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플라톤

첫 글

by 황혼
그리스의 대표적 철학자이자 성인 플라톤의 모습

슬픈 플라톤은 누가 위로해 줬을 것인가?


문학과 철학은 흔히

고귀하고 찬란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역설적으로 그것들이 태어난 순간은

대개 혼란과 붕괴의 시기였다.


헬레니즘 시기, 춘추전국 시기, 로마 말기,

중세 암흑기, 20세기 전쟁기..


인간의 정신이 번뜩일 수 있었던 시간은 어째서

늘 개인과 사회가 무너지는 시간과 일치했을까?


평온한 시기엔 시는 잠들고, 철학은 박제된다.

행복은 글이 되지 않지만 고통은 말이 된다.


플라톤이 살아간 그리스는

외려 질서보다 혼란이 일상이었고,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의 이름 아래 죽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단순한 철학자의 죽음이 아니라,한 시대의 도덕과 정의가

스스로를 배반한 사건이었다.

그 충격 앞에서,

플라톤은 세계를 감각과 변동의 영역에서

이데아의 형상과 절대성으로 탈출시켰다.

철학은 그의 울음이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문학의 본래 역할은

삶의 균열을 언어로 봉합하는 데 있다.

그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말로는 닿을 수 없는 고통,

세계의 틈 사이에서 길을 잃은 자아를

말이라는 도구로 견디게 하는 예술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삶이 지나치게 평온하고

모든 것이 조화롭게 작동하는 세계에서는

문학이 작동할 이유 자체가 희미해진다.

문학은 고요 속에서 잠들고, 고통 속에서 깨어난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그가 사랑받지 못했다는 증명이고,도스토옙스키의 문장은

러시아 지하 감옥에서 벼린 인내의 뼈다귀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견딘다는 것이고,

견딜 수 없기에 쓴다는 것이다.


문학은 위로의 형식을 갖추었지만,

그 문장을 쓴 사람들은 항상 위로의 바깥에 있었다.

그들의 문장은 타인의 가슴을 울리고

수많은 독자에게 위로가 되었지만,

정작 그 문장을 쓴 사람은

대체로 위로받지 못한 채 조용히 썩어갔다.


이육사, 김소월, 윤동주와 같은 시인은

일제강점기의 폭력적이고 잔혹한 시대 덕분에

오히려 그 언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의 시는 단아하고 희망적이지만,

그 정결함은 내면에서 오래도록 곪아온

고독과 절망을 품은 채 피어난 것이었다.

문학은 밝고 맑은 형식으로

삶을 아름답게 가공하지만,

그 형식을 벼리던 이들의 삶은

대부분 형언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이루어졌다.


진정 감동적인 문학은 종종

삶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 쓰인다.

삶이 아름다울 때 사람들은 시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 글을 쓰도록 강요할 때,

사람들은 자신을 깎아내며 언어를 벼리고,

결국 타인의 구원이 되는 문장을 남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만들어진 문학의 주인은

대인(大人)으로 추앙받으며

‘위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로 오해된다.

세상은 그들에게 감동을 받지만,

감동받은 누구도 그들을 어루만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가장 위로가 절실했던 자들이

가장 많은 위로를 남긴 채, 가장 외롭게 사라져갔다.


‘인간의 내면은 자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세월은 겉모습을 바꾸고,

주변의 시선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어린 마음이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존재는 그대로인데,

달라지는 것은 ‘성인’이라는 칭호와

그 칭호를 부여하는 세상의 태도다.


철학자들은 ‘성인’이나 ‘대인’이라 불리며

고요하고 단단한 지성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들의 사유는 시대를 가로지르는 나침반이 된다.

그러나 무게 있는 침묵 뒤에는

‘대인’이라는 가면 하에 말하지 못한 슬픔이,

깊은 사유의 문장 뒤에는

외면당한 감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철학은 타인을 위한 지침이 되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을 어루만져준 이는 없었다.

진정한 성인, 대인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슬픈 플라톤은 누가 위로해 줬을 것인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