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에세이_타인의 삶(가제) 잡지
<채현 쓰다>
어릴 적 남들보다 ‘집’이라는 형태에 애착감이 컸다. 친구 집을 놀러 가면 집의 구조부터 살펴보았다. ‘화장실이 여기 있네? 친구 방하고는 조금 멀겠다. 와 이 집은 부엌 모양이 특이하다!’ 우리 집이 이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도면부터 찾았다. 도면을 보며 그 안에서 움직이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작은 행복이었다. 내 방이 주어지면 그 안에서 가구의 위치를 쉴새없이 움직였다. ‘장롱이 여기 있으면 문열때 불편하고, 침대가 여기 있으면 프라이버시가 떨어질 거야.’ 혼자 방 안에서 나와의 대화 끝에 최선의 구조로 완성시켜나갔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스케일 바와 트레싱지를 들고 도면을 그려가는 건축학도가 되었다. 그리고 설계사무소에 입사하여 돈벌이를 시작했다.
1월 13일 오전 다섯시, 귀를 쏘아대는 요란한 알람이 울리고 눈을 비비며 간신히 눈을 떴다. 드디어 회사 첫 출근날이다. 인턴 첫 출근날에는 기대감 때문에 설레어서 잠을 설쳤다면, 신입사원으로 첫 출근인 오늘은 불편한 긴장감으로 깊이 잠들지 못했다.
첫 출근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소는 출근 지하철 탑승이었다. 안산에서 성수로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옥의 사당역에서 환승하기를 극도로 싫었던 나는 차라리 한 시간 일찍 일어나 한 번에 쭉 가는 수인분당선을 타기로 하였다. 배차 간격이 긴 열차이기에 타야 하는 열차를 놓칠 경우 지각이 확정된다. 출근은 오전 9시까지 해야 했으므로 버스 타는 시간을 고려하여 오전 여섯시 십분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했다. 조금만 늦게 나오면 나의 출근 계획이 흐트러져 첫날부터 지각해서 윗사람한테 안 좋게 보일 거라는 부담감과 긴장감이 밤새 넘쳐흘렀다. 다행히 버스와 지하철이 제시간이 와주었고 역사적인 첫 출근날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오전 8시 40분, 아주 적당한 시간에 회사에 도착하였다. 30분은 너무 일러서 긴장한 초짜 티가 날 것만 같았고 50분은 나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와있을 것만 같았다. 적당히 예의바르고 눈치 있는 신입사원으로 보이기에 적합한 40분에 도착하여 회의실에 모여있는 신입사원들 사이에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고요하다. 대기실의 벽 하나를 두고 안과 밖의 공기가 매사롭게 다르다. 건너편에서는 기존 직원들은 서로 담소를 나누며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고 그들은 어딘가 모르게 분주해 보였다. 대기실 안에 모여있는 우리는 멀뚱멀뚱 서로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이윽고 부사장님이 밝은 표정으로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셔서 오늘 일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셨다. 우선 신입으로 들어왔으니 밖으로 나와 한명씩 돌아가며 큰소리로 인사를 하자고 제안하셨다. 회의실을 나가보니 전직원이 모두 일어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열아홉명은 차례대로 본인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내 차례가 다가오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 앞사람이 한대로 똑같이 하자. 또박또박 맑고 큰소리로 당당하게 인사드리자. 호랑이굴에서도 정신만 빠짝차리면 살아나온대잖아. 인사 한번 하는 게 참 뭐라고 극도의 긴장상태가 되어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된 강 채 현 입니다!”
직원분들은 한명한명 머리를 숙일때마다 큰 박수를 보내주셨고 나는 우물쭈물 제자리로 돌아갔다. 큰 산 하나 넘은 듯 온몸에 힘이 풀렸다.
열아홉명의 릴레이 인사를 끝내고 곧바로 팀배정이 들어갔다. 그리고 담당부서 상사님이 오셔 해당 직원을 데리고 나갔다. 이윽고 내 이름이 호명되고 대기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기가 채현씨 자리입니다. 모니터 본체 모두 새것이구요, 새 책상에 먼지가 많으니 물티슈로 닦고 앉아 계세요. 아 그리고 저희 팀은 내일부터 교대역 쪽으로 출근하게 될 거예요.”
당황스러웠다. 입사 첫날부터 파견이라는 건가? 이건 나의 계획에 전혀 없었다. 당혹스러웠지만 재빠르게 핸드폰을 꺼내 교대역으로 출퇴근하는 경로를 알아보았다. 훨씬 가까워졌다. 무려 한시간이나 더 잘 수 있게 되었다.
