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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Oct 14. 2024

명의 소설가

─ by Ms. Go




  돌도 씹어 먹을 시기에 진입한 것 같아. 배가 차서 돌아서면 그새 쑥 내려가서 다시 먹게 돼. 털도 어제보다 더 빵빵해졌어. 곰이 옆에 있다면 쟤도 나처럼 겨울잠을 자나 보다, 월동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구나, 하고 오해할지도 모르겠어. 정신없이 밥을 먹다가 무심코 올려다보면 어김없이 잔소리꾼이 등장해 있지. 포만감은 늦게 찾아오니까 천천히 먹어야 해! 너, 그러다 뚱냥이 된다! 무릎 관절 빨리 닳아서 걷지도 못하면 어쩌려고! 날마다 수위를 높여가지만 소용없어. 무뎌지는 속도가 더 빠르니까.     


  배가 부글부글. 급하게 먹어서 그런가. 엉덩이를 모래에 갖다 대자마자 설사가 쏟아졌어. 비워내니까 다시 채워야 하잖아. 별수 있나, 바로 먹을 수밖에. 다시 배가 부글부글. 다시 화장실로 직행. 이렇게 세 번 반복하니까 체력이 고갈되더라고. 널브러져 있을 수밖에. 집에 들어온 미스터 초이가 뒷수습을 해줬지. 웬일로 군소리 없이.  

   

  유통기한 넉넉히 남아 있어도 사료가 상할 수 있다며 새 사료로 바꿔줬어. 한꺼번에 많이 먹지 못하도록 양을 조절하기까지 했어. 그러나 이튿날 저녁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지. 샤워기로 내 엉덩이를 닦아주면서 어제의 얼굴에서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워내고 병원에 전화하더군. 병원 가기 싫다고 떼쓸 수가 없었어. 그것도 기운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야.     


  목덜미에 주사 한 대 맞은 효과는 그때뿐이었어. 다시 처음부터 되풀이. 배가 고파서 먹게 되고 배가 아파서 비우게 되고의 반복. 사이사이 병원에서 주사 맞고 약 먹고…….     


  매주 토요일 오전, 빠뜨리지 않는 일과가 있어. 미스터 초이가 나를 안고 체중계에 오르는 일은 의식을 치르는 것 같이 절도가 있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2회의 중간값을 계산하고, 여기에 같은 방식으로 측정한 자신의 체중을 감산하는 과정. 그 결과를 탁상달력에 기록하는데 요즘 들어 한숨을 자주 쉬곤 했지. 결과치가 상승 곡선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으니까. 이번엔 그 의미가 달랐어. 1.2kg이나 빠졌으니 놀랄 만도 했지. 사람 체중으로 환산하면 15kg쯤 빠진 셈이야. 들어오는 대로 다 나가버려서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느껴졌어. 내가 봐도 몰라보게 수척해졌어.     


  병원에서도 딱히 원인을 찾지 못하는 눈치야. 진료 테이블 위에서 얌전한 편이 아니었지만, 저항은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 영양제까지 놔주면서 매번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수의사의 목소리가 슬슬 지겨워졌지. 조만간 다른 병원으로 옮기거나 입원하게 될지도 몰라. 그러기 전에 내가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당최 내 몸 같지 않아서 내 몸을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단 생각까지 이르게 될 즈음, 미스터 초이가 내 앞에 앉더군.  

   

  “고 양아, 아프지? 반쪽이 됐네.”     


  무릎 위로 나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더니, 결심한 듯 말을 이었어.     


  “단순한 설사는 아닌 것 같아. 원인은 모르겠지만 속이 제대로 탈이 난 것은 분명해. 멀리 큰 병원에 가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치료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어젯밤 문득 떠오른 방법이 있는데,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어. 좋아하는 작가를 믿어보기로 한 거지.”     


  의사가 아니고 작가? 슈바이처 같은 사람이냐고 눈빛으로 물었어.     


  “의사가 아니라고 놀라지 말고, 잘 들어봐. 소설 속에서 엄마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 곡기를 끊고 스스로 앓아누웠대. 삼사일 그렇게 보내고 나면 씻은 듯이 나아서 잘 먹고 잘 싸면서 지낼 수 있었대. 거짓부렁이라고? 생각해 봐, 컴퓨터도 재부팅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해결되는 경우가…… 이런, 너한테 컴퓨터라니, 아무튼 날 믿고 따라와 줄래?”     


