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검지로 천천히 글자를 쓰고 맞추는 장난, 너는 늘 같은 말만 쓰는구나. 이제 새롭게 할 말이 없겠지. 검은 밤처럼 공허한 목소리로 말했지. 내 표정을 묵독해 줘, 이제는 새롭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기로 하자. 손끝으로도. 물론, 입으로도.
내 애인은 속표지처럼 실어증을 앓아서 나의 오독도 이해해 주기를,
평생을 같은 소리로 울어야 하는 새들은 진화할 수 없지. 어둠 속을 응시하는 부엉이 조차 같은 소리로 다른 풍경을 울지. 뜨거운 신경을 타고 들어오는 울음소리를 원해. 차라리 나무처럼 소리 없이 자라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내가 책등처럼 단단해서 묶은 페이지들의 울음을 터지지 않게 움켜쥘 수 있기를,
손끝을 미세하고 떨며 만져보는 백색의 돋을새김, 어차피 보이지 않는다면 백색에 새기지 않아도 될텐데. 어쨌든 나는 어떤 색에도 흔들리지 않아. 그러나 누군가 먼저 만진 사람의 손자국은 느낄 수 있을까. 당신을 읽고 싶어 만지작거리던 책등, 처음보다 닳은 너는 여전히 같은 의미를 가리키고 있는 거니. 적막한 등은 모음을 닮아서 길게 소리를 낼 것 같아.
우리 사이에 생긴 접촉성 피부염이 부디 더 붉고 깊어 손끝으로 만져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