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Ms. Go
이튿날부터 밥도 먹고 걸어 다니긴 했어. 종일 누워 있자니, 온몸에 쥐가 난 기분이었거든. 감각을 잃어가는 느낌마저 희미해져서 무섭기도 했지. 핫팩을 끼고 있는 것처럼 배가 홧홧하고 당겨왔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했어. 삼일쯤 지나고부터 간지러워 미치겠더라고. 혀로 핥아대면 금방 시원할 텐데, 거대한 드레싱 붕대가 가로막고 있었지.
가장 무서운 게 감염이래. 아무리 수술을 잘 끝냈어도 감염되면 말짱 헛일이래. 배를 다시 열 수도 있대. 그래서인지 병원에서 소독하고 붕대를 감을 때 꽉꽉 조이더라. 간지럽고 답답해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야. 붕대 벨트를 간신히 조금 내려 할짝거릴라치면 미스터 초이가 눈알을 부라리고 달려와. 가슴 밑까지 꼼꼼하게 올려놓고 가곤 해서 환장하겠어. 나랑 같이 살더니 시야가 넓어졌나? 고양이 시야는 285도, 고개만 살짝 돌려도 다 볼 수 있는데, 마치 나처럼 뒤통수로 쳐다보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
붕대 벨트를 내리고 올리는 실랑이를 일주일쯤 했으려나? 드디어 미스터 초이가 백기를 들더군! 아무래도 내 피에는 인디언의 끈질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아.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잖아. 왜냐고? 비가 내릴 때까지 멈추지 않으니까.
그런데 나가떨어진 패자가 왜 웃고 있는 걸까? 붕대를 골반에 걸치고 있어도 반응이 시원찮으니까 무료하기까지 하네. 간지럽던 배가 안 간지럽고. 뛰어오르기는 아직 무리지만 걸어 다니는 정도는 문제없어졌어. 시간이 약이라더니, 정말 약발이 있긴 하네. 이럴 때 상자 하나 있으면 딱 좋은데 말이야.
이심전심으로 알았을까, 미스터 초이가 사발면 상자 하나 들고 왔어. 내용물을 정리한 다음 빈 상자를 문밖에서 탁탁 털고 물티슈로 박박 닦아서 내 앞에 대령하더라. 눈이 휘둥그레졌어. 딱 내가 좋아하는 크기야. 감사의 의미로 종아리에 볼을 비비적대고 와서 바로 승선했지. 그야말로 한 척의 배였거든. 그냥 이렇게,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좀처럼 질리지 않았어. 내 몸이 차지하지 않은 나머지 공간을 안도감으로 채울 수 있었지. 사방이 막혀 있다는 게, 그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게 마냥 좋아서 그르릉 그르릉, 골골송을 한참 동안 불렀어.
골골송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턱 아래에서 진동이 감지되긴 하지만 진원지가 분명하진 않아. 성대다, 횡격막이다, 심지어 혈류 조절로 인한 혈관의 공명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웠을 뿐이래.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네. 그래서 신비함이 더하는 노래가 되었지.
고양이가 떨림의 언어로 처음 소통하는 존재는 바로 엄마. “자고 있어, 곁이니까”, “엄마 곁이니까 절로 눈이 감겨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게 돼요”, 대략 이런 장면? 포근한 시간뿐만 아니라 몸이 안 좋을 때도 부른대. 자기 자신을 달래려고, 치유하려고.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픈 부위가 개선된다고 해. 골밀도도 높아지고 심장박동수도 안정을 찾는대. 진동으로 몸을 치료하는 셈이지. 상자 안에서 부른다면야 한 단어로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평온’이야.
고양이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벌써 내 매력에 빠져들고 있니? 암, 그럴 수 있어.
부족하지 않은 밥과 간식이 날마다 제공되어도 고양이의 사냥 본능을 잠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 누가 가르쳐주거나 시키지 않아도 항상 발톱을 날카롭게 다듬게 돼. 스크래처를 따로 마련해주지 않으면 의자나 테이블 등 익숙한 가구에 발톱을 박고 긁어대기 십상이지. 이렇게 틈날 때마다 갈아놓아야 제때 무기를 활용할 수 있지 않겠어?