  미스터 초이의 오른손이 내 뒷덜미를 살짝 쥐고 고개를 끄덕이게 했지.     


  알고 보니, 미스터 초이는 그 어렵다는 담배를 끊은 작자였어. 말로만 듣던 독종이었음을 왜 여태 몰랐을까.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하고 말지. 3일 동안, 하루 3회 물만 새로 갈아주고 끝. 얕은 날숨으로 측은지심을 겨우 모은 나한테 돌아오는 것은 지독히도 차가운 말 한마디. “참아!”     


  수술 전날 빼고 지금껏 끼니를 놓친 적 단 한 번도 없었어. 심지어 설사가 멈추지 않아도 때가 되면 먹었지. 굶주림이 이리도 끔찍한 고통이었다니! 허리가 끊기는 것 같은 통증임을 새삼 깨달으면서 물로 배를 채웠지. 뱃속에는 물 흐르는 소리만 드문드문 들렸어. 신기하게도 설사는 멈추지 않더라. 누런 물이 나오다가 막판에는 맑은 오줌 같아졌어. 9년쯤 후에 대장 내시경 검사를 앞둔 전날, 물약을 들이켜고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릴 미스터 초이는 9년 전의 나를 떠올리게 될 거야.     


  비워낼 수 있는 것을 다 비워내고 더없이 가벼워진 몸에게 죽음보다 72시간 이후가 먼저 찾아왔어. 물이 아닌 것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견뎌왔는데, 내 앞에 놓은 그릇에는 밥알 몇 알 떠 있는, 멀건 미음이었어. 정확하게는 밥알 대신 서너 배 불린 사료였지만. 3일 굶어본 고양이는 알 거야. 물에 만 밥도 진수성찬임을.   


  가느다랬지만 샛노란 똥을 눈 것을 보여주고 나서야 건식 사료를 먹을 수 있었어. 양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불평할 수 없었지. 살이 다시 붙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시들해졌던 사냥 놀이에 관심을 보였더니 반색하더라고. 하지만 아직은 회복기라고, 매사 조심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어.     


  몸이 멀쩡해지니까 양껏 못 먹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씽씽 달리는 모습을 보여줘도 그때뿐, 최종 치유 판정은 보류 상태야. 어떻게 하면 예전처럼 자유급식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지.     


  그래, 찰스 디킨스! 언젠가 흥미롭다며 미스터 초이가 내게 읽어준 책 내용이 기억났어. 책을 눈알 빠져라 읽는 독서광이자 작가 집사의 눈길 한번 받아보겠다고 촛불을 꺼버린 고양이의 이름은 ‘주인의 고양이’야.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 하인들이 그렇게 불렀대. 서재가 갑자기 캄캄해져서 반사적으로 촛불을 켠 찰스. 눈앞에 고양이가 보여서 쓰담쓰담하고 다시 열독 모드. 바람이 불지도, 창문을 열어놓지도 않았는데 촛불이 또 꺼져서 이상했으나 다시 켤 수밖에. 그때야 눈에 들어왔대. 촛불을 끄려고 앞발을 들고 있는 고양이가. 어쩔 도리 있나, 이렇게나 명석하고 귀여운 아이와 놀아줘야지. 책은 밀쳐두고 말이야.     


  안타깝게도 이 집엔 촛불이 없어. 전등 스위치 위치가 내겐 너무 높고. 알고 있지? 내 한쪽 뒷다리가 짧은 거. 직진 방법이 최선이라는 뜻이지. 책장을 타고 올라가서 책상에 도착, 독서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서 맞은편 얼굴을 쳐다봤어. 책을 쳐다보고 있는 미스터 초이처럼. 말한 적 있지? 내 피엔 인디언의 끈질김이 흐른다고. 나를 쳐다볼 때까지 상대방을 쳐다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아. 애써 외면하려는 자와의 대결이라면 더욱더.     


  “고 양, 드디어 다 나았나 보네. 독서 방해꾼으로 복귀한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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