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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Oct 10. 2024

나는야 야간 가사 도우미

─ by Mr. Choi




       마루 위에

       꽃이 걸어간 발자국   

  

       비에 젖은 고양이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어요   

  

       ◇ 김은영, 「고양이 발자국」 부분     


  물을 뚝뚝 흘리며 도망치는 새끼 고양이를 발자국이 추격했다. 꽃으로 찍은 도장은 근소한 차이로 놓치기만 했지만, 도망자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알려줬다. 한여름이라도 감기 걸리면 새끼에겐 치명적이다. 폐렴으로 악화할 수 있으니 어서 말려줘야 한다. 몸에 달라붙어 있던 털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털살을 찌우면서 제 몸 크기를 되찾았다. 첫날보다 300그램쯤 늘지 않았을까 싶다.     


  일 개월이 지나고 있다. 언제 다리뼈 부러진 적 있었냐는 듯 뛰어다닌다. 뒤뚱거리던 걸음이 조금씩 날렵해진다. 앞쪽으로 뻗은 앞다리와 뒤쪽으로 뻗은 뒷다리가 완벽한 수평을 이룬다. 중력을 거스르는 체공의 시간. 그랑주떼를 혼자서 연습하고 있구나. 어릴 땐 꿈이 만날 바뀐다더니, 오늘의 장래 희망은 발레리나니?     


  내가 조지 발라신이 아니라서 미안하다. 길냥이 무르카는 전설적인 발레리노의 눈에 띄어 함께 살면서 다양한 발레를 배웠다는데, 너는 레슨 한번 받지 못하고 그 어려운 동작을 독학으로 해내고 말았구나. 뒷다리 한쪽이 짧아서 균형감이 살짝 엇박자이긴 해도 이 정도 실력이면 발레단 입단해서 조만간 ‘코르 드 발레’로 승급할 수 있겠구나.     


  일 개월이 지났다. 정확하게는 만 30일 하고도 54초. 30일 전, 오후 2시 30분 전후로 고양이가 내 집에 왔다. 30분을 기준으로 삼으면 이제 30일 하고도 1분 07초. 누구 하나 연락이 없다.     


  나 혼자만 기억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수도 있겠다. ‘새대위’ 최고위원장을 비롯한 최고위원들은 그저 일상의 쳇바퀴를 열심히 굴리고 있었을 뿐, 고양이의 다음 거처에 대한 회의를 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정 떼기 힘들어지기 전에 어서 좋은 곳으로 입양시켜야 하는데 나만 조급했던 모양이다.     

  최고위원장을 청문회에 소환했다.     


  “어떡해?(최고위원장은 직무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데 어떻게 하냐?(책임을 통감합니다. 즉시 옷을 벗겠습니다.)”     


  “알아보긴 했구나. 생각 좀 더 해봐. 발 넓잖아.(그렇다고 옷을 벗으면 어떡합니까. 진정하시고…… 적극 협조할 테니 이 문제를 어떻게 좀…….)”     


  “정 힘들면 길바닥에 내놓는 방법밖에 없겠네.(이렇게 겁박부터 하고 나서 지원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몸이 얼어붙었다. 소환당한 최고위원장은 이참에 쐐기를 박아야겠다고 판단했는지 뜸을 들이고 덧붙여 말했다.    

 

  “네가 직접.”     


  내가, 할 수 있을까. 눈 꼭 감으면 할 수 있는 일일까. 문밖으로 밀어내기도 힘이 들 게 뻔했다. 그렇다면 스스로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나. 고양이를 현관에 앉혀두고 말하면 될까. 한 달 동안 뼈도 잘 붙고 살도 제법 붙어서 다행이다. 이 집에서 불편한 점 많았을 텐데 잘 참았네. 네가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는 걸 알아. 그래, 이제 내 길을 찾도록 해.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저 밖엔 가능성이 넘쳐난단다. 전출 고양이가 버린 보금자리를 운 좋게 꿰찰 수도 있어. 거길 중심으로 영역을 넓혀나가는 거지. 사냥하는 쾌감도 만끽할 수 있단다. 어때, 신나지 않니?     


