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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May 23. 2023

처음 보는 상주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이 났다.

나는 장례도우미다

나는 부모님의 잦은 싸움을 보면서 살아왔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모습을 매일매일 보고 자라왔단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족에 대한 소망이나 꿈이 없다. 다만, 이미 가족이 형성되어 있다면 누구든 그 가족을 위해서는 진실되게 온 맘을 다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이건 무슨 소리일까. 서론을 이해하기 위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붙여보겠다. 나는 이번 주말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장례식장에서 보이는 눈물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날 상주를 처음 본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라는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불꽃이 튀듯 요란했던 장례식장 공간. 그랬다. 오전 내내 고요했던 장례식장 분위기는 상주와 가족들의 분열로 점차 요란하게 들썩이기 시작했고, 늦은 저녁 결국에는 욕설과 몸싸움이 시작됐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보냈는데, 그런 니들이 나를 이렇게 몰라?

* 다 죽*버려" 상주가 가족들을 향해 소리친 말이었다. 


이럴 수가. 고인의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공간에서 죽*버려라는 소리를 지르다니. 나는 눈살 찌푸려졌다. 상주의 행동은 장례식장 안에서 예의범절을 정확하게 어긋나고 있었고, 그 도는 선을 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던 행동. 나는 이런 상식이 없는 행동은 여태 나의 집안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다. 듣기 거북한 욕설 역시,  집안 가족들의 일상 언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단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세상에는  나의 집처럼, 분열에 분열이 들어차 있는 가정들이 많이 즐비해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분열에 속해 있던 사람들의 표정과 분노는 모두가 하나같이 비슷한 듯했다. 어딘가 바랜 듯한 어두움, 쌓여있는 증오, 내려놓음의 표정들 말이다. 그들의 눈빛은 내 눈빛을 보는 듯했고, 상주의 배우자는 나의 어머니. 그분의 아련한 눈빛을 닮아 있었다. 


욕을 하며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들던 모습. 동생과 주먹을 휘두르던 모습.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도 얼굴도 보지 않겠다고, 이래서 오늘도 안 오려했다고 소리치며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않고 고인 앞에서 발길을 돌리던 장남의 모습.


한편으로 예의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장남의 마음과 행동이 이해가 되더라. 그리고 생각했다. 오죽했으면 이라고. 잠시나마 내 모습이 그대로 비쳐서였을까. 안타까웠다. 그래서 생판 처음 본 사람들의 싸움을 곁에서 바라보며 눈물이 났다. 주책이지 말이다.


상주 배우자의 고독과 슬픔, 아련했던 눈빛, 장례식장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게 어딘가를 응시하며 시간이 멈춰있는 듯 보였던 그 모습도.. 내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잊히지 않는다.

내 어머니의 모습과 너무나도 닳아있던 그 모습이 말이다. 그때 아려오던 슬픔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편이 묵직해진다.


그럼 이쯤에서 생각해 보자.

장례 중 또는 장례 후에는 밀어닥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제일 먼저 발생하는 문제는 장례 비용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마지막 가시는 길이니 좋은 것만 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에, 또는 정신이 없어서 장례식장에서 얘기하는 대로 알겠다고 하면 장례 절차가 끝나고 날아온 청구서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부의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들도 부지기수더라. 그리고 오늘처럼 가족들은 말한다.'네가 장남이니 상주 네가 직접 해결해...?'


고인분께서 재산이 많아도 문제, 적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 빛만 남아도 문제더란 말이다. 리고 그 문제가 발현되는 곳이 장례식장인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생각해 보면 좋겠다.

장려식장은 고인의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이다.

문제를 문제로, 문제가 문제로 치부되지 않을 수 있도록.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나 자신의 행동을 한번 더 검열하고, 최대한 조심하며 평안한 분위기 안에서 장례절차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내가 사랑한 사람의 마지막 길이 평생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남겨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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