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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Oct 09. 2024

발가락 하나 어디 갔니?

─ by Mr. Choi




       안개가 내린다

       작은 고양이 발 위에.  

   

       조용히 쪼그리고 앉아

       항구와 도시를

       바라다본다.

       그리고 움직이며 간다.    


       ◇ 칼 샌드버그, 「안개」 전문     


  고양이는 안개다. 소리 없이 나타나서 집안을 가득 채운다. 가슴 아래 앞발을 숨기고 무심히 바라본다. 바라보지 않는 척하면서 바라본다. 기묘한 기운에 휩싸여 고개를 돌리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무 소리 내지 않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그 자리를 떠난 후다. 소리 없이 사라져서 텅 빈 공간을 둘러보게 한다. 바라보는 척하면서 바라보지 않는 시선을 쫓게 한다.     


  안개가 걷히고, 작은 고양이가 나타났다. 세안하고 있다. 뷰티스쿨에서 ‘피부 건강의 시작은 세안에서부터’ 특강이라도 들었을까.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마무리한다. 대충 씻는 아이를 두고 고양이 세수한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고양이에게 큰 실례가 아닐 수 없다. 깨어있는 상당 시간을 몸치장에 공들이면서 항상 깔끔한 모습을 유지한다.     


  사람에게 빗이 있다면 고양이에게는 혀가 있다. 혓바닥 전체에 수많은 돌기가 덮고 있는데 캐라틴 성질의 이것을 사상유두라고 부른다. 고양이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이다. 물을 마실 때는 표면적이 넓어져 다량의 물을 흡입할 수 있게 한다. 살점을 발라먹을 때도 안성맞춤이다. 깨끗하게 뼈에서 분리해 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빗질 용도에도 그만이다. 게다가 쇄골이 다른 뼈와 붙지 않아 몸을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다는 강점을 적극 활용하여 온몸 빗질을 도전한다. 안타깝게도 뒷머리 손질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는데, 앞발을 활용하면 문제없다. 앞발에 적당량의 침을 묻혀 쓸어내리면 끝.     


  애정을 과시하기 위해서 혀를 사용하기도 한다. 어미가 새끼 고양이를 씻길 때와 같이 살뜰하게 혀를 놀린다. 내가 누워 있을 때 간혹 눈썹이나 머리칼도 빗겨주려고 덤벼드는데, 놉! 살살 구슬린다. 너도 힘드니까 손에다만 해줘. 사포로 문지르는 느낌이 손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전달된다.     


  고양이와 생활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요가 고급과정을 수석으로 이수한 자의 고난도 자세를 선보이면서 몸 구석구석을 단장하는 까닭이 실은 자신의 냄새를 없애고자 하는 행동이었음을. 똥을 누고 모래로 덮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적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생존 본능이다. 사냥감이 겁먹고 달아나지 않게 하려는 수작이기도 하다. 먹고사는 문제는 사람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잡히지 않고 잡아야 연명할 수 있는 사회.     


  전혀 몰랐다. 발톱이 얼마나 중요한 신체인지를. 발톱을 깎인다는 것은 군인에게 총을 빼앗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짧아진 발톱을 허망하게 쳐다보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첫 발톱 깎기의 경험은 발톱가위 끝이 보이기만 해도 쏜살같이 도망치도록 만들었다. 당시에는 위험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으므로 나는 쫓아가기 바빴다. 제대로 세운 발톱이 팔뚝을 지나가면 피부에 가느다란 생채기가 남았다. 그것은 그대로 문신이 되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요령을 터득했다. 요령이 많아졌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 정도가 상승했음을 말한다. 이제 발톱 깎기는 수건으로 몸 감싸기에 불과한 일이 되었다. 포대기로 아기를 감싸서 안듯이 포박하면 가장 힘든 과정을 마친 셈이다. 순식간에 사지를 결박한 꼴이지만 부드러운 재질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얼마간 포근함도 느낄 수 있어서 몸부림이 잦아든다. 어쩌면 지레 포기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과정, 어르면서 고양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 숨겨놓은 발톱가위를 꺼낸다. 작업 준비 완료.     


  아기를 안은 자세라서 그런지 아기처럼 보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아기 울음도 흉내 낼 수 있다. 절대 응석을 받아주면 안 된다. 지략가인 고양이는 어떻게든 틈을 찾아낼 테니까. 앞발 하나를 뺀다. 사이사이 폭풍칭찬을 쏟아낸다. 우리 고 양, 참 착하네. 발도 잘 빼고 말이야. 발바닥을 누른다. 튀어나온 발톱을 능숙하게 잘라낸다. 발톱이 혈관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너무 바짝 자르지 않도록 조심한다. 다음 앞발. 이따가 우리 참치 먹을까? 그래, 먹자. 이렇게 얌전히 있는데 꼭 먹어야지. 머리 쓰담쓰담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손이 세 개라면 좋을 텐데.     


  이제 뒷발 차례. 더 빨리 끝난다. 발가락이 네 개씩이니까. 머리에서 더 멀리 위치한 부위라서 그런지, 이제 곧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인지 감정 곡선이 요란한 춤사위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꼭 껴안고 있어야 한다. 느슨해지는 찰나를 놓치는 법이 없다. 고양이는.     


  대청소 알림 퍼포먼스를 마쳤으니, 열심히 치우고 닦는다. 청소의 마지막은 보상하기.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깨끗해진 그릇에 참치를 담아준다.      


  고양이를 데려온 첫날, 왼쪽 부러진 뒷발 발가락이 네 개밖에 없음을 눈으로 확인하고서 애처로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떤 자식이! 발가락까지 하나 잃은 줄 알았다. 반대쪽을 살펴보니,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안타까움을 내려놓기까지는 3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더듬더듬 짚으면서 나아가는 고양이 세계.     


  알약을 빻아 물에 타서 주사기에 주입하고 고양이 목구멍에 쏘았다. 뱉을까 봐 꿀꺽 삼킬 때까지 목을 치켜세우고 안은 채 등을 토닥였다. 영락없이 아기 트림시키기였다. 털이 훌러덩 빠져나간 피부염 상처에 연고 바르기는 봉 끝으로 급소를 가격하는 무술 고수처럼 해야 한다. 면봉 끝에 연고를 묻혀 번개 같은 속도로 찍어 바르고 곧바로 낚시 놀이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헝겊 물고기를 잡으려고 정신 팔려있는 동안에는 약 바른 사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 내가 지쳐 나가떨어지면 고양이는 어김없이 환부를 핥아댔다. 놀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약이 깊이 스며들었기에 체력을 끌어모아야 했던 나날.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자문하게 될 즈음, 의심이 싹트더니 걷잡을 수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동물병원 진료를 먼저 제안해서 진두지휘 계급장을 달고 ‘새대위’ 최고위원장 직책을 맡고 있는, 동년배라 사적인 자리에서는 반말하는 관계인 J가 받았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혹시 나만 빼놓고 몰래 셋이 짠 거 아냐?”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암만해도 수상해. 시나리오에 적힌 대로 전개되는 것 같은 느낌이 강렬하게 드는 건 왜일까. 솔직히 말해, 너희들 연극했냐?”     


   뚜─ 뚜─ 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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