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로 이사를 가자

여행온 도시에서 너무 현실적으로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by 다이치

말레이시아 페낭에 머문지 이번달로 딱 2년이 되었다. 지금 나는 공항 근처 상업지구에 나름 좋은 콘도에 머물고 있다. 이 곳으로 집을 정했던 건 워크 비자를 발행해준 회사와 가깝기 때문에 회사를 편하게 다니기 위함이 가장 컸다. 아는 사람 없는 낯선 도시에선 주거를 선택할 때 고려되는 사항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냥 생활이 편리하고 일하기에 가깝고 콘도에 편의시설들이 잘 되어있어서 콘도에서만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면 족했다. 그렇게 내가 머물던 콘도는 이 근방에서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신식 시설이었고, 관리도 잘되는 곳이었다. 수영장도 넓고 깨끗했고, 대부분 열쇠를 쓰는 이 나라에서 패스워드 오토 도어락과 콘도 출입문도 카드 혹은 어플로 관리되는 곳이었다.


처음 이 곳에 이주했을 땐 콘도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페낭에서 사는 한 계속 지낼 줄 알았지만, 사주에 역마살은 없지만 그냥 성격에 역마살이 있는 나로서는 1년정도 지내다보니 슬금슬금 지겨워지고 있었다. 이 지겨움을 나라 이동으로 해결해야하나 생각했을 무렵, 말레이시아 생활이 너무 편했기에 다른 나라로 이동은 물론 새로운 직업을 찾기도 귀찮다고 느낄 때 쯤 집을 이사하는 건 어떨지 새로운 옵션을 생각했다.


별 생각없이 지금 집에서 약 1시간 거리의 북쪽 바닷가 근처 집을 보러갔는데 웬걸, 콘도와 이어져있는 해변가 산책로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사는 곳은 콘도만 좋고 동네 자체는 상업지구이기에 주변에 산책할 곳이 없었다. 페낭 자체가 섬이기에 높은 곳에 산다면 어디서든 바다는 볼 수 있지만, 바다 근처에서 바다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건 또 다른 이야기 였기에. 바닷가 산책로가 있는 새로운 동네가 꽤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아니면 아주 가끔은 회사에 출근을 하는 날은 있다. 그럴때는 다시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 하던 고생을 똑같이 해야겠지만, 출퇴근 생각하며 상업지구에 머문다는 건 서울에서 하던 고민과 완벽히 일치하는 너무 현실적인 고민이기에 다시 불편함을 감수하며 이상을 찾아 바닷가 근처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마음 같아선 더 깊은 섬으로 파도소리와 팜트리가 흔들리는 바람의 소리만 들리는 곳으로 가고 싶지만 아직 그런 경제적 자유는 없기에 그런 날이 올때까지 참는 것보다 최소한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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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만족스러운 지금 집의 생활

회사 근처에서 높은 빌딩에 머물면서 예쁜 하늘과 함께 집에서 내린 라떼를 먹는일은 여전히 낭만적이지만, 바닷가 근처에서 산책을 할 수 있다는건 서울에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기에 계속해서 나의 삶은 서울에서의 삶과 거리를 벌려가는 것을 목표로 하려고한다. 그렇다고 도시를 안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정글 속에 들어가 살지 않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도시 속에서 가장 서울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다음주면 이사를 한다. 한달 전에 계약해둔 집에 이사 날짜가 다가오면서 이사짐을 싸고 있다. 서울에서 원룸에서 지낼땐 언제든 이사를 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매번 필요하고 사고싶은걸 참고 지내왔는데, 3룸 콘도에서 지내던 지금은 그때의 구속이 폭발하여 너무 많은 짐이 생겨있다. 이 많은 짐은 사실 나의 업보임을 이사짐을 꾸리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막상 살땐 떠날때 버리면 되지 하지만, 버리는 것 또한 마음의 짐이라는 사실.


IMG_8586.jpg 여기는 말레이시아의 랑카위다

내가 평생 살고싶은 주거의 형태는 전 세계를 무대로 살아가는 것인데, 아직 당최 그 방법의 실마리를 찾지는 못했으나, 이렇게 조금이라도 내가 살고싶은 곳을 선택해 살 자유가 주어졌음에 감사한 하루다. 서울이었음 꿈도 못 꿨을 삶의 방식이 여기에서 가능하다는게 내가 정말 한국을 떠나 말레이시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 카페에서 브런치를 작성하고 있는데, 같은 회사 한국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나보다 어리지만 벌써 억대의 돈도 모으고 월급을 받으면 일단 반이 상은 한국 예금 통장으로 보내버린다는 친구였다. 그런 현실적인 삶을 포기한지 오래 되었기에 듣는데 새삼 또 놀랐다. 내가 너무 대책이 없나 하는 생각이랄까. 나의 저축 습관은 돈을 모은다기 보다 한달내내 풍족하게 쓰고 남은 돈이 저절로 모아지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계획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며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으로 누리고 남은 돈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형태. 그나마도 여기가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한 말레이시아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에 감사하며 말이다.


내 삶에서 그나마의 현실적인 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 주5일 하루 9시간 회사에서 시키는 하기 싫은 일을 참아내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모두의 꿈인 평생 쓰고싶은 글만 쓰고 노트북 하나만으로 바닷가에서 좋아하는 음악과 그림그리기 또 책읽고 글쓰기만 하는게 나 역시도 꾸는 평생의 꿈이다. 로또라도 당첨되면 좋으련만, 그런 욕심과 요행을 부리지 않고 주40시간은 하기싫은 일을 하며 버텨나가는 현실적인 선택을 최소한 하고 있긴 하다. 이 선택에는 사실 자의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현실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나의 주거형태 또한 점점 현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한국엔 없는 수영장 딸린 고급 콘도지만, 회사 근처 상업지구에 살아가고 있는게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음주엔 이사를 간다.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생각과 멀어지게 이상적인 삶의 모습의 근처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름 나의 계속되는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계속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또 새로운 기회를 만날 수 있기를. 청춘을 포기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사람에 비하면 너무 과분한 삶의 태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느린 선택 역시 종착지가 그들과 같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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