살, 나는 어른놀이를 잠시 멈추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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