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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l 17. 2022

꼬르륵~ 작은 여관방에 울려 퍼진 말없는 외침.

 사회복지사의 좌충우돌 성장 Story

<사회복지사의 좌충우돌 성장 Story: 지역사회 실천사례_청장년 1인 가구 이야기(박광명 씨/가명)>

#1. 사회복지사는 열 발짝, 당사자는 반 발짝.
#2. 부재중 전화.
#3. 꼬르륵~ 작은 여관방에 울려 퍼진 말 없는 외침.
#4. 저 죽으려고 합니다 선생님. 지금 저한테 좀 와주세요.
#5. 힘차게 앞으로!


#1. 사회복지사는 열 발짝당사자는 반 발짝     

2018년 2월 27일 화요일 늦은 오후, 박광명 씨와의 첫 만남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직근무로 1층 로비에 앉아 있던 저는 바짝 마른 몸과 힘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복도를 하염없이 걸어 다니던 광명 씨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복지사>
“안녕하세요 아버님, 무슨 일로 오셨나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궁금하신 사항은 제가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광명 씨>
“아... 아니에요...”


박광명 씨와 대화를 나눈 건 단 몇 초뿐이었습니다.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 낮아 보이는 자존감, 가라앉은 억양 등에서 왠지 모를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그 후 한참이 흘렀을까요? 이번에는 박광명 씨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박광명 씨>
“저기요 여기 있는 쌀은 누구한테 주는 건가요?"
"제가 혼자 살고 있는데... 저 같은 사람한테도 주시는 건가요?”


박광명 씨의 눈빛을 처음 바라보았습니다. 초점 없는 눈빛이 더해진 박광명 씨의 모습은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순간 저는 사회복지사로서 박광명 씨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박광명 씨의 질문에 대한 대답 몇 마디만으로 스치듯 지나치면 안 되는 인연이다 생각했습니다. 알아야만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다 싶어 박광명 씨에게 궁금했던 질문들을 여쭤보기 시작했습니다. 

당사자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다가가야 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박광명 씨의 현재 상황을 파악해야겠다 다짐한 저는 저만의 속도에 맞추어 빠른 템포로 질문들을 이어갔습니다. 

<사회복지사>
“혼자 거주하고 계신가요?"
"가족과의 연락은 자주 하시나요?"
"근로활동은 하고 계신가요?”
 
<박광명 씨>
“아... 아니요.. 그만 가보겠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알아야만 하겠다는 조바심 속에 당사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내려놓은 채 질문공세를 이어가고 있던 제 모습을 되새기며 한심하다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상담을 그냥 종료할 수 없었습니다. 

<사회복지사>
“죄송합니다 아버님, 제가 너무 많은 것을 여쭤보았죠. 오늘 제게 말씀해주시기 어려우시면 말씀해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혼자 생활해 나가시는데 어려운 상황이 온다면 저에게 연락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커다란 도움은 어렵겠지만, 아버님의 상황을 함께 나누고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박광명 씨>
"네...”

<사회복지사>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아버님 연락처와 주소를 저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박광명 씨>
“네.. 전화번호는요..”

박광명 씨에게 풍겨 나오던 왠지 모를 불안한 느낌 때문에 어렵게 성함과 연락처를 받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 번호가 맞는지 전화를 걸어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사회복지사의 조급함과 박광명 씨의 무덤덤함으로 서로에 간격을 느끼며 마무리되었습니다. 


#2. 부재중 전화

짧았던 만남을 뒤로한 채 하루하루 박광명 씨의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첫 만남에서의 조급함은 잠시 내려놓은 채 이번에는 천천히 기다려보자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까요?

제 핸드폰에 박광명 씨의 전화번호가 부재중으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두근두근 심장이 떨렸습니다. 마음이 통했을까요, 복지관에서의 만남을 기억하고 용기 내 연락 주신 박광명 씨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습니다.    

  

박광명 씨는 청장년 1인 세대로 복지사각지대에 놓여있었습니다. 청년시절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크게 다친 머리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목 디스크 증상과 머리 통증이 장소불문 나타났으며 아침·저녁 우울증 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해야만 했습니다. 근로활동도 모두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고시원, 모텔, 여관을 전전하는 생활이 시작되었고 2년 전 건강이 악화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셨습니다.      

최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박광명 씨는 수급비의 대부분을 방세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수급비가 생활하기에 충분한 금액은 아니었지만 주거비를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대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하였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반복되는 힘겨운 삶 속에 심적으로 많이 지쳐계신 상황이었습니다. 

