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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Oct 09. 2024

인간 집을 접수하다

─ by Ms. Go




  지하철 타던 날을 명확히 기억해. 단 한 번의 경험이었으니까.     


  아주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지.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아지고 있음을 자각하는 나이에 이르면 어제보다 오래전 하루가 더 선명해지기도 한단다.     


  잠깐 상자 집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많은 손을 만났어. 소문이 퍼졌는지 바통을 주고받듯이 수군거림이 방 안에 스며들었지. 불을 켜지도 않았는데 환해지는 느낌이 들면 상자 구멍 앞을 기웃거렸어. 같은 모양이지만 크기가 다른, 무엇보다 냄새가 다른 손들. 내 작은 머리를 톡톡 두드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순순히 내어주면 안 돼. 낯선 여자 손이 다짜고짜 배를 만지려고 해서 손가락을 콱 물어버렸어. 고약한 고양이라며 성질을 부리고 돌아가고부터는 얼씬도 하지 않더라. 잘 됐지, 뭐. 도도함은 반드시 지켜야 해. 내려놓았다간 자칫 고양이의 자존감을 잃을 수 있어.     


  네 개의 손 냄새를 구분했었지. 내가 사람 나이로 세 살배기였을 땐 말이야. 시간이 손 냄새들을 다 날려버리고 말았어. 그래도 그 냄새의 온도에 대해 조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고양이 체온이 사람보다 2도쯤 높다는 건 알고 있겠지? 딱 그 정도의 차가움이야. 다른 손들과는 달리 함부로 만지려고 하지 않는 조심성. 어깻죽지 아래 손을 덥혀서 내 몸에 가만히 갖다 대는지도 몰랐지. 경계심을 낮추는, 무방비 상태로 이끄는…… 그래, 졸음이야! 그 냄새의 온도는 졸음이었어!     


  건물이 걸음을 흡수하는 소리가 멈추면 저녁이야. 그날도 미세한 진동이 귓바퀴를 끊임없이 맴돌다 사라졌지. 뒤늦게 따라온 적막이 먼저 찾아온 고요를 덮을 무렵, 네 개의 손 냄새가 먼저 코끝에 와 닿았어. 몸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아까 밥 먹으면서 결정한 대로, 넷 중 한 사람은 무조건 한 달 동안 맡는 거다.”     


  “잠깐만요. 엄마만 설득하면 제가 데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화 좀.”     


  무리에서 몇 걸음 떨어진 이십 대 남직원이 평소보다 앳된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어. 아마 뭔가 조를 땐 자신도 모르게 아이 목소리가 되나 봐. 일순 기대를 모으는 분위기.     


  “데려오기만 해! 엄마 집 나갈 거야! 네가 밥하고, 빨래하고, 아빠도 출근시키고, 다 해! 알았어?”     


  수신자 목소리가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어. 엄마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아들의 약속을 믿지 않았지. 나를 돌봐주는 일이 고스란히 자기에게 미뤄질 것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던 거지. 남직원이 또래 여직원을 쳐다봤어. 양어깨를 들어 올리면서.     


  “언니랑 같이 사는데, 언니가 알레르기가 있어요. 하루도 못 버틸걸요.”     


  “내가 데려갈 순 있어. 근데 우리 꿍이가 가만두지 않을 텐데.”     


  꿍이가 누구야? 이름부터가 꿍꿍이가 있을 것 같아 거부감이 생기는걸. 오냐오냐 키운 개라면 내가 먼저 사절할 거야. 새 집사가 머리라도 쓰다듬을라치면 질투심에 눈이 뒤집혀 날 물어버릴지도 모르니까. 태평하게 혀를 차고 있는 남자 쪽으로 여섯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모였어.     


  “나? 말도 안 돼! 나 깔끔한 거 알잖아요? 같이 못 살아요.”     