내일부터 당장 교대역에서 합사를 시작한다. 합사란, 하나의 설계 공모전을 따내기 위해 몇몇의 회사가 모여 임시사무실에서 머리를 맞대는 것을 말한다. 여러모로 정신없는 하루. 나는 또 내일 또 한번의 첫 출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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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서울이라는 곳은 동경의 도시이다. 서울은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며 명성 높은 회사들이 밀집해있다. 미디어에 나오는 탑 스타들은 한강 주위에 값비싼 주택에 살고 있으며 뛰어난 교통과 인프라로 우리를 하여금 선망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이름 있는 전시회나 뮤지컬 등 예술적인 소양을 쌓기 위해서는 서울로 닿아야만 하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지방에 있는 청년들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마냥 서울로 상경하길 바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직장인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출퇴근길 교통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출퇴근길의 고통을 느껴본 바가 있다. 대학교를 다니고 있을 시절, 두 번의 인턴 과정을 거쳤다. A 회사는 삼성역 근처에 있었고, B 회사는 합정역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A회사를 가기 위한 과정 : 역까지 가는 버스 탑승_10분소요 - 중앙역_45분 소요 - (지옥의)사당역_15분 소요 - 삼성역 하차 후 5분 도보 ->약 1시간 30분 소요
B회사를 가기 위한 과정 : 5609번 탑승_1시간 10분 소요 - 구로디지털단지_15분 소요 - 합정역 하차 후 10분 도보 -> 약 2시간 소요
경기남부, 안산에 살고 있는 난 출퇴근길이 모두 곤욕이었다. 특히 출근길 사당역에서의 2호선 환승은 역대급 난이도였다. 2호선 사당역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줄에 이어져 있다. 하지만 도착한 열차는 단 한사람도 비집고 들어가질 못할 정도로 꽉꽉 채워져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지각을 면하기 위해서는 없는 공간을 만들어 내서라도 열차 안을 비집고 들어가야만 한다. 꾸역꾸역 들어간 열차 안은 수많은 사람들의 살이 맞닿아 있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본의 아니게 기대어 지탱한채로 목적지까지 달려간다. 그렇게 2호선에서 탈출하면 혼이 쪽 빠진다. 그날 하루 체력을 사당역에서 쏟아붓고 오게 된다. 도대체 왜 회사는 서울에 있을까.
우리나라가 초창기 경제적으로 발전을 이룰 때는 대기업 위주로 성장하였다. 당시에는 정경유착 없이는 크게 성장할 수 없는 배경을 가졌기에 지리상 서울에 회사가 위치해야 유리한 조건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외 다양한 사유들로 인해 서울에는 회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프라로 사람들이 꾸준히 몰려들게 된다. 그에 따라 끊임없이 도로와 지하철을 잇지만 교통정체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특히 서울은 상시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나의 회사는 교대역 근처에 있다. 평소에 안산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교대역을 가게 되면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출근길과 퇴근길인 경우 2시간을 넘어버리기도 한다. 교통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통근시간으로 인해 정확한 약속시간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근할 때는 평균 72.1분, 서울에서 경기도로 출근할 때는 평균 65.4분이 소요되며, 이에 따라 경기도 거주자 3명 중 1명 꼴인 32.4%는 ‘긴 통근 시간’을 출근길이 불행한 이유로 꼽기도 했다.
32.4%에 해당되는 난 통근길이 불행하다. 신이 나에게는 하루 24시간이 아닌 21시간을 준 것만 같다. 나는 지금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글을 쓰고 있다.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 반대로 남들에게 없는 이 시간을 잘 활용해 성장하고 싶다. 신이 나에게만 준 3시간이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앉아 글을 쓰며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사용하고 싶다. 어쩌겠어, 안산에서 태어난 걸.
<나래 쓰다>
너무 익숙한 출근길, 이곳에서 일한 지도 어느새 일년이 훌쩍 넘어 2년을 바라보고 있다.
늘 그렇듯이 출근 시간보다 일찍 가서 동료에게 진상손님 놀이를 한다. 들어가자마자 ‘커피 주세요!! 빨리!!’를 외치고 바 자리에 앉아 잠깐 이야기를 하고서 동료가 만들어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출근 30분 전, 눈이 쏟아져 내린다. 이건 변수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 기분 좋은 변수가 생긴 거다. 운치 있게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니 오늘 하루가 괜찮을 거 같다. 눈이 쌓이길래 눈사람도 만들었다.
