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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준 Oct 30. 2024

스툴놀이



의자는 서 있다 

단언컨대 의자는 앉지 않는다 

눈이 없으므로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의자는 나무의 주검이다 그러나 어제

마스크를 녹여 만든 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리 없는 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자라는 의자를 만들 수 없으므로

평생 앉지 않았던 나무만이

의자가 될 자격이 있다     

누구도 꿈처럼 될 수 없으므로

의자는 나무의 꿈이 아니다 

의자는 박자를 모르므로 욕망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엉덩이를 욕망하지 않는다

단차 없는 바닥을 욕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의자를 욕망할 뿐이다      

세 명이 지원했고 한 명이 떨어져야 하는 시험, 

다른 의자를 꿈꾸기 때문에 

모두 같은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의자에 톱질하기를 기대하면서     

의자는 척력을 갖지 않는다

자기 몸 이상을 지탱해야 하는 힘은 의자의 숙명이다

다리가 부러진 의자들이 화장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부러진 다리를 감추는 의자들이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의자를 준비하는 어린 나무들이

나이테를 촘촘하게 채우며

창 밖에서 미래를 엿듣고 있다     

의자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자정처럼 검지를 바짝 입에 가져다 대고 

침묵한다 같은 계절에 같은 병을 앓는

아버지가 먼저 늙은 잇몸처럼 주저 앉는다

눈 먼 아버지 저예요 제 다리를 잘라냈더니 

스툴이 되었어요 순서를 바꿔 놀이를 시작해요

드디어 당신의 취향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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