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Mr. Choi
수염 끝에 우유 방울이 달려 있다. 치약을 짜듯이 앞발에 침을 묻혀 입가를 닦는다. 얼마간 기운은 차렸지만 배가 덜 찬 눈치다. 정상 운동 범위를 벗어난 왼쪽 뒷다리. 마치 캐리어를 끌고 걸어오는 것 같다. 만만한 구두코에 다가가서 위를 쳐다본다.
눈빛의 언어는 종을 초월한다.
“먹을 만한 거 또 없어요?”
참치 캔 둥근 윗면 손잡이를 일으켜 세웠다. 딸각, 기름 냄새 진원지로 돌격하는 세 개의 다리. 아무래도 한쪽은 부러진 모양이다. 골절의 통증을 넘어서는 굶주림, 주먹 두 개보다 클 것 같지 않은 몸뚱이에 꽤 많은 음식이 들어갔다. 더 먹었다간 다 게우고 몸져누울 수도 있었다. 앙냥냥, 달려드는 주둥이를 막았다.
그때까진 몰랐다. 고양이에게는 유당을 분해하는 소화효소 락테이스가 부족하다는 것을. 우유를 홀짝이는 고양이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인화한 탓에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덥히고 말았다. 몇 모금밖에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던 마음은 어느새 안도의 한숨이 되어 있었다.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며 탈수 증세를 보였다면 도움의 손길이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가 되었을 터다.
게다가 사람이 먹는 참치라니! 고양이 전문 영양사가 있어, 염화나트륨 1일 권장치를 제시한다면 그에 이삼십 배는 족히 초과할 양을 끼니로 내준 거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주워 먹어서 길냥이들이 뚱뚱하다고 오해받는다. 개중에는 뱃살 두둑한 비만 고양이도 있겠지만 태반은 사람이 버린 음식쓰레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뚱뚱한 게 아니다. 부은 거다. 이처럼 무지는 편견과 위험을 불러온다.
어떠한 문제보다 배고픔이 시급했던지 체내 모든 에너지를 소화에 집중한 고양이는 별 탈 없이 졸았다. 우리가 떠안은 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한 채. 여기에서 ‘우리’란 면접심사관처럼 나란히 앉아 고양이 식사 과정을 지켜본 팀원을 말한다.
“팀장님 퇴근하셨어.”
사방에서 요란하게 굴러오는 바퀴 소리가 그치자, 의자가 모였다. 둥그렇게.
“쟤 어떻게 해?”
“다리도 시원찮은 것 같은데.”
“내보내면…… 오래 못 살겠지?”
“맡길 만한 사람 어디 없을까요?”
“전, 좀 어려워…….”
“그것보단 동물병원에 먼저 데려가 보자.”
가장 현실적이고 타당한 의견을 제시한 직원의 가슴에 진두지휘 계급장이 달렸다. 그에게 충성심이 생긴 두 명과 그저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진 내가 그를 따라갔다. 이를 기회로 다른 직원은 퇴근을 서둘렀다.
“2개월쯤 되었네요. ‘키튼 블루’는 점점 옅어지다가 제 색깔을 찾을 거예요.”
“키튼, 블루요?”
진찰용 테이블에 오른 새끼 길냥이는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제 처지도 잊고 바닥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삼십 대 남성 수의사는 안경을 치켜올리고서 넷 중 보호자가 될 확률이 높은 이를 찾으려는지 두리번거렸다. 동시에 한 손으로 고양이 목덜미를 붙잡고 들어 올려 우리 시선 높이에 맞췄다. 그제야 울음소리가 멈췄다.
“아기 눈 보세요. 좀 파랗지요? 고양이가 태어날 땐 다 눈이 파랗습니다. 멜라닌 색소가 부족한 시기거든요. 2개월령부터 색소가 뚜렷해져요. 눈 색깔이 변하기 시작하다 6개월령 즈음하여 완전히 자기 색깔을 찾게 됩니다.”
웅성거림이 잠잠해지자, 수의사는 진찰 내용을 이어 말했다.
“보시다시피 영양상태가 안 좋습니다. 그거야 제대로 먹이면 금방 나아질 테고…… 여기 발 위쪽으로 번지고 있는 곰팡이 피부염이 있군요. 연고 드릴 테니까 수시로 발라주시고…… 그리고 왼쪽 뒷다리는 골절입니다. 엑스레이 찍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뼈가 어긋난 상태입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허벅지 뼈가 부러진 겁니다.”
수의사가 오른 다리를 고정한 채 왼 다리를 날개 펼치듯 벌리자, 고양이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이어서 단단한 물체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조용한 노크처럼 들렸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구석에 사무용품을 쌓아둔 이후 창고 신세로 전락한 공간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기로 했다. 마트에서 구한 상자 두 개로 몸을 숨기기 적당한 어둠을 만들었다. 그 안에 여직원 카디건을 둥글게 개켜 넣었더니 온기가 움트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이부자리 위에 앉자, 평온이 단단해졌다. 밀어 넣은 열쇠를 붙들고 있는 자물쇠처럼 고양이는 그것을 꼭 붙잡고 있었다.
물을 부은 그릇에 사료를 넣고 불렸다. 모래 화장실까지 완성하고 나니 9시였다. 인근 분식집에서 늦은 저녁을 때우면서 해결해야 할 일들을 나열했다.
첫째,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엑스레이 사진은 뼈가 어그러진 상태 그대로 옆면끼리 붙을 확률이 높음을 말하고 있었다. 3센티미터쯤 다리가 짧아지게 될 것이다. 절름발이가 되는 거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절단면이 비교적 깨끗하다는 점. 수술하게 된다면? 작은 몸이 견뎌낼 수 있을까. 감염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었다. 비용도 만만치가 않았다. 얼떨결에 새끼길냥이대책최고위원회(이하 ‘새대위’) 최고위원장 및 최고위원이 된 넷은 만장일치로 수술을 반대했다. 탕탕탕!
둘째, 언제까지 사무실에서 보호할지 기한을 정하는 문제였다. 내주에는 행사가 예정되어 있으므로 윗사람에게 들킬 수 있었다. 떠나는 날을 삼 일 후 토요일까지로 정할 수밖에. 내일과 모레만 조심하면 되었다. 또 해결.
셋째, 사무실 다음 거처를 어디로 정하나? 선뜻 나서서 말하는 이가 없었다. 나를 제외한 셋 중 하나의 집이겠네, 생각하면서 나는 마지막 김밥을 입에 넣었다.
마지막 안건 논의를 미루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