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잘하는 사람들은 대개,
위로를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이들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들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그 말을 가장 먼저 건넨다.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그 따뜻한 말들은
사실 그들이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던 말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무너지는 마음을
어떻게 붙들어야 하는지,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었던 이들.
힘들다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건 차가운 눈빛들과 냉소뿐이였던 이들.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말을 삼키고
울음을 삼키고
침묵 위에 자기 자신을 덮어 두었을 것이다.
그 침묵은 시간이 지나 굳은살이 되고
굳은살은 어느새 감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어리광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렸던 그들은 비로소 사회가 말하는
’성인’에 근접해졌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눈물 흘릴 때,
그 눈물 속 감정을 단번에 알아채는 사람.
누군가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말할 때,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괜찮지 않음’을 알아차리는 사람.
그런 이들이 있다.
위로를 잘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듣고 싶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도 해주지 않았지만,
그 말을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뇌어 본 사람이다.
어쩌면, 위로를 받아보지 못했기에 더 정확히 안다.
어떤 말이 사람을 살리는지.
어떤 말이 고요하게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지.
그래서 생기는 역설이 있다.
진짜 위로는,
한때 누구보다도 위로를 가장 갈망했던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가장 외로웠던 사람들이,
가장 따뜻한 말을 한다.
그렇게 말하며,
위로의 언어는 조용히 한 사람의 마음에 도착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말이 멀고 오래된 자신 안의
어린 아이에게도 닿아,
그들의 침묵 속에 묻혀 있던
혼자 울음을 삼키던 한 아이가
조금은 덜 외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
위로란 어쩌면, 그렇게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