  여섯 개의 눈동자는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으로 돌변했어. 한참 후 영상으로 다시 만났을 때, 이 눈빛을 연습해 둬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알았지. 머지않은 날에 요긴하게 써먹을 것 같은 예감.     


  “난 처음부터 방관자였잖아요. 그냥 같이 있어 준 것밖에 없는데……. 우리 꽁이를 잘 훈련해 볼까요?”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어. 꽁이가 아니라 꿍이라고 정정해 주지도 않았고. 다만 셋은 합심하여 눈동자에 물기가 비치도록 노력하는 것 같았지. 부러 눈을 감지 않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나도 알겠더라. 혼자 사는 사람은 너밖에 없잖니? 너만 받아들이면 얘는 길거리로 돌아가서 죽지 않아도 되잖아. 까칠한 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임을 알고 있어. 그러니 우리 부탁을 좀 들어줘, 제발.     


  “하긴 꽁이 훈련에 어려움이 따르겠지. 공격성을 평생 잠재울 수도 없을 테고……. 좋은 생각이 났어요! 청소하시는 분 협조를 얻어 건물 뒤편 주차장 쪽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건 어때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셋은 눈물 연기의 달인이 되어갔어. 남자는 일상이 꼬이기 시작한 표정이 되어갔지. 아니, 일생이 꼬이기 시작한.     


  “그럼, 한 달만, 딱 30일만! 뼈가 붙을 때까지만!”     


  그래서 이튿날 그 남자와 함께 난생처음 지하철을 타게 된 거야. 나를 이동장 안에 밀어 넣더니, 땅 아래로 한참을 내려갔지. 이동장이 더 이상 앞뒤로 흔들리지 않았을 때 문이 열리고 손이 들어왔어. 손바닥에 볼을 비벼대면서 나가지 말라고 아양을 떨어야 했지. 틈으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거든.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히기를 수차례, 드디어 그 남자는 일어섰고 걸어갔어. 이제 끝이 났구나 싶었는데 이런, 다른 지하철을 또 타는 거야. 두 눈을 감을 수밖에. 커다란 손을 이불처럼 덮고 있을 수밖에.     


  이윽고 이동장이 바닥에 닿았어. 문이 열리자마자 무작정 달려갔지. 구석의 어둠을 찾아 부리나케.     


  하필 이곳으로 오다니! 여기는 따뜻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잖아! 그렇다고 다시 나갈 수도 없고. 참, 난감했던 기억. 엉덩이를 다 드러내놓고 머리만 숨긴 채 웅크리고 있었지. 하긴 2개월령 새끼 길냥이가 뭘 알았겠어.    


  인간 집 접수하기 계획을 세운 후배 고양이에게 조언 하나 할게.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달려가면 꽤 오랫동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해. 늦장을 부리면서 주변을 잘 살펴봐야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어. 삼일쯤 처박혀 있어야 하니까 아늑한 곳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야. 소파 틈이나 침대 아래가 적당하지. 나처럼 변기 뒤쪽을 공략하면 구안와사가 올 수도 있어.     


  세 개의 냄새는 오래전에 휘발되었어. 이제 온도가 비슷했던 단 하나의 냄새만이 남았지. 각인된 냄새는 지도나 다름없다는 거 알지? 그 냄새를 따라가서 방금도 실컷 핥고 왔어.     


  내가 소리 없이 걸어와서 의자 옆에 앉아 있으면 손이 내려와. 눈치를 채지 못할 땐 옆구리로 종아리를 살짝 건드리기도 해. 머리를 쓰다듬다가 엉덩이를 두어 번 두들기면 손바닥을 핥아도 좋다는 신호야. 대개 오른손을 내어주지. 나머지 손으로는 책장을 넘겨야 하거든. 수고양이처럼 왼손잡이인 줄 알았는데 나처럼 오른손잡이더군. 가끔 밑줄을 그으려고 올라갈 때가 있지만 괜찮아. 금방 다시 내려올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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