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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Oct 13. 2024

자전거 산책, 어때?

─ by Mr. Choi




  묵직한 엉덩이를 들썩이기만 하고 좀처럼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손님이다, 여름은. 9월마저 일어서려고 하자 더 이상 늦장 부리기가 눈치 보였는지 자리를 내주었다. 기온이 내려가는 만큼 세상이 파래졌다.     


  가을이 왔음을 ‘털시계가’ 먼저 알려준다. 에어컨 전원 버튼에 손을 떼지 못하다가 고양이 털이 적게 빠지는 게 확연해지면 조만간 필터 청소를 해야 한다. 비 소식이 있는 여름 끝자락에 가을무를 파종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연의 흐름을 몸이 읽어내고 털을 찌우는 것이다. 겨울을 나기 위한 과정은 늦봄부터다. 새 옷을 입으려면 헌 옷을 버려야 하는 법, 동물은 한꺼번에 벗을 수 없으니까 털갈이 시기를 따로 두는 거다. 거듭 말하자면 상승하는 기온에 비례하여 털이 뭉텅뭉텅 빠진다는 것이다. 치우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빠져 있다. 이에 무신경해지지 않으면 다른 일을 하지 못할 지경이 된다. 오죽했으면 고양이를 가모기로 비유했을까 싶다. 가습기처럼 허옇게 품어대는 수준은 아니라서 그나마 감사하다.     


  체내 에너지 90% 이상이 모근에 집중되는 게 아닐까, 심히 의심된다. 4kg의 고양이 털 개수는 5천만 개쯤이란다. 피부 표면적 대비 털 밀도를 매일 내 손바닥으로 확인한다. 한 올의 털은 나약하기 그지없지만 빼곡하게 들어찬 ‘털군대’의 열병식장을 위에서 누르면 부드럽게 밀어 올리는 힘을 감지할 수 있다.     


  수술 자국은 물론 수술 준비를 위해 밀어낸 자리도 다시 점령해 버린 털. 고백건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뀌었다. 눈부신 하늘보다 고 양의 털이 덜 빠짐에 미소 짓게 된다.     


  털을 찌워 체중이 족히 1킬로그램은 더 나갈 것 같은 모습으로 변모해 가는 계절, 하늘은 여전히 높푸르기로 작심하고 있었다. 서둘러 꽃물을 끌어올린 식물들은 앞다투어 피고 졌다. 이 변화무쌍함을 고 양도 좋아할지도 몰랐다. 요즘 들어, 박치기(head bunting) 하는 까닭이 이 때문일까. 종아리에 볼을 비비적거리며 친밀감을 표시하는 행동이 다소 저돌적으로 바뀌었다. 신뢰하는 상대에게 하는 행동 언어라지만 박치기에는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계절을 바꾸는 바람을 나만 맞는 게 미안했다. 어떻게 하면 이 바람결에 실린 마법을 느끼게 할까. 언덕 풀이 일제히 누웠다가 일어나는 것과 같이 고 양이 모든 털로 바람을 안았으면 했다. 여름과 달리 가을은 미적거리는 일이 없다. 묘책을 어서 강구해야 했다.     


  현관 밖은 영역 밖이었으므로 함께 걷기는 불가능. 이동장 이용하기도 썩 좋은 방법이 아니다. 고 양의 부쩍 늘어난 체중을 아직은 내 팔이 감당할 수 있겠지만 장시간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빠끔히 열린 지퍼 틈으로 가을을 만끽할 수 있도록 백팩을 가마로 삼을까. 앞으로 매고 걸어 다니면 고 양에게 산책하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유사한 자전거 앞 바구니에 태우고 씽씽 달리는 방법이 더 좋을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나가는 개가 컹컹 짖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곳이 어디든 무작정 뛰어내려 도망갈 테니까.


  열거한 방법들의 단점을 지우고 교차시켰더니 그럴듯한 한 가지가 건져졌다. 이동장을 자전거 뒷자리에 밧줄로 고정한다면 고 양의 가을 산책이 실현될 수 있겠다. 페달 돌리는 속도가 바람의 세기와 상쾌함의 질을 결정할 테니 최대한 느긋하게 밟아야겠지. 저물녘 한기에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 무릎담요를 미리 깔아줘야겠다. 오랜만의 외출을 오래 즐기고 싶어 하지 않을까. 가만있자, 물병도 챙겼고 간식도 챙겼고 물티슈는 여기에 있고…… 쉬 마렵다고 하면 어쩌지? 그렇다고 화장실까지 들고 갈 순 없는데. 나는 어린애 딸린 엄마가 되어갔다. 기저귀 가방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다.     


  자, 출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어 최고의 승차감을 선사했다. 급정거하는 일도 없었고 방향을 바꿀 때도 몸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완벽한 코너링을 실현했다. 그렇게 극진히 살펴줬는데 넌, 대체 왜, 울고 있는 거니? 좀 달리면 나아지겠지 싶었으나 막무가내였다. “새끼 고양이 유괴해서 달아나는 거 아냐?” 행인의 수군거림이 뒤따라오는 것 같았다. 안 되겠다. 대모님 집에서 좀 쉬었다 가자.      


  인사시키려고 했더니 꼼짝을 하지 않았다. 울음은 그쳐서 그나마 다행. 여하튼 조용해졌다. 안심하고 아드리안 고의 대모님과 차를 마셨다. 내 신상에 문제가 생기거나 특별한 일정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 차순위 양육권자를 정해두었다. 내 생떼에 억지춘향이가 되어야 하는 선택지밖에 없었지만 한 여사는 거부하지 않았다.


  낯선 공간에 가득한 공포와의 대면을 참아낼 수 없었나 보다. 기회를 노리다 냅다 베란다로 뛰어가는, 한 여사의 대녀 아드리안 고. 다행스럽게도 그곳엔 다른 출구가 없었다. 들어간 통로로 다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대화를 마저 나누면서 틈틈이 집에 가자고 불렀으나 묵묵부답. 참나, 밖에서 너무 울어대서 안으로 왔는데 이제는 전혀 안 울어서 밖으로 나가야 할 판이다.     


  거대한 상자 형태의 베란다에는 캠핑용품과 생활용품이 마구잡이로 섞여 적재되어 있었다. 제 몸을 구겨 넣을 수 있는 틈이 산재해 있었다. 간식으로 유인할 수 있길 바라며, 스틱 끝을 뜯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달려왔어도 진작 와서 혀를 날름거렸을 시간이 흘렀다.     


  “고 양아, 빨리 집에 가자, 응?”    

 

  “아드리안 아니야?”     


  “집에서는 애칭으로 불러요. 그나저나 얘, 여기서 살아야겠네. 대모님 집이 좋은가 보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한 여사가 베란다 짐을 반대쪽으로 척척 옮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엄청난 속도를 뽐내면서. 반쯤 작업했을까, 흔들림이 불안함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견딜 수 없었던 고 양이 튀어나왔다. 알아서 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유일하게 자신의 냄새가 장악하고 있는 영역이었으므로.     


  처음이자 마지막 산책은 어두컴컴했던 귀갓길, 쌀쌀한 바람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가을하늘과 그 아래에서 채도 높은 파랑에 어울리는 무엇이 되려고 기를 쓰는 것들의 풍경을, 저마다의 색깔들을 흔들어 얼마간 섞이도록 유도하는 바람을 고양이의 시간에 담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집 밖은 위험하다는 메시지만 강화한 꼴이 되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였다 하더라도 대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벌인 생각과 행동은 배려가 아님을 잊지 말라고 고 양은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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