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치 May 13. 2024

말레이시아 단독주택의 여름 비

아파트와 빌라에선 느낄 수 없던 계절

지금 말레이시아 페낭의 단독주택에서 지내고 있다. 아파트, 빌라만 살아왔던 내게 단독주택은 평생의 로망이었다. 물론 5살때 도시로 올라오기 전까진 마당이있는 충청도 시골집에서 살았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나를 평화롭게 만든다. 마당에 키우던 강아지와 실컷 뛰어놀고, 여름에는 대야에 물을 받아서 물놀이를 할 수 있었던 기억. 또한, 비가온 다음날에 볼 수 있는 달팽이와 지렁이들. 그 모든 것들이 어렴풋이 내 기억속에 남아 훗날에는 꼭 단독주택을 짓고 살거라고 로망으로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대학에서 인테리어디자인을 전공한 후로는 내가 나중에 지을 나만의 집을 구상하는 것도 나름 미래를 상상하는 즐거움이곤 했다.


그런 로망으로 지금은 말레이시아에 단독주택의 방하나를 빌려 살고 있다. 살아보니 단독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단점이 훨씬 많은 것 같긴 하지만, 아파트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누린다. 마당에 빨래를 널다가 발견하는 잔디 위에 팔뚝만한 도마뱀을 만나는 일, 2층 창문 앞에 찾아오는 새들까지. 물론 벌레도 많긴 하지만, 처음에나 징그럽지 여기 계속 지내다보면 그러려니 하게되더라.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건가? 근데 바퀴벌레는 아직도 소름끼치긴 한다. 추위없는 이곳에서 무럭무럭 자란 자이언트 바퀴벌레는.. 아직 힘들다 하하.


이런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계절을 즐긴다면 더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이 그리운건 전혀 아니지만, 여러모로 한국의 장점 중의 하나는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만큼 흘러가는 시간이 참 아쉽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빠르게 사는거였을까? 365일 여름인 이곳에선 사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우기라서 가끔 비가 왔다 안왔다하는 변화밖에 없다. 비도 길게 와야 한시간? 정도 내린다. 그리고 밖에 나가보면 더운 날씨에 벌써 아스팔트는 다 말라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아파트에 있다면 비가와도 창밖으로 비가 오는구나 하고 말지만, 단독주택에 있게되면 비가내려 적시는 잔디의 냄새도 맡을 수 있고, 2층에서는 빗소리에 울리는 천장소리도 들을 수 있다. 자연의 변화를 온 집안이 냄새로, 소리로, 분위기로 알려준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어느날보다도 쨍하게 뜨는 해 까지도 온전히 느끼게 된다. 이런 것들을 느끼고 있노라면, 천천히 산다는건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된다. 아파트나 빌라에선 느낄 수 없던 기분이다. 





  

이전 02화 도망쳐온 첫번째 도시 :: 말레이시아 페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