‘좋은 하루입니다!’
출근을 하며 늘 외치는 인사다. 이렇게 외치고 나면 기분 좋게 일을 시작하는 거 같아서 꼭 외친다. 곧장 바로 들어가 일을 시작한다. 커피를 맛보는 것이 제일 먼저 하는 업무다. 맛이 괜찮은지 확인을 하며 수정할 게 있으면 다시 세팅을 잡는다. 가장 기본이고 중요한 업무다. 맛있는 커피 한 잔을 건네는 게 우리 일이니까.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빵을 포장하고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든다.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이 몰려서 정신이 없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롭다.
오늘은 정말 특별할 거 없는 하루였는데, 눈이라는 변수 덕에 기분 좋게 일을 했다.
출근 전에 만든 눈사람 덕에 오늘 하루가 더욱 즐거웠다. 눈 사람을 들어오는 문 옆에 나란히 뒀는데,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그 눈사람들을 보고 좋아하시며 사진을 찍으셨다. 나는 바 안에서 그 모습을 봤고, 기분이 되게 좋았다.
칼퇴근했다. 눈이 와서 그런지, 다들 마감시간보다 일찍 나갔다. 덕분에 오랜만에 여유롭게 마감 정리를 하고, 딱 맞춰 퇴근을 했다.
어제 휴무라고 커피를 세 잔이나 마신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아 새벽 4시가 다 되고서야 잠을 잤다. 그래서 그런지 일어나는 게 쉽지가 않았다.
평소에는 자전거를 타지만 근래에 날씨가 좀 추운 거 같아서 버스 시간에 맞춰 나왔다. 근데 나와보니 별로 안 춥다. 곧장 다시 집으로 가서 자전거를 가지고 타고 출근을 했다. 자전거 타고 출근하면 좋은 게 하루를 산뜻하게 시작할 수 있다. 버스 타면 멀미를 좀 하는 편이라 졸다가 내리고는 하는데, 자전거를 타며 잠도 깨고 시원한 공기에 정신이 맑아진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금세 정신이 맑아졌다.
‘좋은 하루입니다!’
오늘도 힘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바에 들어가자마자 반가운 손님이 바 자리에 앉아있는 게 보인다. ‘안녕하세요~’ 손님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내렸다. 체크 겸, 마실 겸 아이스 아메리카로를 마셨다. 곧장 점심 준비를 시작했다. 바쁜 시간이 오기 전에 채울 것들을 채우고, 중간중간 오시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빵을 포장하고 커피를 만들었다. 시간이 뚝딱, 점심시간이다. 마감 출근자가 합류하고 바쁘게 일을 했다. 이 시간이면 홀은 평화롭지만, 바는 전쟁터다. 우리는 밀려오는 주문에 손발을 맞춰가며 각자 위치에서 커피를 만들고, 빵을 썬다. 그렇게 한바탕 지나고 나면 종종 성취감이 몰려오고는 하는데,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도 손발이 잘 맞아 밀리는 거 없이 부드럽게 일을 했다.
바쁘지만 나 이나래 문제없어. 오늘 커피를 만드는 내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은 단골손님들이 제법 많이 찾아주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손님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가볍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따금 사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작은 활기를 얻어 또 힘차게 일을 한다.
퇴근!
그래도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퇴근시간’이다. 내 일을 무척이나 애정 하는 나지만, 어쩔 수 없다. 퇴근이 제일 중요하다고요!
이 일지를 쓰다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회사라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장소이자 인생의 한가운데서 ‘열심히 사는 시간’을 보내는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_디자인 하지 않는 디자이너
나는 게으른 탓에 그리 열심히 사는 사람은 아니다. 게으른 탓에 미루는 것을 즐겨하고, 끈기가 없는 탓에 하고 말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열심히 사는 시간들이 존재한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 내가 일하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시간이다. 게을러도 직장에서만큼은 부지런한 인간이 된다.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한다. 나는 회사에 노동을 제공하고 회사는 내게 노동비용을 지불한다. 나는 그 돈을 받는 만큼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한다. 두 번째,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내 일에 가치를 잃고 싶지 않으며, 내가 하는 일에 부끄러움 없이 일을 하기를 원한다. 많은 이유들로 나는 직장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시간을 보낸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