<박광명 씨>
“여관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선생님께서 방문상담을 하신다고 했을 때 거부감이 컸습니다.”
“누구한테 도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싫고 죄송한데, 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날 복지관이란 곳을 처음으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자신의 일처럼 이것저것 걱정해주셔서 감사했는데, 제가 다 벗겨지는 기분에 그냥 되돌아왔습니다."
"그날은 죄송했습니다.”

작고 힘이 없는 목소리였지만, 닫혀있던 마음속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이야기해주시던 박광명 씨와 함께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3. 꼬르륵~ 작은 여관방에 울려 퍼진 말없는 외침     

상담을 하며 둘러본 박광명 씨의 생활공간은 말할 수도 없이 열악했습니다. 

“낡은 이불, 베개, 가스버너, 양은냄비, 몇 벌의 옷, 약 봉투” 제가 본 박광명 씨의 생활도구는 이것들이 전부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박광명 씨>
“꼬~르~륵~~~”

<사회복지사>
“아버님, 하루 식사는 어떻게 드시고 계신가요? 오늘 식사는 하셨어요?”

<박광명 씨>
“아직 안 먹었습니다. 집에 쌀이 다 떨어져서요.”


일주일 전 박광명 씨와 제가 나눈 첫 이야기 주제가 쌀이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동안 식사를 못하셨던 걸까?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며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로서 편견에 치우치지 말자고 속으로 되새겼습니다. 당사자를 중심에 세워 도움을 드리되 동정에 치우치면 안 된다 생각했습니다.      

이후 제가 박광명 씨를 바라보던 관점을 ‘관심’과 ‘강점’에 두어보자 생각했습니다.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관심을 두고 당사자를 중심에 세워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한 실천을 통해 박광명 씨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우선 외부와 단절된 채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던 박광명 씨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하고 싶었습니다. 박광명 씨와 직접 대화하며 서로의 약속을 만들었습니다. 흔쾌히 약속에 응해주셨던 박광명 씨는 누구보다 적극적인 분이셨습니다. 

1. 작은 약속 하나 : 매주 월요일 집 밖으로 나와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복지관에 방문하기
2. 작은 약속 두울 : 밑반찬을 수령하며 사회복지사와 담소나누기(3분 이내)
3. 작은 약속 세엣 : 사회복지사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기

4. 커다란 약속 하나 : 술을 줄여보기
5. 커다란 약속 두울 : 거주지 이전 준비
6. 커다란 약속 세엣 : 근로활동 시작

박광명 씨와의 만남 이후 세 달이 지났을 무렵 거주지 이전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거주지 이전을 위한 방법과 절차를 안내드린 후 너무나 빠른 진행 상황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박광명 씨에게 거주지는 그만큼 절박하게 필요한 공간이었습니다. 매일 같이 복지관에 방문하여 LH 임대주택 대출절차와 부동산 방문 상황을 들뜬 모습으로 이야기해주시던 박광명 씨의 모습은 즐거움이었습니다. 

그토록 원해왔던 거주지가 안정된 후 항상 무표정으로 다니시던 박광명 씨의 얼굴에는 생기가 돋기 시작했습니다. 

웃음기 있는 눈빛으로 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역시 하루하루 늘어갔습니다.


#4. 저 죽으려고 합니다 선생님. 지금 저한테 좀 와주세요.

언제나처럼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박광명 씨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방문이 어려울 경우 사전에 먼저 연락을 주시던 박광명 씨는 깜깜무소식이었습니다. 전화를 드려보았습니다. 신호음만 전달될 뿐이었습니다. 걱정이 되어 몇 번이고 연락을 드려보았지만 상황은 같았습니다. 그때 박광명 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박광명 씨>
“선생님.. 제가.. 죽으려고 합니다. 너무 힘이 들어요.”


이후 전화연결이 끊겨 버렸습니다. 재 연결을 눌러보니 박광명 씨의 핸드폰이 꺼져있습니다. 놀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침착해야 했습니다. 복지관에 상황 전달을 마친 후 곧장 박광명 씨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몇 번이고 문을 쾅쾅 두드렸습니다. 인기척이 들려왔습니다. 너무나 다행이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문을 열고 삐뚤삐뚤 걸어 나오는 박광명 씨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집안을 진동하는 술 냄새, 대충 엉덩이까지 걸쳐진 바지에 앞과 뒤를 바꿔 입은 티셔츠, 감지 않아 덥수룩하게 헝클어진 머리, 입 주변에 묻은 음식 양념, 밀지 않은 수염을 한 박광명 씨는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박광명 씨>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죽으려고 했어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선생님 같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나쁘잖아요. 경찰도 다 똑같아요.”
“그냥 뛰어 내려서 죽으려고요.(눈물을 닦으며)”
“사는 게 너무 힘이 들어요.”


