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쟁이가 발을 끄는 이유

by 정창준




당신을 들여다 보면 내 얼굴만 보였다

당신을 보고 싶었는데 보이는 건 당신이 비춰주는 것들뿐이었다


가장 우아한 거절의 방식을 당신은 알고 있다

늘 당신의 곁은 맴돌지만 나는 젖지 않아 속지 않아

표면장력의 다른 이름은 척력이 아닐까

당신이 속으로 무성하게 기르는 것들을 바라보며

입구를 허락하지 않는 이유를 내 얼굴에서 찾는다

벌은 아니지만 벌에 가까운 것,

나처럼 가벼운 벌, 벌처럼 가벼운 나


투명한 눈빛과 표정에 이제는 속지 않아

오직 내 얼굴만 비치는 이곳에 누가 나를 놓아두었을까

평생을 자신의 얼굴만 바라보고 맴돌아야 하는 형벌

귀부터 닫아야 합니다 가르쳐 줄래요

견딜 수 없이 무거워지는 법 아니면

별처럼 쿡 박히는 법 저절로 스르르 녹아내리는 법

죄다 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가르쳐 줄래요

일렁거리는 오늘 나는 무를 수도 닳을 수 없어요


자, 오늘도 다시 들려 줄게요.

스윽스윽 흘러간 노래들이 울음을 끌고 오는 소리

슬픔은 발을 끄는 버릇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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