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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n 28. 2022

사회복지사이자, 내담자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이자 내담자(Client)입니다. 제 나이 11살, 4학년이었습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에 와서야 내 인생의 여러 과정들을 고통이라 명칭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심리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회복지사입니다.
#2. '신체화 증상' 그리고 찾아온 '위기', 그렇게 심리상담소를 찾아갔습니다.
#3. '여러 공격 기술들에 의해 남겨진 후유증', 내 삶이 복싱(권투) 경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4. 권투 기술들과 같은 고통은 제 삶을 무차별하게 타격해오기 시작했고, 2021년 결국 저는 그대로 K.O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5. 지금은 심리상담을 통해 어려움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기술들을 연마하기 시작했습니다.

#1. 심리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회복지사입니.

2022년 3월, 심리상담(개인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회복지사입니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은 사회복지사로서 지역주민&내담자(Client)와 그들의 일상을 함께 나누고 공감합니다. 일주일 168시간 중 1시간은 내담자(Client)로서 상담 선생님을 찾아뵙고  자신을 돌아보는 여정을 함께 나눕니다.


나라는 '개인의 삶'과 사회복지사라는 '전문가의 삶' 그리고 상담심리전문가의 서비스를 받는 '내담자(Client)라는 고객으로서의 삶'


'공과 사'였던 제 일상은 '공과 사, 그리고 상담'으로 확장되며 변화를 맞이했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페르소나라는 사회적 가면을 착용한 채 홀로 참 많이도 흔들렸던 제가, 여러 우여곡절을 끝으로 이제는 삶의 균형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심리상담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회피하고 방어하기 바빴던 시간이었죠.    때문에 너무나 많은 세월을 홀로 힘겹게 버텨내는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책을 어깨에 짊어진 나라는 사람이 심리상담을 받는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고,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습니다.  낙인감이 무서웠고, 세상에 당당하지 못할 제 모습이 무섭기도 했습니다.

#2. '신체화 증상' 그리고 찾아온 '위기', 그렇게 심리상담소를 찾아갔습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특정한 순간마다 제 자신에게 나타나는 '신체화 증상'들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얼굴과 귓가에서 울리고 땀이 나며 몸이 심하게 떨리던 증상. 매 순간 반복되던 잊고 싶은 기억에 밤새 울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시간들.


성인이 된 후로는, 만성화된 증상들이 오랜 시간 꿈꿔오며 어렵게 이루어낸 꿈(사회복지사)과 충돌하기 시작했고, 공과 사가 뒤엉키며 극단적인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매일 밤 술을 마시며 몸을 혹사시키기도 했고, 결국에는 변하지 않는 현실을 비관하며 내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기도 했습니다.


위기였습니다. 이러다가는 내가 정말 죽을 수 있겠다는 공포감이 제 정신을 휩쓸었습니다. 한 차례의 시도, 그리고 또 한차례의 준비.

그렇게, 그때가 돼서야, 저는 심리상담소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참 바보 같은 세월을 보냈구나라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외상(外傷, trauma, 트라우마)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남겨진 정신적인 후유증 또는 상처를 의미한다. 원래 외상은 외부로부터의 상처를 의미하지만, 이상심리학 및 정신병리학에서는 정신적인 의미의 상처를 가리킨다. 흔히 외상을 남기는 외상사건(traumatic event)에는 생명의 위협, 신체적 상해 등과 같은 것들이 있다. 그것을 직접 경험하는 것뿐 아니라 목격하는 경우에도 외상이 생길 수 있다. 생명의 위협이나 심각한 신체적 상해의 위협을 느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되면 그 사건이 종료되었음에도 오랜 기간 피해자의 삶에 영향을 남긴다. 이 외상에 잇따라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신적, 신체적 증상들을 총체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PTSD)라고 한다.
[이상심리학 시리즈_09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_김환 지음_학지사_중에서]

#3. '여러 공격 기술들에 의해 남겨진 후유증', 내 삶이 복싱(권투) 경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극심한 스트레스에 지쳐가던 저는 복싱(권투) 장을 찾아갔습니다. 스파링을 통해 제 안에 억눌려 있던 분노를 그대로 표출해낼 수 있었고, 어느 순간 제 인생이 복싱(권투)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투 링 위에서 훅/스트레이트를 날리며 탐색전을 벌이는 권투선수들의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펀치를 날리며 상대 선수의 얼굴을 적중시킨 선수를 보신 적은요?