사냥은 아주 중요한 거야. 먹고사는 문제보다 우선순위가 있을까. 야행성으로 진화한 까닭도 그래. 사냥감이 시력에 의지하지 못하는 어스름해질 무렵, 그때 급습해야 성공률이 높아질 거 아냐. 움직임이 둔해지니까. 우리의 정체 시력은 노인 수준이지만 동체 시력은 미동도 놓치지 않지.
결정적으로 고양이는 어두컴컴해도 잘 볼 수 있어. 눈 안의 반사판에서 빛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지. 한밤중에 두 눈 밝힌 고양이와 마주쳐도 무서워하지 마. 귀신을 본 것처럼 비명을 질러대면 우리도 덩달아 놀라서 날카로운 울음이 터져 나오거든. 입을 틀어막고 잠깐 고대 이집트인이 되어보는 것도 좋겠지. 그들은 고양이가 밤에도 눈이 밝게 빛나는 까닭을 석양에서 찾았어. 저녁 햇빛을 새벽까지 저장할 수 있다고 믿었대. 어때? 오히려 신비롭지 않니?
송곳니를 드러내고 포효하는 고양이는 몸집만 작을 뿐이지 호랑이와 다름없어. 수염까지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근엄함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고양잇과 동물만이 지닐 수 있는 특권이랄까. 에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나도 어쩔 수가 없네. 수염은 새끼 고양이에게 귀여움을 부각하는 최고의 아이템이라고 볼 수 있어. 언밸런스는 때때로 뉴밸런스가 되는 이치라고 말하면 적절한 설명이 될 것 같군.
기능적 역할도 무시할 수 없지. 일종의 센서라고 할 수 있어. 양쪽 수염 끝으로 공기의 흐름이 일으키는 진동을 읽어내지. 이 길을 통과할 수 있을지 감지하는 거야. 민감한 감각으로 떨림의 정보 값을 분석하면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거지. 수염이 앞다리에도 있다는 거, 몰랐지? 자세히 살펴보면 유난히 기다란 털이 있어. 이것을 촉모라고 부르는데, 앞발을 들어 포획한 사냥감에 갖다 대면 죽었는지, 죽은 척하는 건지 알 수 있대. 눈을 뜨지 못하는 갓난아기였을 때는 젖을 찾는 흰 지팡이가 되기도 해.
솟구치는 사냥 본능을 해소하게끔 도와주려고 집사들이 낚시 놀이를 해주는 거야. 낚시 도구는 간단해. 헝겊으로 만든 물고기나 쥐를 막대기와 연결한 줄에 매달면 작업 끝. 살아 있는 것처럼 사냥감을 움직이면 고양이는 몸을 잔뜩 낮추고 엉덩이를 실룩거리게 되지. 언제 뒷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튀어 나갈지 때를 노리고 엎드려 있는 순간, 도파민 수치가 급상승하는 소리가 들릴지도 몰라. 아무리 정교하게 꿰맸어도 며칠을 못 가. 너덜너덜해진 물고기는 쥐 같아지고, 쥐는 물고기 같아지지.
가끔 미스터 초이가 사냥감이 되어주기도 해. 문 뒤에 숨어 있다가 일부러 신체 일부를 드러냈다 다시 숨었다 하지. 본능은 인지를 넘어서는 것 같아. 누군지 뻔히 알면서도 책상 뒤에 몸을 숨겼다가 화살처럼 날아가려고 준비하게 돼. 그 모습이 우스운지 아주 작은 소리로 찍찍, 청력 테스트까지 시도하는 사람 사냥감. 귓바퀴가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방향을 틀어 고정하는 게 그렇게 재밌을까. 번연히 알면서도 기를 쓰고 잡으려고 하는 나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지만.
다시 상자 얘기. 머리만 잘 숨겨도 이 세상의 모든 근심이 뿅 하고, 연기로 변할 것 같은 직육면체 안. 사냥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상자는 은폐하기 최적합의 장소였던 거야. 사냥감의 시야는 차단하고 내 시야는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내 본능을 꿈틀거리게 하는. 내 상상의 무대를 대지로 옮기게 하는.
※ ‘자고 있어, 곁이니까’는 김경주의 시어이자 에세이집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