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이 되어야 난다."
철학은 가장 절망적일 때 꽃핀다는 뜻이다.
세상이 뒤흔들리고,
믿어왔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며,
삶의 빛이 서서히 꺼져갈 때.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
그래서였을까.
나 또한 이 길 잃은 황혼 속에서
언젠가 무언가를 건져 올릴 수 있으리라,
은근히 기대했던 모양이다.
언젠가 나도 부엉이처럼
어둠을 가르며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건 처음부터 부질없는 희망이었을지 모른다.
부엉이도 아닌 내가,
어찌 어둠을 헤치고 날아오를 수 있겠는가.
내게 있는 것은 오직 끝없이 이어지는 황혼뿐이다.
나는 일찍이 배웠다.
말을 아끼고,
웃음을 빚어 내며,
감정을 얼려두는 법을.
그건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었다.
나는 그냥 그걸 겪었고,
그래서 알게 되었고,
그렇게 굳어진 것이다.
흔히들 말한다.
행복했던 기억들이 우리를 지탱해 준다고.
아름답던 예전의 기억들이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고.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다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따뜻한 장면들이
나는 단 하나도 없다.
내 과거에는
나를 다정하게 불러주는 목소리도 없고,
그 어떠한 따뜻함도 없다.
그저 조용히 흘러간 차가운 시간들만이 있을 뿐이다.
어릴 적부터 고통은
나에게 언제나 배경음악과도 같았고,
나는 그 음악 위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그게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아프다는 감각조차 잘 느껴지지 않는다.
수없이 날아든 화살은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의 감각까지 마비시켰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묻는다.
괜찮냐고.
이제는 좀 편해졌냐고.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그게 익숙한 대답이니까.
이제는 내 마음이 어떤지도 잘 모르겠다.
너무 오래, 괜찮지 않은 채로 지내왔기에…
이 황혼의 끝은 있을까.