상대의 펀치에 얼굴을 가격 당해 K.O를 당하며 쓰러지는 선수를 보신 적은 있으신지요?


권투는 특정한 초식이나 형 같은 것이 없고, 공격 기술이라곤 스트레이트, 잽, 어퍼, 훅, 바디 이렇게 5가지뿐입니다. 화려해 보이는 권투 기술들이 있다고 해도 결국은 이 5가지 동작을 연결하고 응용한 것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복싱(권투)은 기술의 가짓수가 적은 만큼 반복 훈련과 필요 숙련도가 대단히 높습니다. 제한된 수만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몇 수 앞까지 생각해서 빈틈을 노려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한 무술이기도 합니다.  

타격이 신체 전반에 골고루 퍼지는 다른 타격 기와는 달리 복싱(권투)은 서로의 주먹이 대부분 얼굴에 닿습니다. 그 충격은 뇌로 바로 전달되며, 그것이 축척된 뒤 다운이 되면 승패가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중 뇌출혈로 인한 사망자가 상당히 많고, 설령 숨지지는 않더라도 은퇴 이후의 후유증이 심하게 남게 되기도 합니다.


#4. 권투 기술들과 같은 '고통'은 제 삶을 무차별하게 타격해오기 시작했고, 2021년 결국 저는 그대로 K.O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2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트레이트, 잽, 어퍼, 훅, 바디라는 권투 기술들과 같은 '고통'은 제 삶을 무차별하게 타격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순간순간 정신을 차리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요.    

권투를 배운 사람의 체중이 실린 주먹을 정통으로 맞으면 일반인인 이상 반격을 할 생각은커녕 실신이나 안 하면 다행일 정도로 그 위력은 상당히 막강합니다. 그들이 심도 있게 배우는 풋워크는 복서 특유의 거리 감각 및 회피 기술과 시너지를 발휘하기 때문에 같이 주먹을 날려도 일반인 얼굴만 피떡이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게 일반적인데요.

     

이 어렵고 복잡한 기술들이 대단한 숙련도를 겸비한 채 일상생활 속 예상할 수 없는 순간마다 저의 얼굴을 매번 쉴 새 없이 가격해 왔으니, 그 기술들에 대한 이해도가 하나도 없던 저는 장비인 헤드기어(심리상담&약물치료 등)를 착용하지도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스파링(공격) 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 충격이 뇌와 신체에 그대로 전달되며 한계에 봉착한 저는 2021년, 결국 그대로 K.O 당하게 된 것이지요.


#5. 지금은 심리상담을 통해 제 자신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기술들을 연마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피떡이 되어 무방비 상태로 쓰러진 저를 곁에서 일으켜준 감독님(팀장님&부장님)이 곁에 계셨다는 것이고, 지금은 심리상담을 통해 내 자신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기술들을 연마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조금은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지만 스트레이트, 잽, 어퍼, 훅, 바디와 같은 공격 대처 기술들을 삶 속에 녹여내기 시작했고, 용기를 내고 있는 내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긍정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진행되는 상담 시간이 아직은 많이 무섭고 긴장되기도 하지만, 상담 선생님과 소통하며 공감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을 병행하며 앞으로 얼마만큼의 길을 걸어가게 될지 아직은 짐작조차 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걸어가 보고자 합니다.   

#혹여, 저와 비슷한 두려움으로 일상을 벗어나지 못한 채 홀로 힘겨운 싸움을 이겨내고 계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지금부터는 한걸음 두 걸음 내디뎌 볼 수 있는 용기(자신을 위한 챙김)를 마주하게 되실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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