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이 젖은 곳과 젖을 곳으로 이분된다.
습한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
2.
의사는 숲이 처방전이라고 했다. 저는 자작나무 알레르기가 있고 사과 알레르기로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봄은 무리겠지요. 그러면 가을 숲으로 처방전을 바꾸겠습니다. 겨울 숲은 너무 조용하니까.
3.
숲은 가장 완전한 형식의 추모다. 모든 숲은 숨기기 위해 발생한 것만 같다. 구름을 넘기면 다음 페이지에 숲이 펼쳐지는 식이다. 셔우드 숲에는 화살이 숨어 있고 북반구의 숲은 트롤을 숨긴다. 정의는 도대체 숲 어디에 숨어 있을까. 비가 모여서 흐른 후 고이는 곳마다 우듬지가 비쳤다. 곱게 빗은 듯한 미루나무가 함께 걸렸다. 생육의 시간들을 드러내면 안 됩니다. 숲의 완성품은 그늘입니다. 매일 숲은 조금씩 그늘을 키우고 빗소리를 키웁니다.
4.
숲의 입구가 곧 출구는 아닙니다. 어디로든 들어가고 어디로든 나오시면 됩니다. 재선충도 그런 방식으로 방문했습니다. 나오지 않는 법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웅덩이 위로 오래 떠돌던 송홧가루가 지쳐 떠다녔다. 이제부터 조용히 장마를 기다리세요. 지치지 않는 신념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저기, 중력에 순종하지 않는 나무는 평생 자라야 하는 벌을 꿋꿋이 견디고 있습니다. 정의는 숲에서 비로소 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