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이방인들 속에 이방인
첫번째로 도망쳐온 도시는 말레이시아 페낭이었다. 페낭은 이전에도 두 번 정도 와봤던 곳이어서 나름 익숙하기도 했고, 영어를 사용하기에도 불편함이 없고, 생활비 물가도 저렴하기에 첫번째로 도망치기 좋은 선택지가 되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멜팅팟이다. 대표적으로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 외에도 기타 소수 민족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사실 이곳에 있다보니 조화는 모르겠고 그냥 각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 중에서도 페낭은 중국인이 정말 많이 사는 곳이다 페낭시민 40%가 중국인이라고 한다. 세계를 여행하다 만나는 말레이시아 화교에게 어디에사냐고 물어본다면 거의페낭에 산다고 할정도로 페낭은 중국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는 페낭에는 나 하나의 이방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어쩌면 말레이인을 제외한 모두가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온 이방인들이니. 이렇게 많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나 하나의 이방인은 그들에게도 새롭지 않을거다.
이런 특징들 덕에 생겨난 또 하나의 매력은 언어이다. 이방인들 모두 다른 언어를 쓰던 지역에서 왔으니, 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영어가 되었다. 그래서 영어가 국가 공식언어는 아니지만, 말레이에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영어를 한다. 특히 말레이시안 차이니즈들은 말레이어, 중국어, 영어를 모두 하기 때문에 가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보면 놀라울때가 있다. 아주 빠른 시간내에 세가지 언어가 모두 사용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언어가 스위치 된다. 30살까지 영어 하나로 고군분투 하고 있는 나에겐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최소한 언어 3가지를 한다는 것에 경이롭기까지하다.
그리고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사는 만큼 다양한 음식도 있어서 이것저것 음식을 맛보는 재미도 있는 도시이다. 백종원의 세계음식 기행 페낭편을 보면 다 먹어보고싶었어서 하나씩 먹어보는 중이다. 나는 편식은 없는편인데 똠양꿍처럼 레몬그라스 등 신맛이 나는건 잘 못먹어서 은근 못먹겠는 음식도 좀있다. 그래도 말레이시아 차이니즈들의 음식인 바쿠테(Ba Ku teh)는 입에 잘맞아서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갈비탕? 돼지갈비찜? 이랑 비슷한 맛이다. 말레이시아 음식은 정말 광범위 하기 때문에 따로 나중에 따로 써봐야겠다.
또 페낭 중심에 있는 보테니컬가든에 가면 원숭이가 굉장히 많다. 원숭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공원을 거닐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 보통 인도네시아에 원숭이 사원 같은 곳으로 원숭이를 보러 가는 관광객이 있는 건 봤지만, 이렇게 일상 속에 원숭이가 있는 모습은 낯설고도 흥미로웠다.
보통 관광지에 원숭이들은 사람들의 물건을 뺏고 그들의 음식과 맞교환을 하는 방법을 터득했지만, 여기는 입구부터 원숭이들에게 음식을 주지 말라는 안내와함께 아무도 음식을 주지 않기에 원숭이는 그저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멋모르고 피크닉낼 분위기로 빵과 과자를 들고 갔다가 원숭이가 쫓아와서 무서웠다.
날은 생각보다 덥지 않은데, 지금이 우기인지라 비가 왔다 안왔다 하고 있다. 우기에는 날도 더 덥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히 원래 더운날씨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직까진 이 평화로움에 페낭으로 도망친 나날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