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Ms. Go
미리 말해두자면, 미스터 초이랑 안 맞아. 안 맞아도 그렇게 안 맞을 수가 없어. 그렇다고 뾰족한 수 있나? 그럭저럭 딴 데 보며 사는 거지, 뭐.
집에 오면 할 일이 얼마나 많아? 컴퓨터 게임도 눈 빨개질 때까지 해보고. ‘참, 얘는 집에 인터넷 연결한 적이 없지.’ 포테이토 칩 먹으면서 텔레비전 봐도 되잖아 ‘맞다, TV도 십수 년 전에 없앴다고 들었는데.’ 쟤 혹시…… 집에서 할 일 없어서 걸레짝 들고 여기저기 닦아대는 거 아냐?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누울 수 있는 자유를 얻으려고 청소한다고? 내 참 어이가 없어서. 내키면 아무 곳이나 누우면 그만이지. 꼭 그렇게 윤을 내야 할 수 있는 일이냐고? 야, 걸레 내려놓고 이리 와 봐. 나를 따라 해 봐, 요렇게, 철퍼덕!
어느 저녁엔가는 밀대를 사 들고 들어왔더군. 청소포를 끝에 부착해서 수시로 문지르며 다니고 싶었나 봐. 시험 삼아 바닥 일부를 밀어보고 나서 밀대 바닥에 달라붙은 먼지를 접안렌즈에 눈을 갖다 대듯이 관찰하더니, 감탄하는 눈치야. 청소도구를 방에 놔두면 보기 흉하다고 다용도실에 꼭 넣어두면서도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밀고 다녀. 쟤를 누가 말려. 평생 저렇게 살아야지.
“성장기엔 뼈도 쉽게 붙죠. 한쪽 다리가 짧아 점프력은 그다지 좋지 않겠지만 걷거나 일상생활에는 별문제 없을 겁니다.”
남자의 집을 접수하고 그 근처로 동물병원을 옮겼지. 세 번째 방문하던 날이었나, 수의사의 설명을 듣고는 신입 집사의 입가에 웃음이 걸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어. 내가 나아서 좋은가 보다 했지, 처음엔. 속내도 모르고.
병원 문을 나서고 집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3분. 제법 익숙해진 길이라 긴장감도 풀리고, 이동장의 흔들림도 자장가 같고 해서 나쁘지 않았어.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웅, 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어. 불길함이 내 발 위에 내려앉는 기분. 그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더 불안했지.
8월 날씨가 추울 리도 없고, 쟤는 늘 찬물로 샤워하는데 대체, 왜, 보일러 작동 버튼을 누른 걸까. 왜 플라스틱 대야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찬물을 부었다 조절하는 걸까. 보글보글 거품을 만드는 것을 엿보면서 물장난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게 결정적인 실수였지.
“목욕하자.”
목욕, 그게 뭐야? 그 끔찍한 낱말을 그땐 몰랐지. 전혀! 재밌는 놀이인가 싶어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니까. 쟤 목소리가 갑자기 상냥하게 들린 점을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보기 좋게 걸려들고 만 거지. 목욕이란 게 대체 뭐냐고 머리를 들이밀었으니 나도 할 말 없지, 뭐.
체득한 지식은 잊기 어렵다는 것을 배운 날이었어, 그날은. 뭐라도 붙잡고 있어야 했지. 발가락만 꼼짝해도 물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았거든. 두 앞발로 대야 끝을 꼭 붙들고 있을밖에. 배를 찰랑찰랑 쳐대는 물살도 무섭긴 매한가지. 얼굴을 제외한 모든 몸에 거품이 일었을 땐 이러다 내가 기절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 샤워기를 들이댈 땐 차라리 진작 기절하지 못한 것을 후회해야 했어.
수건을 펼치는 사이를 놓치지 않고 냅다 도망쳤어. 바닥에 찍히는 내 발자국이 신기해서 멈칫하다 붙잡힐 뻔했지만 사람 순발력보다는 한 수 위였지, 내가. 그런데 어이없게도 금방 들키고 말았어. 어두컴컴한 옷 사이에 숨었다는 걸 어떻게 알아냈을까.
수건을 깐 바닥에 착지했을 때 이제야 살았구나, 숨을 몰아쉴 수 있었지. 물기를 털어내고 도망가려는데 난데없이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어. 무시무시한 굉음도 따라왔어. 이제 울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어서 모든 게 지나가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아무 데나 쓰러져 자고 있었던 것 같아. 일어나 보니까 폭풍이 지나간 후였어. 털은 뽀송뽀송해졌을지 몰라도 마음은 누더기가 되어 있었지. 급하게 찾아온 허기를 달래려고 밥그릇으로 갔는데, 글쎄 사료 한 알도 없더라. 쟤도 피곤한지 낮잠을 자고 있네. 새끼발가락이라도 온 힘을 다해 깨물어야 속이 풀릴 텐데, 침대 오르기부터가 장벽이었어. 물로 배를 채우면서 있는 힘껏 째려보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했지. 이마가 뜨끔거리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쟤 옆얼굴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까 보인다, 보여. 머릿속 꿍꿍이가. 다음 목욕에서는 어떤 방법을 동원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를 이미 진행하고 있구나! 괘씸한 녀석! 우리 집고양이의 조상인 리비아살쾡이는 사막에 살았대. 사하라사막 알지? 거기에 물이 흔할 것 같니? 마실 물도 부족한 마당에 무슨 목욕?
참 안 맞지만 그래도 봐줄 만한 구석은 있어. 어느 날은 도서관에서 고양이 관련 책을 잔뜩 빌려와서 쌓아두고 읽더라고. 때때로 읽은 책 내용을 소리 내어 들려주기도 해. 그럴 땐 귀엽기도 해. 나도 알아야 한다고 우기지만 실은 이렇게 지식을 전달하는 연습을 통해 더 오래 기억하려는 수작이야.
“고양이는 대부분 털 손질 전문가래. 목욕할 필요가 없다는데?”
“미, 미아, 우- 미아 우-(멍청이, 이제야 알았니?)”
“그래도 넌 때때로 시켜줘야겠지?”
“미우, 미웅─(이게 무슨 개 같은 논리야?)”
“넌, ‘대부분’이 아닐 수 있잖아.”
아마 쟤는 고양이 혈압 높이기 대회 챔피언 출신이 틀림없어. 뒷목을 잡고 쓰러질 즈음, 수의사의 조언이 간신히 잡아주었지. 나 같은 코리안숏헤어는 굳이 목욕이 필요 없다고. 내겐 침이 비누와 같아서 그루밍만으로 충분하다고. 그러니까 대부분에 속하지 않는 경우는 장모종이었던 거지. 그래서? 단 한 번의 목욕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해피엔딩.
책아, 다 네 덕분이야. 수의사가 막판에 거들어 주긴 했지만, 저 애의 눈빛을 흔들리게 한 것은 바로 너잖아. 너한테 고맙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