박광명 씨의 자살 예고는 이날을 기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시작됐던 자살 예고 이후에도  박광명 씨는 하루가 멀다 하게 술을 드셨고 죽겠다며 전화를 했습니다. 하루 소주 10병은 기본이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 대한 박광명 씨의 의존도 또한 날이 갈수록 그 강도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박광명 씨는 새벽 6시, 오후 11시, 아침·저녁으로 시간 관계없이 전화를 하며 저를 찾았습니다. 1주가 넘는 기간 동안 지속되던 상황 속에 무언가 확실히 잘못되었구나 싶었습니다. 박광명 씨와 저 사이에 거리 확보가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박광명 씨는 관심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지금 내가 너무 힘들어요.” 누군가 알아주기 원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박광명 씨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술에 취해 죽겠다며 전화를 걸면 달려오는 사회복지사, 그게 필요했던 걸까, 그렇다면 힘겨운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대책 마련이 필요했고 박광명 씨가 술이 취한 상태에서 연락을 취할 경우에는 대화가 불가능하기에 만날 수 없다고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러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업무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광명 씨의 음주 중단을 위해 음주상황에서는 만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였지만, 매일매일이 걱정이었습니다. 하루는 사회복지사로서 올바른 방법으로 실천하고 있는 게 맞는지 종일 한숨만 나오던 날도 있었습니다. 어렵고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3주 정도가 흘렀을까요, 퇴근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박광명 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술에 취한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박광명 씨>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술을 먹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했을까요, 죄송합니다. 뵙고 싶습니다 선생님”

<사회복지사>
“안녕하세요 아버님, 그동안 술을 많이 드셨어요. 내일 오전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꼭 금주하셔야 제가 아버님 집에 찾아뵐 수 있어요. 아셨죠? 여태까지 잘 해오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약속 꼭 지켜주실 수 있으시죠?"

<박광명 씨>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얼마 후 박광명 씨의 집에 방문했고 왜 술에 취한 채 시간을 보내야만 했는지, 여러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박광명 씨는 그동안 조금씩 저축한 돈으로 TV를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TV는 고장이나 틀어지지 않았고, 구입한 상점에 물으니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반복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 사기까지 당했구나 생각한 박광명 씨는 세상을 원망했고 자기 자신을 자책했던 것이었습니다. 


박광명 씨와는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약속했습니다. 혼자 견뎌내기 어려운 상황이 닥칠 경우 술을 먼저 마시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떤 상황이 생겼는지 사회복지사에게 먼저 연락하여 함께 풀어나가 보자 요청드렸고 열심히 노력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5. 힘차게 앞으로     

3주간의 한바탕 자살소동 이후 2018년 12월 현재까지, 박광명 씨는 술을 입에 대지 않으십니다. 세 달 전부터는 간헐적이지만 일용직 근무를 시작하셨습니다. 심적으로 지쳐있어 근로활동을 할 수 없었던 박광명 씨는 조금씩 건강을 되찾고 계십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밑반찬 수령을 위해 밖으로 나오던 박광명 씨는, 이제는 운동을 나왔다가 복지관에 방문하실 정도로 활발한 외부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2018년 연말에는 500만 원을 저축하셨다며 호두과자 두 봉지를 사 가지고 오셨습니다.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정성과 관심을 쏟으며 한 해를 보내고 또 두 해를 보냅니다. 씨 뿌린 자리에는 어떤 변화가 없습니다.

셋째 해가 되니 이제 겨우 고개를 내미는 죽순 30cm, 넷째 해가 되어도 여전히 30cm인 죽순을 보며 이렇게 자라 언제 저 하늘에 닿을지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염려도 잠시, 심은지 5년째 되는 대나무는 폭발적인 성장, ‘퀀텀 리프’를 합니다. 대나무 마디마다 생장점이 있어 하루에 1m 가까이 자라 어느새 저 하늘 끝에 닿을 만큼 성장합니다.

이렇듯 폭발적 성장은 5년간의 뿌리 내림이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서로 얽히고설켜 지반을 움켜쥐듯 자란 뿌리가 강한 비바람도 이기는 유연한 대나무 줄기를 뻗어 올리는 원동력이 되어 준 것입니다.
-내 삶을 이해할 준비가 되었나요? 본문 내용 中-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소중한 단 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사회복지사가 있습니다. 

지역사회 모든 사회복지사 분들을 응원합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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