  현관문을 열었다. 충분히 시간을 주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꼼짝하지 않았다. 마치 챙길 짐이 있다는 듯이 방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만 나가면 된단다. 너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왔잖니. 아무리 타일러도 알아듣지 못했다. 고개를 돌려 방향을 일러주고 두 눈 감은 채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투명 문에 부딪혀 더 이상의 전진은 불가능함을 몸짓으로 보여줬다. 두 앞발을 벌서는 아이처럼 들고 버텼다. 고양이 탈을 쓰고 마임을 하려는 배우 같기도 했다.     


  몸이 얼어붙은 거다. 하루 전 나처럼.     


  고양이 사회화 시기는 생후 8주에서 12주 사이라고 한다. 꼬물꼬물 움직이다가 자기 몸에 대해 알게 되고 환경이 제공하는 자극에 반응하면서 관계를 형성한다. 이 결정적인 시기에 많은 사람과 주기적으로 접촉하면 평생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 확률이 높다. 만약 단 한 사람하고만 지내게 된다면?     


   여긴 이미 너의 집이었던 거다. 네 영역이었던 거다. 나는 네 환경의 유일한 관계망. 그럼 내 집은 어디에?     

  집이 사라졌다. 더 힘껏 등을 떠밀지 못하여 내 집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부정을 해봐도 얹혀사는 쪽은 이제 나였다. 9년이 지난 지금도 겨우 방 한 칸 임차한 세입자이자 가정 도우미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7시 출근 아닌가? 자네, 또 늦었군 그래.”     


  “죄송합니다, 사모님. 버스가 막혀서…….”     


  “사람이 좀 창의적인 구석이 있어야지. 변명 좀 새로운 걸로 바꿔 보게. 이렇게 사람 부리기가 어려워서야, 원. 쯧쯧.”     


  그 무렵부터 직장에서 집으로 출근했다. 러시아워라는 장애물을 쉽게 넘지 못하여 저녁 7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불편한 기색을 굳이 감추지 않는 집주인이자 사모님은 소리를 내지 않고 혀를 차는 버릇이 생겼다. 늘 화장실부터 깨끗이 치우라고 지시했다. 감자(소변이 고양이 전용 모래에 굳은 덩어리) 세 알과 맛동산(대변에 고양이 전용 모래가 다닥다닥 달라붙은 형태)을 캐서 봉지에 담았다.     


  “대단하시네요, 이렇게나 굵은 것을! 그것도 네 개씩이나!”     


  “큰일을 했더니 시장하구먼. 신선한 사료하고 적당하게 차가운 물 좀 내오게.”     


  기분이 좋아진 집주인은 꼬리를 치켜세웠다. 식사 후 지칠 때까지 놀이 상대를 하다가 하품을 해대면 고용주가 바로 누울 수 있도록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내 집이라 생각하고, 먼지 한 톨 나오지 않게 구석구석, 알겠나?”     


  노는 꼴을 못 보는 집주인은 내가 없는 동안 체계적으로 어질러놓았다. 펼칠 마음도 없으면서 왜 자꾸 책을 빼서 내팽개쳐 놓느냐고. 사지도 않을 물건을 잔뜩 카트에 담아 온 손님이 카운터에서 전화받는 척하며 내빼는 상황과 흡사했다. 미소를 잃지 않는 점원이 되어 책 정리를 한다. 얇은 책을 끼웠다 빼내다 하면서 책장 밀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사료는 여기저기 흘려 놓았다.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릇 밖으로 떨어진 사료를 주워 먹을 법도 한데,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배가 차면 귀족 부인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집안일을 시키고 침소에 들었다. 내 집이라 생각하고, 다음에 ‘편히 쉬게’가 이어질 수도 있음을 세월은 아직 가르쳐주지 않았나 보다. 내준 방 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면 퇴근 준비해야 할 차례. 오래전에 기침한 집주인을 살뜰히 봐 드리고 서둘러 나갈라치면, 현관에서 도끼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출근은 10분 늦게, 퇴근은 10분 일찍. 자네 시계는 이상하네, 그려. 눈으로 질책하고 있었다.     


  야간 가사 도우미 생활 10년째. 사람 나이로 서너 살에 불과했던 집주인이 어느새 반백을 넘겨 예순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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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사람은 온갖 이유로 감정을 숨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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