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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준 Oct 30. 2024

죽은 티크나무를 위한 겨울


   

아무것도 깃들지 않기를 바라는 겨울,

입을 열면 마른 목피 냄새가 났다    

 

티크나무는 배를 만들 때 쓰던 나무

식탁에 긴 몸을 눕힌 채 주름진 등을 펴고 있다      

 

죽은 나무를 만지면 안도감이 들어서

침묵도 말이 될 수 있다는 묘한 기시감 때문에

나는 자주 가구를 만지며 말했지.      


렛 잇 비

어둠을 오래 견딘 나무들은

결이 아름답지 못해서

좋은 재료가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 안에서 벌목장의 냄새가 후욱 끼쳤다.  

    

진화론이 옳다면 모든 생명은 

햇볕을 고루 받은 식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침묵이 필요한 시간을 위해 뜨개질이라도 배울 걸 그랬나 봐

양을 죽이지 않고 옷을 얻던 현명한 풍습

죽은 나무는 수액을 흘리지 않아 죄책감이 덜하지만

어쩐지 끊어진 나뭇결은 건강했던 몸을 상상하게 하지

나머지 티크나무는 어느 집에서 어떤 가구로 누워 있을까    

 

습한 여름이 오면 무거워진 가구를 옮겨야겠어

햇빛이 가장 늦게까지 드는 서쪽 창 앞으로

나는 누구보다 죽은 나무를 사랑하는 생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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