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소리를 조용히 흡수한다 얇고 부드러운 습자지처럼.
어젯밤을 다시 필사할까
오늘에는 늘 어제가 묻어나므로
어깨가 굳어온다, 굽은 가지처럼
영화를 보고 싶은 밤이었는데
결국 보다 잠든 건
몇 개의 쇼트였다 알고리즘은 나를
외눈박이로 만들었지만
그 것 역시 내 취향은 아니어서
쪽방 같은 젖꼭지에 손이 간다.
나는 조용한 빈방을 점령한 습도, 무르게 부쳐지는 두부 같은 몸을 뒤척이면 정중하고 내밀하게 열리던 골목, 골목 옆으로 오래 전부터 돋아있던 이끼들, 골목 끝의 초록색 철제 대문, 사자의 얼굴을 본딴 손잡이를 두드려도 아무도 없고 시멘트로 덮은 마당 옆 그늘진 자리에 자라던 무화과, 침묵 같은 흰 즙처럼 끈적거리는 오후, 책장을 천천히 넘기며 끝나지 않길 바라던 동화들, 어둠이 깃들면 외출을 준비하던 여자들, 슬라이스 된 얇은 달을 가리던 옥상 위의 걷지 않은 빨래들, 텅 빈 운동장의 모랫바람, 주먹 만큼 땅을 파고 혼자 굴리던 흠이 있던 구슬들, 그 때도 지금도 가라 앉을 때마다 부르지 못하는 이름 엄마엄마엄마, 금지된 노크, 나는 가라 앉거나 증발되고 있어요.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예요.
어둠 속에서 선명해지는 것은
몸의 감각 뿐, 진실에 닿으면
눈이나 귀 대신 통각이 열린다고 믿는다
정중하게 순서를 지켜 찾아오는 슬픔들
통각에는 알고리즘이 없으므로
오직 촉각만이 뚜렷해지는 밤,
자꾸 아픈 기억이 무성영화로 재생된다
자주 울지 않는 사람은
슬픔에 가 닿는 버튼을 가지고 있다
오래 전 주저앉은 방에 물비린내만 후욱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