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마다의 내면에 존재하는 고유 영역
미── 이─ 아우, 미─ 이─ 이─ 아우,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앙코르 레퍼토리 〈두 마리 고양이를 위한 유쾌한 듀엣〉을 듣노라면 두 개의 볼우물이 깊게 새겨지는 듯하다. 새끼 고양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한 마리가 토라진다면 나올 법한 고양이 울음이 클라이맥스다. 이 부분에 다다르면 파안대소가 터져 나오기 십상이다. 민망할 필요는 없다. 옆 청중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탄생한 로시니를 두고 말이 많았다. 천재 작곡가가 이 아이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났다고. 심지어 모차르트가 죽지 않았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작업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첫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을 완성했다. 당시 로시니의 나이는 스물하나. 부풀려진 이야기의 원천은 그의 재능이 분명하다. 의성어를 높낮이와 장단을 달리하며 연주하는 성악곡만 들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고양이 등을 쓰다듬는 기분은 이내 나를 고양이로 둔갑시킨다. 나의 언어는 지극히 단조로워진다.
음악 덕분일지도 모른다. 고양이 울음이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은.
배경지식의 틀에서 청력은 자유롭지 못하다. 로시니의 고국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독일, 러시아 등 많은 나라에서 고양이 울음을 ‘미아우’ 또는 이와 유사한 발음으로 표기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우리 집 고양이는 ‘이야옹─’이 아니라 ‘미아우─’하고 내게 말을 건다.
이쯤에서 십 년째 마주하고 있는 동거묘를 소개해야겠다.
이름: 아드리안 고(고 양, 고 여사라는 애칭이 있음)
성별: ♀
나이: 사람 나이로 56세
좋아하는 것: 습식 사료, 치킨 가슴살, 복숭아 과즙, 박스, 창밖 내려다보기, 새 시트 씌운 침대, 마사지, 그리고 고양이 나이로 일곱 살배기 미스터 초이
싫어하는 것: 청소기, 드라이기, 목욕, 발톱 깎기, 낯선 사람
다리까지 부러진 2개월령 길냥이가 골목 세계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해코지당하지 않을 운이 따라주더라고 굶주림은 죽음으로 몰아갈 게 뻔하다. 생존 본능이 작동한 새끼 길냥이는 과감하게 골목을 버리고 마지막 가능성에 몸을 던졌다. 집냥이 생활 진입에 성공하면서 마침내 이름을 얻었다. 그렇게 길냥이 생활을 청산하고 자잘한 경쟁도 없이 서열 1순위로 등극했다. 사람에 길드는 척하면서 실은 사람을 길들이는 고양이는 ‘거실의 사자’로 거듭났다. 그 과정을 아드리안 고(미즈 고)의 시선과 나(미스터 초이)의 시선을 교차시켜서 여기에 담았다.
10년. 고양이에게는 벌써 반평생을 넘긴 세월. 아드리안 고는 말한다. 하나의 존재를 알아가기엔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니라고. 뒤미처 내가 말을 받는다. 20년이 지나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될 거라고.
10년의 동거생활을 ‘배움’으로 바꿔놓고 우리는 깨닫는다. 저마다의 내면에는 자신조차 짐작하지 못한 고유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 상대방의 공간으로는 들어가지 않는 게 예의임을.
4배 빠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대에 발을 내디디며 고양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털 한 올의 경험이 쌓이고 쌓여 존중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저마다의 고유 영역을 다만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일.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이 한 문장 안에 간디의 사상이 농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겠는가. 인류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내려놓으면 동물과 맞물려 살아갈 수 있다. 생명체를 경외하는 마음은 자연스레 약자를 배려하고 기꺼이 더불어 나아가려는 성숙한 사회를 불러올 것이다. 간디를 향한 경애심이 샘솟게 하는 문장을 곱씹는다. 여기에 공감하는 독자라면 이 글이 꽤 흥미로울 것이다.
저 끝에, 문턱이 보이는가. 넘어가 보자, 함께.
아르뛰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